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미첨은 마리화나 사건으로 50일간 복역했다.
알고 보니 LA 경찰은 몇 달 동안 로버트 미첨을 추적했다. 그들은 마약과 약물 사용을 할리우드에서 척결하는 것이 경찰의 임무이며, 그리고 로버트 미첨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 로버트 미첨의 구세주로 나타난 사람은 미국 항공산업계의 거물이자 한창 영화업계에 손을 뻗치던 하워드 휴즈였다. 미첨이 소속된 스튜디오인 RKO를 인수 중이던 그는, 자신의 ‘재산’인 ‘스타 로버트 미첨’이 곤경에 처하자 보석금을 대신 내주고 그를 빼냈다. 이후 미첨은 자신이 어떤 모함에 빠졌다고 언론에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것은,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마리화나를 피워왔다는 경찰에서의 진술과 대립되는 것이었다. 미첨은 자신이 도덕적 문제로 할리우드에서 퇴출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미첨은 하워드 휴즈의 도움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변호사인 제리 가이슬러를 고용했고, 가이슬러는 “이 사건엔 설명되지 않은 수많은 부분과 독특한 상황들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재판은 진행되었고, 당시 체포되었던 네 명은 모두 무죄를 주장했다. 이때 변호사인 가이슬러가 교통사고를 당해 두 차례나 재판이 연기되자, 저널들은 할리우드 스타에 대한 특혜이며 이러한 특권 의식은 모두 쓸어버려야 한다고 분개했다. 한편 이 시기에 개봉된 두 편의 영화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대중은 미첨을 비난하면서, 미첨의 영화는 사랑했던 것이다.
변호사들과 법정에 참석한 로버트 미첨(왼쪽 두 번째)과 릴라 리즈(오른쪽 두 번째), 로빈 포드(맨 오른쪽).
그런데 2년 후, 반전이 일어났다. 1951년에 LA 카운티의 지방검사는 그 시간이 음모였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에 판사는 다시 사건을 검토했고, 로버트 미첨이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으며,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법정 기록을 삭제하도록 요구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부각되진 않았지만, 미첨은 진실이 밝혀진 것에 대해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로버트 미첨은 몇몇 음모를 알게 된다. 릴라 리즈는 8월 초에 비키 에반스와 함께 다 쓰러져가는 자그마한 집으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 로버트 미첨을 끌어들여 함께 마리화나를 피웠는데, 알고 보니 그 집엔 경찰이 설치한 도청 장치가 있었다. 그녀가 그곳으로 거처를 옮긴 배후엔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첨의 재정 관리를 맡았지만 결국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곤경에 처했던 폴 버먼도 경찰에 협조했고, 여기엔 당시 LA를 주름잡던 마피아 미키 코헨도 개입되어 있었다. 스타를 이용해 ‘큰 건수’를 올리려던 경찰의 집착, 미첨 주변 인물들의 음모 그리고 배후 세력 등이 결탁하여, 그저 사람 좋은 로버트 미첨을 함정에 빠트린 것이다.
아무튼 할리우드의 젊은 스타는 엄청난 사건을 겪었다. 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의 보수적 기강을 잡기 위해 할리우드를 노리던 권력자들에게 좋은 타깃이었던 할리우드는, 마리화나 문제로 산업 전체가 초토화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1950년대에 매카시즘의 빨갱이 사냥으로 할리우드의 영화인 수백 명이 사라지게 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