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출신 ‘경제 투톱’ 조원동 경제수석(원 안)과 현오석 경제부총리. 배경 사진은 KDI 전경. 구윤성 인턴기자
박 대통령 당선 당시 박 대통령을 지원하는 경제전문가는 3개 그룹으로 분류됐다. 미국 위스콘신대학 출신들로 구성된 ‘위스콘신 인맥’과 대우그룹 싱크탱크였던 ‘대우경제연구소 인맥’, 그리고 박 대통령의 선친 고 박정희 대통령이 설립한 ‘KDI 인맥’이었다. 안종범 의원은 위스콘신대학과 대우경제연구소를 모두 거친 인물이었고, 문형표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말 그대로 KDI 인맥이었다. KDI가 위스콘신과 대우경제연구소를 물리친 셈이다.
박 대통령 정권 초기만 해도 위스콘신 인맥이 대우경제연구소나 KDI를 제치는 분위기였다.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강석훈 의원과 안종범 의원은 각각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와 고용복지분과 위원으로 일하며 실세로 분류됐다. 역시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인 최경환 의원은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뽑히며 여당 내 실세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청와대 핵심 중 핵심인 비서실장에 위스콘신대 공공정책학 석사 출신의 허태열 전 새누리당 의원이 임명되면서 위스콘신대가 실세 라인으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각료 중에서는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위스콘신대 사회학 박사)과 윤상직 산업통상부 장관(위스콘신대 법학 박사) 등이 자리를 잡았다.
이에 반해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의 수장 격인 이한구 의원이 박 대통령과 소원해지면서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인지 위스콘신대 출신인 강석훈 의원과 안종범 의원이 대우경제연구소를 거쳤음에도 정치권이나 경제계에서는 이들을 위스콘신 인맥으로 분류하는 분위기다. 대우경제연구소 출신 중에서는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자주 정책 조언을 구했다는 정희수 새누리당 의원이 당내 직능특별위원장을 맡았을 뿐이다.
KDI 출신은 경제 분야에서 초반 두각을 나타냈으나 경제정책이 삐걱거리면서 정권 초기 위기에 처했다. 가장 대표적인 KDI 인맥은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현오석 부총리는 부총리 임명 직전까지 KDI 사상 첫 연임 원장을 지냈고, 조원동 수석은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일한 적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투톱’이 모두 KDI 출신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정권 초기 경제정책이 흔들거리며 정치권의 경질 압박에 시달렸다. 현오석 부총리는 오락가락하는 경제성장률 전망, 세수 급감, 조세 정책 혼란 등을 이유로 여당에서조차 불신을 받았다. 특히 경제 현장에서도 ‘존재감이 없다’는 비난에 시달리면서 취임 1년도 되지 않아 낙마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왼쪽부터 대우경제연구소 출신 이한구 의원, 위스콘신대 출신 유승민 의원, 허태열 전 비서실장. 일요신문 DB
하지만 이러한 흐름이 최근 들어 급변하고 있다.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에 이어 위스콘신대 인맥마저 힘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임명 5개월 만에 경질되면서 역대 4번째 최단명 비서실장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게다가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 비해 임기가 짧았던 전윤철, 이상주 전 비서실장(이상 김대중 정부)의 경우 각각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로 영전하기 위한 것이어서 허태열 전 비서실장과는 사정이 확연히 달랐다.
허 전 실장은 말 그대로 ‘말에서 떨어진’ 낙마였다. 여기에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출신이자 박 대통령이 당 대표시절 비서실장을 지내며 ‘원조 친박’으로 불리던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국회 국방위원장)이 박 대통령의 경제 정책들을 비판하면서 친박 대열에서 이탈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이한구 의원과 유승민 의원 등에 이어 진영 전 복지부 장관까지 기존 친박 정치인들이 잇달아 등을 돌리자 정치인들은 정권에 대한 충성보다 자기 정치를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판단한 듯하다”며 “허태열 전 비서실장의 경우도 공기업 인사에서 힘을 발휘하려고 한다는 등의 말이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현상 때문에 박 대통령이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를 접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초반 위기를 겪던 KDI 출신들은 최근 들어 승승장구 중이다. 현오석 부총리와 조원동 수석은 박 대통령이 신뢰를 표명한 뒤 각종 경제정책 추진에 힘을 받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에 앞서 KDI 원장을 지냈던 현정택 인하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있는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임명됐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경제분야의 유일한 대통령 자문기구다. 이 국민경제자문회의에는 조동철 KDI 정책대학원 교수가 거시금융분야, 유경준 KDI 선임연구위원이 민생경제분과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역시 민생경제분과 자문위원이었던 문형표 KDI 선임연구위원은 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공정경제분과와 거시금융분과 자문위원인 신인석 중앙대 교수, 안덕근 서울대 교수도 KDI 출신이다.
역시 KDI 출신인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인 서영경 한국은행 부총재보가 1급 승진 6개월 만에 한은 사상 첫 여성 부총재보에 오르면서 원외지만 정권 내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경제계 인사는 “KDI가 국책연구기관이다 보니 KDI 출신들의 경우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관료 업무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관료주의에서는 벗어나 있는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며 “무엇보다도 KDI가 박 대통령 선친이 경제발전 지원을 위해 설립한 기관이기에 KDI 기관 출신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은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