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깁슨은 할리우드의 이슈 메이커였다.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거센 비난에 시달려 결국은 자신의 경솔함을 인정해야 했고, 그가 연출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로 반유대주의자로 몰렸을 땐 강하게 반발했다. 멕시코인을 비하하는 ‘웨트백’(wetback)이라는 단어를 써서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는 정신과의사로부터 조울증 진단을 받기도 했는데, 그의 정치적 입장은 그 증상을 가장 잘 대변한다. 그는 보수적 공화당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극도로 비판적이었다. <아포칼립토>(2006)의 침략자들이 부시 정권을 비유한 것이라고 밝히는 그는 안락사나 인간 복제 그리고 낙태에 반대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그는 가톨리시즘에 입각한 휴머니스트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형제도에 찬성한다. 스타덤에 오른 후에도 폭음하는 버릇은 여전했고, 1980년대 말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토록 불안한 정신 상태의 소유자가 그토록 긴 세월 동안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26년 동안 그의 곁을 지켰던 아내 로빈 깁슨 덕이었다. 1970년대 말 치과 간호사와 무명배우 시절에 만난 로빈과 멜 깁슨은 1980년에 결혼해 딸 하나와 아들 여섯을 낳으며 가정생활을 유지했다. 하지만 몇 차례 재활원을 드나든 적이 있었지만 그는 알코올 중독 증세를 고치지 못했고, 2006년엔 급기야 음주 운전으로 말리부 해변에서 체포된다. 아내 로빈은 그 다음날 별거를 선언하고 집을 떠났다. 어쩌면 처음엔 경고 수준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9년에 로빈은 정식으로 이혼 소송을 제기한다. 별거 중이긴 하지만 아직은 법적 부부인 상태에서 멜 깁슨이 어느 미녀와 해변에서 껴안고 뒹구는 파파라치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옥사나 그리고리에바. 멜 깁슨보다 14세 연하의 러시아 피아니스트로, 제임스 본드 캐릭터로 유명한 티모시 달턴의 전처였다.
결국 깁슨 부부는 헤어졌고 멜 깁슨이 로빈에게 지불한 4억 달러의 위자료는 할리우드 사상 최고액이었다. 이후 멜 깁슨은 그리고리에바와 함께 살았고 2009년엔 딸 루시아를 낳았다. 하지만 2010년 4월부터 그들은 별거에 들어가며, 2010년 6월 그리고리에바는 법원에 멜 깁슨의 접근 금지 명령을 신청한다. 이유는 멜 깁슨의 폭력. 멜 깁슨은 별거에 들어가기 전, 정확히는 2010년 1월 6일에 자신에게 끔찍한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그 정황은 이렇다. 일단 멜 깁슨은 그리고리에바의 목을 잡은 상태에서 주먹으로 정확히 두 대의 강한 펀치를 날렸다. 그리고 그녀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멜 깁슨은 동거녀 그리고리에바에 대한 욕설과 폭력으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이때 멜 깁슨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 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2010년 7월 9일의 일이었다. 깁슨과 통화하던 중 그리고리에바가 녹음한 것으로 깁슨의 폭력성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였다. 이것마저 멜 깁슨은 조작한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거의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오디오 파일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깁슨은 전화기에 대고 그리고리에바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발정기의 돼지 같은 X아! 깜둥이떼가 널 돌아가면서 강간한다고 해도, 넌 누구 탓도 못할 X이야!”
이 파일이 공개되자 그의 소속사인 윌리엄 모리스는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인권 운동가들은 멜 깁슨의 인종주의와 남성중심주의를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야 한다며, 그가 출연하거나 연출하거나 제작한 영화들은 영원히 불매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깁슨의 전처인 로빈은 법정에서 자신은 그런 폭력적인 행동을 당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지만, 결국 멜 깁슨은 유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2011년 8월 3월에 75만 달러의 합의금과 함께 셔먼 오크스에 있는 집을 그리고리에바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딸 루시아의 양육권도 빼앗겼다.
하지만 멜 깁슨이 입은 가장 큰 타격은 배우 인생의 급락이었다. <엣지 오브 다크니스>(2010) <비버>(2011) 등의 영화는 주목 받지 못했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영화에선 그를 주연진에 포함시키지 않게 되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왕년의 액션 스타들을 꾸준히 모으고 있는 <익스벤더블> 시리즈의 3편에 출연하기로 한 멜 깁슨. 과연 그는 부활할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