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대 페루의 경기. 선수들이 0-0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뒤 아쉬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2014브라질월드컵 최종 엔트리는 23명. 예비 선수로 몇몇 동행시킬 수 있지만 선수단 내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에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특히 팀 내 단합과 조직을 중요시 하는 홍 감독의 성향을 볼 때도 그렇다.
자연스레 시선은 홍 감독의 선택에 모아진다. 누구를 데려가고, 누구를 제외할 것이냐는 내년 5월 최종 엔트리 발표 직전까지 항상 뜨거운 감자다. 일단 홍 감독은 “옥석 가리기는 최종 엔트리 발표 순간까지”라고 했지만 이 역시 현실성이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염두에 둔 옥석은 이미 있고, 여기서 하나 둘씩 줄여나간다는 의미로 보는 게 맞다. 모두가 월드컵행을 장담할 수 없겠지만 한국 축구에서 유럽파의 비중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미 태극마크를 반납한 박지성(PSV 에인트호번)은 차치하고라도 이청용(볼턴 원더러스)-구자철(볼프스부르크)-기성용(스완지시티)-김보경(카디프시티)-박주호(마인츠05)-손흥민(바이엘 레버쿠젠)-윤석영(QPR)-박주영(아스널)-지동원(선덜랜드) 등 무려 9명이다. 이들이 2013~2014시즌 내내 컨디션이 좋아 펄펄 날아서 9명 전원이 티켓을 딴다고 가정하고, 골키퍼 3명을 브라질에 데려간다고 할 때 남은 자리는 최소 11명에 불과하다. 이를 놓고 K리거와 J리거, 중국 리거, 중동파가 경합할 확률이 높다. 특히 중동 카타르 스타스 리그에는 남태희(레퀴야)라는 유력 주자가 있다.
홍심(心)도 거의 드러났다. 4경기로 국내파 실험 종료를 선언했다. 그래서 페루 평가전은 국내 선수들에게는 마지막 찬스였다. 동아시안컵에 나섰다가 페루 평가전에 뽑히지 못한 선수들은 큰 변수가 없는 한 재발탁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동아시안컵 엔트리 23명, 페루 평가전 엔트리 20명. 이 중 교집합은 13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필드 플레이어만 보면 12명. 홍명보호 1, 2기에 발탁된 멤버들 중에 미드필더 진영의 변화가 가장 심했고, 과거 연령별 청소년대표팀과 2012 런던올림픽을 경험했거나 본 무대를 밟아봤던 ‘홍명보의 아이들’이 대거 포함된 게 특징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페루와의 경기를 무승부로 마친 뒤 코치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임자 최강희 감독(현 전북 현대)은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최종전(쿠웨이트)과 최종예선 8경기를 책임졌다. ‘시한부’ 논란을 빚은 퇴임 시기를 명확히 한 이례적인 계약을 체결한 가운데 2012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6개월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당시 최 전 감독에게 많이 쏟아졌던 비난들은 크게 두 가지로 통일됐다. ▲베테랑 중시(그것도 국내파 위주) ▲무색무취 전술이었다.
2010남아공월드컵 16강과 2011 카타르 아시안컵 3위를 거치면서 한국 축구의 주축으로 떠오른 유럽 리거들에게 최 전 감독과 함께 보낸 시간은 결코 기분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베스트11은커녕, 후반 조커로 출전하는 경우도 잦았고 심지어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한 유럽파 선수는 자신의 측근을 통해 “예전 감독님들은 대표팀 선발 시기가 다가오면 코치님을 통해 해당 선수의 몸 상태를 물어오거나 안부도 묻곤 하셨는데 최 전 감독님은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선발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사실 K리그에서 진가를 알리고, 명성을 떨친 만큼 최 전 감독의 마음에는 “국내파도 전혀 해외파에 비해 뒤질 게 없다. 실력도 차이가 없다”란 생각이 있었다. 최강희호 캡틴 곽태휘(알 샤밥), 이동국(전북 현대), 타깃맨 김신욱(울산 현대) 등이 중용된 게 당연했다.
하지만 홍명보호에서는 이들의 자취를 거의 찾을 수 없게 됐다. 곽태휘와 이동국은 아예 승선하지 못했고, 김신욱도 동아시안컵에서의 미미한 활약 탓에 9월 이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처지다. 이동국과 김신욱에 대해 홍 감독은 이렇게 밝혔다. “이동국은 이미 검증된 선수다. 지금은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다. 김신욱도 좋은 능력을 가졌지만 (투입되면) 너무 플레이가 단순하다. 휘슬이 울릴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막판 15분 동안 상대에 우리 전술을 알려주는 건 치명적일 수 있다. 장점을 살리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이동국은 자신의 색채에 입혀보지 않은 상태에서, 김신욱은 전술적인 운영을 이유로 도려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물론 완전히 희망이 꺾인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 되돌아올 수도 있다. 다만 기약이 없다는 게 문제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