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내년 지방선거 이야기를 나누던 한 새누리당 의원은 광역단체장 대목에서 대뜸 이렇게 말했다. 친박근혜계 핵심인 서병수 전 사무총장, 원조 친박인 유기준 최고위원 등 꽤 중량감 있는 부산시장 후보군 사이에서 마흔두 살의 신예, 김세연 의원(재선·부산 금정)이 선두를 탈환했다. 그걸 두고 이 의원은 “김 의원이 누구 라인인 줄 아느냐”고 물었다. 김 의원은 중립 성향으로 분류된다. 누구 사람인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부산에 기반을 둔 김무성 의원(왼쪽)은 대구·경북에, 대구에 기반을 둔 유승민 의원은 부산·경남에 어느 정도 자기 세력이 있어야 당권주자로서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일요신문 DB
사실 부산시장 후보 결정은 차기 당권, 나아가 대권 주자로까지 꼽히는 김무성 의원 손에 달렸다는 관측이 많다. 김무성 의원 스스로 “부산시장 후보 결정은 누구나 예상하는 빤한 게임은 안 될 것이다. 포커판에서 끝까지 승패를 알 수 없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버닝하트(Burning Heart) 게임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신중하게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뜬금없이 ‘친유승민계’가 두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대구시장 후보군도 묘하다. 현역 의원 중 공식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은 없지만 재선의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병)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권력까지 장악하려면 충성도 높은 친박 인사를 공천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조 의원이 대구시장 후보에 가장 유력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 조 의원이 누구와 가까울까. 바로 김무성 의원이다. 한 여권 관계자의 말은 이랬다.
“조 의원은 김무성 의원이 탈박 인사로 변두리에 물러나 있을 때에도 인연을 유지해 왔다. 서글픈 처지에 있던 김무성 의원이 조 의원을 고맙게 여겼다. 김무성 의원이 올해 1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국에 갈 때 조 의원을 데려갔다. 조 의원이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해온 중국통이기도 하지만 김 의원이 그만큼 조 의원을 배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각각 대구와 부산에 기반을 둔 유승민·김무성 의원과 친한 인사들이 상대 지역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오는 시나리오가 바로 ‘영남내전’이다. 권력의지가 분명한 유·김 두 의원으로선 서로의 안방 공략이 절대 과제다. 새누리당의 기반은 영남권이고, 영남에서 절대적 지지를 얻어야만 당권이든 대권이든 쟁취가 가능하다.
김 의원은 TK(대구·경북)에, 유 의원은 PK(부산·경남)에 어느 정도 세력화를 해놓아야 당권주자로서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부산과 대구는 이명박 정부에서 동남권 신공항을 두고 갈등을 빚으면서 완전히 남이 됐다. “우리가 남이가”라며 다시 뭉치기에는 그 골이 너무 깊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항간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대구시장 후보군을 조용히 물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현직 의원과 기업가 출신 중에서 대구경제 살리기에 적합한 인물이 누구냐를 사석에서 묻고 다닌다는 전언이다. 일각에선 “김무성 라인으로 분류되는 조 의원보다는 유 의원과 가까운 사람을 찾아 영남권 세력화 다지기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쯤에서 두 사람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둘은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멀어진 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친박계 좌장 역할을 했던 김 의원은 18대 국회 세종시 수정안 정국에서 박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밝히고 친박계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때 ‘까칠한’ 비서실장 역을 했던 유 의원은 현안마다 직언을 서슴지 않다 멀어진 케이스다. 유 의원은 스스로 “(박 대통령과) 상하관계, 수직관계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동료이고 동지”라고 밝힌 바 있다.
두 의원은 모두 2세 정치인으로서 ‘아버지 스타일’을 물려받았다. 김 의원의 부친은 1960년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낸 김용주 전 의원이다. 유 의원의 아버지는 민자당 재선의 유수호 전 의원이다.
또한 현재 둘 다 칩거 중이다. 김 의원은 대선 정국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입수해 민주당으로부터 국정원 국조특위 증인으로 나서라는 압박을 받으면서, 유 의원은 박근혜 정부 초반에는 말을 삼가겠다며 조용히 지내고 있다. 칩거 스타일은 다르다. 김 의원은 7월부터 벌써 세 번째 해외로 나갔다. 싱가포르, 몽골, 중국 등지로 동료 의원들과 다녀왔다는 후문이다. 유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과 국회 본청 국방위원장실을 오가며 사람을 만나거나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 정치권 인사의 분석이다.
“김 의원은 사교성이 좋지만 유 의원은 부족하다. 정책적 내공이나 종합적 사고력은 유 의원이 낫다. 대신 김 의원은 참모진 그룹이 있고, 또 참모가 되겠다는 인사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유 의원은 그렇지 않다. 대중성은 김 의원이 앞서지만 콘텐츠 면에서는 유 의원이 유리해 보인다. 언론은 김 의원에게 보다 우호적이다. 하지만 유 의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친밀도가 높고 충성도도 크며 마니아적이다. 김 의원 주변 인물은 언제든 떠날 가능성이 있다.”
김 의원은 친이, 친박 가리지 않고 두루 친하게 지내지만 유 의원과 가까운 인사로는 이혜훈 최고위원,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구상찬 상하이 총영사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수가 적다.
최근 언론사와 정보기관에서는 칩거 중인 두 중진의 움직임에 대해 사소한 것이라도 정보보고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새 계보의 출현은 정치권에서 작지 않은 뉴스거리이기 때문이다. 국회 쪽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기관 관계자의 분석이다.
“현재로선 ‘무대(김무성 대장)가 대세’지만 정치부 기자와 국회의원, 보좌진 사이에서 ‘유빠’의 출현이 감지된다. 아직 싹을 틔우는 수준이지만 유 의원만한 인물이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유 의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가 매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박근혜 정부 초반이어서 비판적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유 의원이 디데이를 정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포스트’들 간의 경쟁이 막을 올릴 것이다. 일각에선 대화록 유출 파문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김 의원이 당권 경쟁에서 빠질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지방선거 정국, 조만간 ‘MS(무성)’와 ‘SM(승민)’의 대결도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