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감독. 사진제공=LG 트윈스
당시 LG 운영팀장이던 염경엽은 박종훈 1군 감독으로부터 “(김)기태를 2군 감독으로 데리고 오고 싶다”는 말을 듣고 이를 이영환 단장에게 보고했다. 내심 염경엽은 쾌재를 불렀다. 이유가 있었다.
김기태와 염경엽은 광주일고 동기동창생으로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사이다. 염경엽은 김기태의 지도자 능력을 높이 평가한 터였다. LG가 강팀이 되려면 일본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은 김기태 같은 지도자가 코칭스태프에 합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교 동기동창생이란 이유로 혹여 오해를 살까 염려해 김기태를 추천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박 감독이 나서 ‘김기태’를 호명했으니 속으로 쾌재를 부를 만했다.
염경엽 감독. 최준필 기자
2011시즌이 끝나고 김기태는 박 감독이 사퇴하자 LG 1군 감독으로 승격했다. 당시 김기태는 해박한 야구지식과 끊임없이 연구하는 염경엽의 자세를 높이 사 코칭스태프 합류를 계획했다. 하지만, 그즈음 염경엽이 ‘LG를 망친 주범’이란 오해를 받으며 김기태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그래도 김기태는 염경엽을 코치로 중용하려 했다. 그러나 염경엽은 “친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LG에 사표를 던졌고, 김시진 넥센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12시즌부터 넥센 수비코치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 시즌 넥센의 새 사령탑이 되고선 팀을 창단 이후 첫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끄는 기적을 연출했다.
염경엽은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을 존경하는 야구인으로 꼽는다. 소장파 감독 가운덴 삼성 류중일 감독을 좋아한다. 류 감독처럼 그도 유격수 출신에다 감독이 되기 전까지 작전 주루코치를 맡았기 때문이다.
염경엽은 “류 감독님은 자율야구를 지향하면서도 결정적 승부 땐 특유의 작전야구를 펼치는 명장”이라며 “야수 출신 감독답게 경기를 보는 시각도 매우 넓다”고 호평했다.
류중일 감독. 일요신문DB
사실 일본에 있던 김기태를 먼저 영입하려고 한 건 류중일이었다. 1999년부터 3년간 삼성에서 현역 선수로 뛰었던 김기태는 당시 팀 내 최선참이던 류중일과 각별한 관계를 맺었다. 류중일이 코치가 되고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김기태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던 류중일은 ‘내가 감독을 하면 기태는 꼭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2011년 드디어 코치 선임 결정권을 쥔 삼성 감독이 되자 LG 2군 감독이던 김기태를 영입하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김기태가 “박 감독님을 모시는 처지라, 류 감독님께 갈 수 없어 죄송하다”며 사양하자 아쉬운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류중일, 김기태, 염경엽 감독은 올 시즌 팀을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키면서 오랜 만에 동시에 웃었다. 세 사람의 질긴 인연이 언제까지 지속할지 두고 볼 일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