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영화 <스파이>(➊➋)가 20년 전 개봉한 <트루라이즈>(➌➍)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출을 맡은 이승준 감독은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트루라이즈>는 첩보 코미디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라며 “남편이 스파이고 아내가 그 사실을 모른다는 설정이 비슷해 보일 수 있다”는 점만큼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스파이>는 <트루라이즈>와 달리 한국 관객이 느끼는 공감대가 있다”며 “새롭고 재미있는 인물들도 등장한다”고 의문의 시선들을 경계했다. ‘한국적 개성’이 있는 영화가 <스파이>라는 설명이다.
여러 시선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는 개봉하자마자 흥행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명절 분위기에 잘 맞아떨어지는 ‘보기 편한’ 코미디 장르라는 장점이 관객과 적절하게 통한 결과다.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에는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을 가능성도 있다. 예년보다 연휴는 길지만 이 시기를 공략하는 영화는 <스파이>와 사극 <관상>을 제외하곤 특별히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계는 흥행과는 별도로 할리우드 유명작품들과의 유사성 논란이 계속 나오는 것에 우려의 시선을 표하고 있다. <스파이>뿐 아니라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 가운데 이런 논란에 휩싸이는 작품의 수가 갈수록 늘고 있는 것도 우려가 가중되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개봉해 1200만 관객을 모은 이병헌 주연의 <광해, 왕이 된 남자>(광해) 역시 개봉 당시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영화를 본 관객들은 기본 구성부터 <데이브>와 흡사하다는 지적을 꺼냈다.
광해(위), 최종병기 활(아래)
이 밖에도 영화 <최종병기 활>은 개봉 당시 <아포칼립토>와, <타워>는 <타워링>과 구도가 비슷하다는 지적을 간간이 받아왔다. 이들 영화 모두 유사하다고 비교된 할리우드 영화의 판권을 구입하거나 ‘모티브를 따왔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결과적으로 이들 영화는 여러 지적과는 무관하게 관객과의 소통을 이뤘고 대부분 흥행도 성공했다. 관객 수가 늘어나면서 개봉 초 나왔던 표절 의혹 역시 수그러들었다. 영화는 관객의 선택이 모든 걸 결과를 대변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표절’과 ‘참고’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영화계에서는 우려의 시선도 거세지고 있다.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과 판권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는데 그 기준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는 애매한 표절 의혹은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게 영화 관계자들이 주로 꺼내는 지적이다.
실제로 <트루라이즈>는 프랑스의 원작 영화 <토탈라이즈>의 판권을 정식으로 구입해 할리우드식으로 리메이크했다. 할리우드는 판권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다. 한국에서 흥행하는 영화의 판권을 영화 상영이 끝나기도 전에 구입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실제로 하정우 주연의 <더 테러 라이브>는 개봉하고 보름이 지나고부터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로부터 판권 구입 요청을 받기 시작했다.
1년에 100편이 넘는 한국영화가 쏟아지는 가운데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기는 점차 어려워진다는 ‘현실론’도 나온다. 때문에 영화 관계자들은 <감시자들>이나 <내 아내의 모든 것>이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도 강조한다.
각각 550만, 460만 관객을 모아 주목받은 이들 두 영화는 기발한 소재와 짜임새 있는 이야기, 주연 배우들의 개성이 맞물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모두 해외 원작영화를 리메이크했다. <감시자들>은 홍콩 영화 <천공의 눈>을 각색했고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아르헨티나의 단편영화를 한국 관객의 입맛에 맞게 바꿨다. 이 과정에서 원작의 판권을 구입한 건 제작진이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