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입은 성인물 소지만 해도 징역?
만화업계가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2조 5항에 등장하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정의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은 아동·청소년 음란물로 규정된다. 문제는 ‘명백하게’와 ‘표현물’의 기준이 애매모호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것. 만화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교복 입은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 애니메이션을 그리거나 소지만 해도 잡혀갈 수 있다”는 식의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결코 뜬소문이 아니었다. 지난 3월 수원지방법원은 “성인 배우가 나오는 음란물이라도 교복을 입었으면 청소년 음란물”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현재 이 유형은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진행 중이다. 지난 8월에는 PC방을 운영했던 70대 할머니가 음란물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아청법 위반으로 입건돼 20년간 신상 공개 처분이 내려졌고 포인트를 쌓기 위해 파일공유(P2P)사이트에 음란물을 올렸다 아청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대학생도 있다. 아동·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전 국민을 성범죄자로 인식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아청법은 국회에서 재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실존하는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영상물’에 한해서만 아청법 적용을 받도록 했다. 민주당에서는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은 노선이 확실하지 않다. 아청법 개정이 지난 18대 국회 새누리당 주도로 이뤄졌는데 회기가 바뀌면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 탓이다. 새누리당 한 정책보좌관은 “일단 헌법소원을 기다려 보자는 의견이 있다”며 “법 개정이 이뤄진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법을 자주 바꾸게 되면 행정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는 “최민희 의원이 발의한 아청법 재개정안 통과가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야 혼란 상황에 정기국회에서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 같다. 관련 상임위에서 반대 목소리도 있다고 들었다”며 “1997년 등장한 청보법(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 보호라는 명목으로 각종 표현물들을 검열하는 체제로서 기능했다. 15년이 지나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법이 바뀌지 않는 한 가중 처벌을 받는 피해자가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3일 ‘만화의 날’을 맞아 만화인들은 아청법 재개정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지리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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