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안병학은 원광대 2년생이던 2001년 보스턴에 입단했다. 원체 계약 규모가 컸기에 미국 야구전문가들도 안병학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봤다. 하지만, 안병학은 다음해인 2002년 8월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됐고, 메이저리그 승격의 꿈은 점점 멀어져갔다.
안병학은 2004년을 끝으로 미국 야구를 정리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프로구단 입단을 알아봤다. 그러나 KBO 관계자는 “야구규약에 명시된 ‘2년 자격정지’ 조항 때문에 바로 입단하긴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아쉬움을 삼키고 안병학은 군 문제부터 해결할 생각으로 상무 문을 노크했다. 테스트까지 치르며 상무행이 확정적이었지만, 서류 마감 3일을 앞두고 상무 측으로부터 “‘2년 자격제한’ 때문에 상무 입대가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마음이 급했던 안병학은 경찰청 문도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안병학은 할 수 없이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간 근무했다. 밤마다 개인훈련을 진행하며 KBO리그 도전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안병학은 “류제국처럼 입단할 구단이 결정돼 있으면 그 구단으로부터 훈련지원을 받을 텐데, 나처럼 갈 데가 없는 선수들은 혼자 훈련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러닝밖엔 할 수 있는 훈련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2007년 말. 안병학은 우여곡절 끝에 롯데 신고선수로 국내 무대를 밟았다. ‘남들보다 늦게 KBO리그를 밟은 만큼 최고의 성적을 내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의욕이 지나치게 앞섰던 까닭일까. 어깨 부상을 당하며 1군 무대에도 오르지 못한 채 2년 뒤 쓸쓸하게 은퇴해야 했다. 현재 안병학은 부산공고에서 코치로 활약 중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