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PR에서 빠져나와 돈카스터로 단기 임대된 윤석영. 연합뉴스
그야말로 ‘전격 Z작전’이었다. 불과 16시간 만에 임대가 이뤄졌다. 최근 윤석영이 새롭게 구한 영국 에이전트를 통한 접촉은 몇 차례 있었지만 구단 간 서류 작업(Paper work)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25일 새벽이었다. 영국 에이전트가 돈카스터 사령탑인 폴 디코프 감독을 만나 윤석영을 긴급 임대시키기로 결정한 뒤 돈카스터 구단은 즉각 QPR 측에 2개월간 단기 임대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다.
QPR도 평소와는 달리 재빨리 움직였다. 별다른 망설임 없이 윤석영 측에 임대 사실을 알렸고, 선수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계약이 성사됐다. 윤석영은 25일 오후(현지시간 오전 11시) 계약서에 서명한 뒤 돈카스터 선수단에 합류, 같은 날 열린 미들즈브러와의 정규리그 7라운드 원정 경기에 참가했다. 더욱 놀라운 건 윤석영이 팀에 합류하자마자 실전에 투입됐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돈카스터도 얇은 선수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난해까지 K리그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던 윤석영은 2012~2013시즌이 한창이던 올해 1월 QPR과 3년 6개월 계약을 했다. 어쩌면 가장 좋은 순간일수도 있던 유럽 진출은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지난 시즌 하반기에는 아예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고, 챔피언십에서 맞이한 올 시즌은 정규리그 경기 1회, 리그 컵 2회 출전했다. 모두 8월이었다. 하지만 해리 레드냅 감독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데 실패했고 9월부터는 아예 필드를 밟지 못했다.
추락은 당연했다. 팀 훈련만 하고 제대로 뛰지 못하는 선수가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대표팀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았지만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 존재감이 없었다. 특히 브라질-말리로 이어진 10월 A매치 2연전은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계기였다.
사실 윤석영은 대표팀 합류에 앞서 레드냅 감독과 개별 면담을 했다. 내용은 온통 부정적이었다. 레드냅 감독은 “현재 팀 스쿼드가 나쁘지 않아 네게 출전 기회를 주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건 “네가 뛸 수 있는 팀을 알아봐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윤석영은 지난 여름부터 이적을 타진했다. QPR에서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클럽들이 그를 외면했다. 공식 경기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선수, 그것도 검증되지 않은 동아시아 수비수에게 선뜻 손을 내밀 팀은 없었다.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팀은 대표팀의 오른쪽 날개 이청용이 소속된 볼턴 원더러스(챔피언십)였는데, QPR은 볼턴 측의 영입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볼턴이 제안한 터무니없이 낮은 이적료에 아예 협상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후문. 올해 초 QPR과 윤석영 영입 경쟁을 벌인 풀럼은 한 번 자신들에게 등을 돌린 선수에게 다시는 손짓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여름 이적시장이 종료되고,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건 긴급 임대뿐이었다. 몇 군데 타진한 끝에 결실을 맺은 게 돈카스터다. 팀을 직접 찾아준 건 아니었지만 레드냅 감독의 허락이 없었다면 윤석영은 더욱 비참할 뻔했다.
윤석영의 모든 부침을 안팎에서 지켜본 한 유력 축구인은 “윤석영이 QPR을 선택했을 때 깜짝 놀랐다. 결과론이지만 차라리 (마틴 욜) 감독이 적극적이었던 풀럼으로 갔더라면 상황은 훨씬 좋을 뻔했다. 물론 풀럼에서 주전을 꿰찬다는 보장은 없어도 혹여 실패를 했더라도 같은 단기 임대라면 구단 선택의 폭이 프리미어리그부터 챔피언십 상위 클럽까지 좀 더 넓었을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더스타> 캡처
최근 국내 축구계를 뜨겁게 달궜던 핫이슈가 있었다. 2000년대 한국 축구 부동의 왼쪽 풀백으로 명성을 떨쳐온 이영표(36)의 현역 은퇴 소식이었다. 그는 미국메이저리그사커(MLS)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숱한 영광으로 점철된 유니폼을 벗었다.
이영표는 2011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 반납을 선언했다. 박지성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조광래 전 감독은 “한국 축구의 왼쪽 기둥들이 한꺼번에 빠졌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영표가 없는 왼쪽 수비”라고 고충을 호소했다.
이때 등장한 이가 바로 윤석영이었다. 올림픽 홍명보호가 ‘축구 종가’의 심장부 런던에서 당당히 동메달을 땄을 때도 그가 있었다. 대표팀에서도 핵심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하향곡선을 그렸다. 부족한 경기 감각을 도저히 채울 수 없었다. 이 틈을 타 김진수(21·알비렉스 니가타), 박주호(26·마인츠05)가 급부상했다. 그 사이 윤석영은 ‘넘버 원’에서 3번째 옵션으로 밀렸다. 부정할 수 없는 암울한 현실이었다. 축복과 갈채를 받으며 당당히 떠나는 이영표와 극명히 대조적인 윤석영의 모습은 묘한 오버랩을 이뤘다.
A매치 현장에서 만나는 에이전트와 전·현직 축구 감독들은 “소속 팀에서 꾸준히 잘해줘야 한다. 이청용만 해도 부동의 에이스임에 틀림없지만 정강이 부상 이후 회복되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뛰지 못하는 선수가 도태되는 건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윤석영은 내년 초 QPR로 복귀하더라도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QPR에 남을지, 떠날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만약 떠난다면 반드시 뛸 수 있는 팀이어야 한다. 월드컵 출전은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