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중국인들의 입에 흔히 오르내리는 ‘라오바니앙’이란 영어로는 ‘보스 레이디(boss lady)’를 의미한다. 원래 의미는 ‘사장 부인’이란 뜻이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여사장’이란 뜻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기업을 경영하는 경우가 많은 중국에서 ‘라오바니앙’은 종종 ‘사업을 경영하는 사장 부인’을 의미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처럼 중국에서 부부가 함께 경영하는 형태의 사업은 길거리에서 음료를 팔거나 레스토랑을 운영하거나, 그리고 하숙집을 운영할 때에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결혼과 사업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뒤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언론재벌 머독과 결혼한 웬디 덩은 중국 투자를 책임지고 이끌기도 했다. 현재는 이혼 소송 중이다. 로이터/뉴시스
가령 중국 최대의 온라인 서점인 ‘당당닷컴’의 경우에도 창업주는 페기 유와 리궈칭 부부다. 현재 유는 회장직에, 그리고 리는 최고경영자(CEO)직에 올라있다. 또한 중국 최대의 부동산개발회사인 ‘소호’의 경우에는 장신과 판스이 부부가 공동 창업주다. 최고경영자(CEO)인 장신은 ‘중국 부동산 여왕’이라고 불리며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고 있고, 남편인 판은 회장직을 보고 있다.
한때 최고 여성 부호였던 우야쥔 회장.
‘뉴스코퍼레이션’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과 결혼한 웬디 덩도 빼놓을 수 없다. 머독 소유의 홍콩 스타TV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할 당시 만났던 둘은 1년여의 열애 끝에 1999년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머독의 아내에만 머물지 않았던 덩은 머독의 중국 투자를 앞장서서 책임지고 이끌었으며, ‘마이스페이스 차이나’의 전략담당을 맡는 등 활발하게 기업 경영에 참가했다(현재 둘은 이혼 소송 중이다).
장신-판스이 부부. 장신은 ‘부동산 여왕’으로 불린다.
이런 중국의 독특한 현상에 대해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에이미 핸서는 “중국의 여성들은 서구권 여성들에 비해 오래 전부터 경제 발전과 현대 사업 및 기업의 성장에 있어 보다 공평한 대우를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여성들이 경제발전에 있어 오래 전부터 소외되어 온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페기 유-리궈칭 부부는 ‘당당닷컴’ 공동 창업주다.
또한 미국인들은 직장과 가정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중국인들은 예부터 가족 친인척이나 지인들을 회사에 고용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핸서는 이에 대해 “미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가족 기업을 더 중요시 여긴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머독 일가들이 근래 들어 덩에게 더 이상 기업 경영에 참견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는 것은 중국인들에게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결혼에 대한 중국인들의 태도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결혼에 대해서만큼은 지나칠 정도로 실용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가령 신부는 시집을 올 때 적지 않은 지참금을 들고 왔으며, 여전히 이런 전통은 일부 시골 마을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된 사회보장제도가 없기 때문에 이런 결혼은 여자나 남자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다. 결혼과 동시에 재정적 안정을 가져다줌과 동시에 건강보험, 노후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에 <데일리비스트>는 이런 배경 때문에 중국에서 결혼이 기업 간 합병처럼 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말했다. 또한 덩이 미국인들에게는 ‘골드 디거’ 즉 ‘돈만 쫓는 여자’처럼 비쳤을 수도 있지만 중국인들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한편에서는 덩을 ‘롤모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부부가 함께 회사를 경영하다 보니 이혼과 동시에 부가 절반 이상 줄어드는 경우도 흔치 않게 발생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 최고의 여성 부호였던 ‘룽후부동산’의 우야쥔 회장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공동창업자인 남편 차이쿠이와 이혼하면서 공동 소유 지분의 상당부분을 남편에게 내줘야 했던 것. 현재 그녀의 지분 보유량은 72%에서 43%로 급감했으며, 순자산 역시 73억 달러(약 8조 1790억 원)에서 42억 달러(약 4조 7000억 원)로 줄어든 상태다.
우야쥔이 이혼한 후 현재 중국 여성 부호 1위는 부동산개발회사인 ‘컨트리가든 홀딩스’의 양후이옌 사장에게 넘어갔다. 양후이옌 사장의 순자산은 50억 달러(약 5조 6000억 원)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