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1999년 부장검사 재직 때 김용철 당시 삼성 상무로부터 수백만 원 상당의 의류상품권과 에버랜드 무료이용권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 17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황 장관.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부메랑은 되돌아온다’고 했던가. 불과 일주일이 지난 6일, 이번에는 황 장관이 의혹의 도마 위에 올랐다. 채 전 총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황 장관 역시 공직자 도덕성에 관련된 문제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15년 전 황 장관이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삼성으로부터 수백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았다는 의혹이 뒤늦게 제기된 것.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박범계 의원은 지난 7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검사 시절 당시 삼성그룹에 재직했던 김용철 변호사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제보를 이미 갖고 있었다”며 의혹의 불을 지폈다.
채 전 총장이 ‘유전자 감식도 불사하겠다’며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과는 달리 황 장관은 정작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선 해명만 전할 뿐 추가적인 조치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자 이번엔 법조계에서도 ‘채 전 총장 사건과 달리 본인 의혹에 대해 너무 무책임하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황 장관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는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이와 관련된 직접적인 당사자면서 최초 폭로를 한 김용철 변호사(당시 삼성 재무팀 구조본 상무)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황 장관에게 상품권 등을 건넨 건 맞다”고 재차 강조했다. 8일 김용철 변호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석에서 나온 얘기가 마치 내가 황 장관을 겨냥해 폭로한 것처럼 보도돼서 난감하더라”고 하면서도 “그래도 사실인데 어떻게 하는가. 뒤늦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떡값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때 도덕의 관념으로는 인사치레 격으로 분류될 수 있는 약소한 선물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그래도 그렇지. (상품권을) 받아놓고 왜 안 받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의 상품권 수수 관행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삼성 측에) 그게(에버랜드 무료 이용권이) 쌓여 있었다. 검사들한테 에버랜드 이용권은 자주 줬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검사들한테 주면 좋아했다”며 “그래도 옷 표(제일모직 시착권)는 함부로 주지 않았다.
사실상 상품권인데…”라고 말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황 장관에게 99년경 제일모직 의류시착권 한 장과 에버랜드 상품권 한 장씩을 담은 봉투 여러 개를 건넸다”며 문제의 ‘옷 표’에 대한 사연을 털어놨다. 액수 별로 30만, 50만, 100만, 120만 원권으로 나눠지는 제일모직 의류시착권 중 가장 고액인 100만, 120만 원 상당의 시착권이 당시 삼성 임원의 성매매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팀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제일모직 시착권은 고가인 만큼 김 변호사의 앞서의 주장처럼 당시 삼성 구조본 팀에서도 검찰 측에 자주 건네지는 ‘선물’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만큼 특별한 선물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김 변호사는 인터뷰 도중 특이한 의혹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김 변호사는 “부하 직원에게 주라고 건넸던 상품권들이 황 장관을 거치면서 일부가 사라진 것 같다”며 당시의 비화를 털어놨다. 그는 “황 장관에게 ‘후배 검사들에게 나눠줘라’며 상품권을 건네고 몇 년 뒤 후배 검사들을 사석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래서 내가 ‘애들 옷 좀 사줬느냐’고 물었더니 ‘무슨 소리냐, 에버랜드 이용권밖에 못 받았다’며 크게 놀라더라. 그래서 그때 눈치를 챘는데, ‘아마 (황 장관이) 중간에서 고가의 의류 시착권만 가져간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후배 검사들이 안 돼 보여 ‘애들 옷이라도 사 입히라’는 마음에 건넨 상품권들이 중간에 일부 없어진 것을 알고 조금 황당해했다고 한다. 누가 가져간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정황을 되짚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후배 검사들 것 말고 황 장관과 황 장관의 당시 상사들 몫까지 챙겨서 건넸는데 왜 후배들 몫이 없어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100만~120만 원 상당의 의류시착권이 최소 6장 정도였으니 중간에서 600만~700만 원 상당의 시착권들이 없어진 셈인데 누가 가져가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추정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의 이 같은 의혹 제기에 대해 황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미 보도자료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런 일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이런 황 장관의 부인에 대해 기자는 김 변호사에게 다시 확인을 했다. “황 장관은 금시초문이라고 하더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는 기자의 질문에 김 변호사는 “기억을 못하겠지. 워낙 많으니까. 당시 아무거나 받은 걸로 아는데 어떻게 기억하겠어”라는 의미심장한 답을 내놓았다.
한편 ‘떡값’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나선 황 장관의 해명이 또 다른 당사자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에 따라 일부 석연치 않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법조계에서는 ‘황 장관 스스로 감찰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법사위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수상한 일이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이 부분에 대해 철저히 검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안 정의당 부대변인 역시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 대상은 아니라 해도 황 장관에게 떡값 수수 의혹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런 정치권의 문제제기에 대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해진다.
광주=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검사 사퇴 후 삼성행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그러나 이 수사를 만류한 당시 검찰 수뇌부와의 갈등으로 정기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한 김 변호사는 1997년 삼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2004년 8월까지 삼성 구조조정본부에서 재무담당 임원과 법무팀장 등을 지내며 안기부 X파일사건과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 등 삼성그룹의 주요 현안들을 처리했다.
특히 그는 당시 검사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삼성 재무팀 소속으로 활동해와 삼성 불법비자금 및 정·관·법조계로의 각종 로비 과정에 대해 정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