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레니아는 연예계 유망주로 떠올랐지만 세계일주를 하던 중 실종됐다.
그들은 세 딸과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첫 딸이 바로 일레니아(1970년 11월 29일생)다.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일레니아는 아름답게 자라났고, 1983년 알 바노가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을 맡은 영화 <천국의 샴페인>의 현장에 놀러 갔다가 엉겁결에 출연하면서 뜻하지 않게 배우로 데뷔했다. 자연스레 쇼 비즈니스의 세계에 진출한 그녀는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각인된다.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리며 퀴즈를 푸는, 미국의 <휠 오브 포춘(Wheel of Fortune)>을 모방한 <라 루오타 델라 포투나(La Ruota Della Fortuna)>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녀의 역할은 수레바퀴를 돌리는 보조 MC. 하찮아 보이지만 매주 TV에 출연하는 고정 역할이었고, 늘씬한 키에 순수한 매력이 두드러지는 외모로 그녀는 단숨에 유망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일레니아의 꿈은 조금 다른 데 있었다. 배우가 되고 싶긴 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것. 뛰어난 어학 실력을 지녔던 일레니아는 런던의 킹스 칼리지로 유학을 떠나 영문학을 공부했고, 1학년 때 전체 수석의 자리를 차지한 수재였다. 이때 그녀는 휴학을 하고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바로 세계 일주였다. 젊은 시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원했던 일레니아는 이탈리아의 집으로 돌아와 뱃삯을 마련했고, 백팩에 간단한 옷가지와 다이어리만 넣은 채 여행길에 올랐다. 여정의 시작은 남아프리카. 그곳에서 카리브해 지역으로 옮긴 일레니아는 벨리즈에서 몇 달 정도 시간을 보낸 후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이때 일레니아의 남동생인 야리는 깜찍한 계획을 세웠다. 어릴 적부터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던 나름 전문 여행가인 야리는, 벨리즈에 갑자기 나타나 누나를 놀라게 하려 했던 것. 그는 1993년 12월 27일 벨리즈에 도착해 수소문 끝에 일레니아의 숙소를 찾아냈지만, 그녀는 바로 전날인 12월 26일에 멕시코를 향해 떠난 상태였다. 야리가 24시간만 서둘렀다면, 그래서 일레니아를 만났다면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일레니아는 멕시코를 거쳐 뉴올리언스에 도착했다. 그리곤 사라졌다. 일레니아가 부모와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를 한 건 1993년 12월 31일. 아마도 ‘해피 뉴 이어’ 인사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던 듯하다. 뉴올리언스에서 사람들이 그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건 1994년 1월 6일. 프렌치 쿼터 지역이었다.
일레니아와 부모. 아버지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가수였다.
이때 뉴올리언스 지역의 안전 요원 한 명이 일레니아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성이 미시시피강으로 뛰어들었다고 증언했다. 수색 작업이 이뤄졌지만 사체는 없었다. 만약 진짜로 뛰어내렸다 해도 이미 바다로 쓸려 내려갔을 시간이었다. 이후 일레니아는 계속 실종 상태였다. 가끔 이상한 제보가 이어졌다. 1996년엔 누군가가 경찰에 전화를 걸어 아주 단호한 어조로, 일레니아는 아직 살아 있지만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11년엔 독일의 어느 잡지에서 애리조나에 있는 성 안토니우스 그리스정교 수도원에 일레니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터무니없는 낭설이었다.
결국 남은 것은 유족들의 결단이었다. 알 바노는 아마도 일레니아는 안전 요원의 말처럼 물에 뛰어든 것 같다며, 2013년 1월 법적으로 사망 처리를 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거의 20년 만의 결정이었다. 과연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전도유망한 20대 초반의 젊은이에게 자살할 이유가 있었던 걸까? 여행 중에 겪은 어떤 일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일까? 아니면… 아직 그녀는 어디엔가 살아 있는 것일까?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긴 쉽지 않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