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에 불과한 이하진 3단이 국제바둑연맹 사무총장에 내정돼 화제가 되고 있다.
내년 여름에는 우리가 바통을 넘겨받는데, 지난 4월 한국기원이 이하진 3단을 사무총장으로 선택한 것은 “일단 신선하다”는 평을 들었다. 한국기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영어에 자유롭고, 국제감각과 실무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발탁의 배경이라는 것, 실무능력은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아닌 게 아니라 이3단의 영어 실력과 국제감각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988년 대전 출생. 여섯 살 때 바둑을 시작했고,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서울에 올라와 ‘김원 도장’ ‘차수권 도장’ 등에서 공부하다가 2004년 입단했다. 중학교 3학년 입단이면 훌륭한 기록이다. 입단 후에도 계속 성적이 좋았고, 2008년 제5회 전자랜드배 주작부에서 우승, 여류 정상권으로 발돋움하면서 ‘박지은 조혜연 다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제14기 여류국수전에서 준우승했다. 당시 결승의 상대는 루이나이웨이 9단.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졌다. 그게 좀 아팠지만, 바둑계에서는 이하진을 “루이나이웨이와 겨룰 수 있고, 조만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게 되었다. “루이의 대항마로 이하진을 키우자”는 얘기도 많았는데, 그런데 이듬해 이하진은 돌연 대학진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하진 3단이 해외 바둑여행을 떠나 EU콩그레스에 참관한 모습.
2010년 이 3단은 ‘솔브릿지대학’에 입학했고, 올해 3년 만에 졸업했는데, ‘금융’ 전공으로 성적은 1등이었다. ‘솔브릿지’는 대전의 명문 사립 ‘우송학원’ ‘우송대학교’가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세운 ‘국제경영전문’ 대학교. 교수와 학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며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 솔브릿지(SolBridge)의 솔은 소나무. 이 3단에게 ‘솔브릿지’를 권한 사람은 없었다. 집은 지금도 대전. 기차 타고 서울 왔다 갔다 하면서 기차 역에 걸려있는 안내광고를 보고 스스로 찾아갔다는 것.
‘솔브릿지’를 권한 사람은 없었지만, 이하진의 실력을 알아보고 영어와 ‘해외’, 보다 넓은 세상을 권한 사람은 있었다. 한상대 교수(72)였다. 2006년 이 3단은 한 교수의 ‘영어바둑교실’ 학생이었다. 이하진은 영어에 귀가 열렸고, 바둑이 아닌 세상에도 눈을 떴다. 영어 진도에도 단연 1등이었다.
2006년에 한 교수와 바둑교실 친구들과 유럽을 돌았다. 그 후에도 해마다 한두 번 유럽이나 미국으로 바둑여행을 떠나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는 한국대사배 바둑대회도 참관·견학하면서 곳곳에 새로운 바둑친구들과 교류하고 있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지 “어릴 때 바둑을 시작해, 연구생을 거쳐 프로가 되기까지 바둑은 전쟁게임이라고만 여겼는데, 여행을 하다 보니, 그리고 대학에서 공부하다 보니 바둑이 전쟁만은 아니라는 생각, 바둑을 통해 남과 나누고 사회에 기여하는 길도 있겠다는 것, 내 어린 시절은 바둑이 전부였는데, 그래서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 우울하기도 했는데, 이제 바둑 갖고 세상에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IGF 사무총장 이하진’을 기대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스물댓 먹은 아가씨가 국제감각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바둑계를 알면 얼마나 알겠나? 영어 좀 한다고 다 되겠나?”는 우려의 소리도 물론 있다.
이하진 3단이 해외 바둑여행을 떠나 US콩그레스에 참관한 모습.
그래서 사실은 사무총장이란 말은 좀 버겁단다. 한국이 회장국이 되면 아마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한국기원 이사장이 자동으로 회장이 되고, 한국기원 사무총장이 야마시로 9단처럼 상임이사가 될 터이니, 사무국장 정도가 맞는 것 같단다. 일리가 있다. 하긴 총장이니, 국장이니 그런 타이틀이 뭐가 그리 중요하랴.
바둑과 관련 있는, 이름에 ‘세계’나 ‘국제’가 붙는 단체, 기관으로는 ‘임사(IMSA, 국제 마인드스포츠 협회)’와 ‘스포츠어코드(국제 경기단체 연맹)’ 같은 것들도 있다. IMSA는 IGF(바둑)와 체스, 브리지(bridged의 한글표기는 ‘브리지’, ‘솔브릿지’는 고유명사), 체커가 모여 “우리는 보드게임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뭉쳐서 잘해보자”고 만든 단체이다. ‘스포츠어코드’는 본부가 파리에 있는, 1967년에 출범한, 역사가 있는 단체. 96개 종목이 회원이다. 바둑이 체육, 스포츠, 두뇌스포츠, 마인드게임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3단은 “이들 단체들과 유대를 갖는 것이 바둑 세계화의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할 일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는 표시다.
이 3단을 아는 사람들, 특히 이번 국무총리배 대회에서 이 3단이 하는 일을 지켜본 사람들은 항간의 우려를 일축한다. “틀림없이 잘할 것”이란다. “젊은 아가씨여서 뭐가 어떻다고? 젊은 아가씨의 힘을 몰라서 하는 소리여. 시방 우리나라에서 늙은 남자, 젊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여자 중에서 누가 제일 힘이 세다고 생각하남? 그렇지? 1등이 젊은 여자지?”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