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유출 사실을 뒤늦게 알려 은폐 의혹이 일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이렇게 많은 피해자가 양산된 원인을 두고 일본 언론들은 가네보사의 ‘늑장대응’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부작용은 이미 2년 전부터 보고되었으나, 회사 측이 제대로 조사에 착수하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는 주장이다.
특히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브랜드 전체 신용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이번 사건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대응이 늦은 원인 규명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 손해배상과 피해자 구제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또한 일본 네티즌들 역시 “회사 측이 더 빨리 공표했다면 피해자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고, 일부는 “가능한 한 숨기고 싶었던 것 아니냐”며 고의적인 은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은폐 의혹이 불거진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바로 후쿠시마 원전이다. 지난 7월 22일 도쿄전력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고 원전에 있던 방사능 오염수 일부가 바다로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는 그동안 도쿄전력이 고수했던 ‘오염수 해양 유출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부정하는 것으로 후쿠시마 어민들을 비롯해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상급기관인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이미 18일에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의혹이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발표일이 왜 22일이었는지’가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그 전날이 공교롭게도 일본 참의원 선거일이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일본 네티즌들은 21일에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 대한 영향을 우려해 일본 정부가 오염수 유출 발표를 일부러 늦춘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선거는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만약 참의원 선거 직전 오염수의 유출 사실이 공표됐다면 원전 재가동 입장인 자민당은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이 많다.
게다가 도쿄전력이 처음 방사능 오염 측정용 우물에서 수치 이상을 파악한 것은 지난 5월 말로 밝혀졌다. 그 후 인근 바다에서도 고농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지만 자료가 축적되지 않았다며, 아직 판단을 내리기엔 이르다고 주장해왔다는 점도 의심스럽다.
가네보사가 백반증 피해 사건으로 공식 사과하는 모습. 가네보는 이후 문제의 미백제품 54종을 자진 회수했다. 로이터/뉴시스
일본 아고라의 유명한 전문 필진 오카모토 히로아키(岡本裕明)는 최근 ‘은폐는 일본 조직 체질인가?’라는 글을 실어 눈길을 끈다. 그는 한번 실패하면 되돌릴 수 없는 일본의 조직 환경이 은폐를 키운다고 비판했다.
가령 다른 선진국에서는 실패를 했더라도 시작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출발대로 돌아갈 수 있다. 또 여기서 부활한 사람은 추앙을 받기도 한다. 이에 반해 일본은 한번 실패하면 평생 ‘형편없는 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하며, 명예와 일자리를 잃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엘리트일수록, 경쟁이 심한 곳일수록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오카모토 히로아키는 “물론 은폐 체질은 일본만의 특성은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특히 일본이 많은 편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는 “개인보다 조직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국익우선주의와 특유의 비밀주의를 내세우는 일본 정부를 에둘러 겨냥했다. 또 “은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 그 자체일 뿐 어떤 경우에도 절대 합리화될 수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사실 조직의 은폐 체질은 그동안 일본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끊임없이 제기돼 왔었다. ‘왕따’로 인해 자살하는 일본의 중·고등학생들이 많은 이유 역시 담임과 학교의 평가, 교육위원회의 평가가 낮아질 것을 우려해 조직적으로 은폐해 벌어진 비극이라는 비난도 있다.
이처럼 일본 사회에 만연한 은폐 체질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신속히 공표할 것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 사이트 ‘이코노믹뉴스’는 “은폐함으로써 사태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은폐 체질을 가진 일본 조직은 문제가 생겼을 때 상황이 격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일본 네티즌들도 은폐 체질 개선을 주장하고 나섰다. 야후재팬의 한 네티즌은 “가네보와 도쿄전력의 사건들은 일본에 대한 신뢰 자체를 흔들어 놓았다”고 개탄하며 “불리한 정보는 일단 축소하는 집단 이기주의가 재앙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일본 네티즌들은 “지금이야말로 일본 조직의 체질 개선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