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4월 인터폴은 최성규 전 총경을 ‘적색 수배자’로 분류, 인터넷에 인적사항 등을 공개했다. | ||
최 전 총경을 체포한 한국계 미국 경찰 론 김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며 지나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도피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진 그가 갑자기 체포된 것을 두고 뭔가 다른 속사정이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사실 그는 미국 입국 때 ‘현지 관계자’의 도움으로 무사히 공항을 빠져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 경찰은 생활비에 쪼들리던 그에게 ‘도피자금’으로 퇴직금 9천8백만원을 송금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한미 양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오던 최 전 총경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던 그날 전격 체포된 것이다. ‘절묘한 시점’ 탓에 그의 체포를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하다. 과연 최성규 전 총경이 체포된 뒤에는 어떤 배경이 숨어있는 걸까. 그의 도피행각과 체포과정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따라가봤다.
먼저 들여다볼 부분은 최성규 전 총경의 도망자답지 않은 행보다. 그는 미국 도피생활중 그다지 ‘불안하게’ 지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현지 공공기관에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최소한 자신이 갑자기 체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 전 총경은 누군가 그를 ‘보호’해준다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최 전 총경을 직접 체포한 미국 LA경찰국 론 김 경관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 4~5일 잠복하면서 (그를) 지켜보았지만 전혀 쫓기는 사람같이 행동하지 않았다. 불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최 전 총경은 아파트 옆 공원을 산책하다 론 김 경관에게 붙잡혔다. 론 김은 체포 당시의 상황에 대해 “그는 나와 마주쳤을 때 콧수염을 기르고 운동복 차림이었다. 언뜻 보기에 동남아시아인으로 보였다. 그는 ‘윤종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나는 이미 그를 며칠 전부터 감시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최 전 총경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곧 체념한 듯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고 말했다. 최 전 총경이 도주할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아 체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비교적 ‘편안하게’ 도피생활을 했다는 정황은 또 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최 전 총경은 도피중이던 지난 연말 미국 이민국에 버젓이 비자연장신청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론 김 경관은 이에 대해 “그가 지난 연말 이민국에 비자연장 신청을 한 사실을 알고 솔직히 나도 놀랐다. 어떻게 쫓기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면서 비자를 연장할 수 있겠는가. 이 점만 보면 그가 인터폴 수배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하게 미국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전 총경은 그를 ‘돌봐주는’ 세력이 자신의 비자 연장신청에 ‘OK’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신분노출의 위험을 무릅쓴 것은 아닐까.
▲ 미국 LA에서 검거된 최성규 전 총경은 또 어떤 ‘폭탄’을 터뜨릴 것인가. 경찰청 건물과 최 전 총경. MBC-TV 촬영 | ||
최 전 총경은 당시 비자 연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브로커를 통해 비자 연장을 시도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보관계자 A씨는 “최 전 총경이 이민 브로커를 통해 비자를 신청하려다가 3천만원을 사기당했다는 소문이 떠돈 적이 있었다. 액수가 3천만원 정도면 통상 비자 변경이 아니라 영주권을 만드는 착수금에 해당한다. 아마 그가 공식적으로 비자 연장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하자 브로커를 찾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런 소문에 대해 지난 연말 경찰청 관계자도 “최 전 총경이 미국 현지에서 불법 체류기간 연장을 꾀하다 한국인 브로커에게 3천만원을 사기당했다는 첩보가 있어 조사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은밀하지 않은’ 도피행각도 의문투성이다. 그는 특수수사과장 출신의 베테랑 경찰관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도피 노하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만 지내왔다.
최 전 총경은 지난해 4월20일 뉴욕에 도착한 뒤 LA에 자주 들르다 11월 이후에는 줄곧 LA에서 생활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그 은신처는 교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한인타운이었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최 전 총경은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그는 미국 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전직 고위 경찰관계자 B씨는 “최 전 총경은 홍걸씨와 관련된 일을 하던 최규선씨의 심부름으로 미국에 자주 다녀오곤 했다. 미국에 지인도 많고 그곳 사정에도 아주 밝은 사람이다”고 말했다.
이런 그가 굳이 한인들이 많이 살고 신분이 노출되기 쉬운 LA 지역을 은신처로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B씨는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추측했다.
“미국 LA는 한국 경찰청과 가장 공조체계가 잘 이루어지는 지역이다. 한국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경찰 내에 재미교포도 상당수 있어 한국 경찰과 비교적 협조가 잘 된다. 그리고 미국에서 송환되는 경제사범의 대부분이 LA에서 송환되고 있다. 이런 점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가 왜 LA에서 지냈는지 의문이다. 아마 그를 보호해주는 사람들을 믿고 그곳에서 지냈지 않았겠느냐.”
최 전 총경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는 주소지를 한국 정부에 알리는 대담함도 보였다. 그는 지난해 8월27일 미국 LA에서 현지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퇴직금 청구서를 우편으로 보냈다. 그 주소는 LA 한인타운 내 올림픽가에 있는 간이우체국 주소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것은 그가 거주하고 있는 집의 주소가 아니라 일종의 사서함 주소였다.
그런데 그 주소(31XX W OLYMPICSHOP 1XX LA CALIFORNIA USA)는 외형상 사서함 번호가 아니라 일반 주소 형태로 돼 있어 사무실이 없는 사업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정보관계자 A씨는 이에 대해 “그 사서함 서비스를 개설하려면 본인이 와서 직접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신분증은 자신의 운전면허증이나 주 정부 ID카드 같은 것이라야 가능하다. 최 전 총경이 이 서비스를 개설할 때 최소한 자신이 사는 집의 진짜 주소나 아니면 그와 직접 연관된 주소를 제시했을 것이다”며 “만약 한국 경찰이 이 시스템을 알고 있었다면, 아니 미국 당국이 꼭 잡으려는 의지만 있었다면 그의 체포는 지난해에 벌써 이루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그런 까닭에 ‘지난 연말 최 전 총경의 부인이 미국에 간 이후 한국 수사 당국이 그의 소재를 파악해 놨다가 적당한 시기에 미국측에 정보를 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 전 총경 체포일이 한국의 정권 교체일이란 점은 우연의 일치라고만 보기 힘들다는 얘기도 있다.
최 전 총경이 미국 입국 때 미국 당국의 ‘보호’를 받았다는 것도 밝혀야 할 부분이다. 최 전 총경은 그에게 죄어오던 무언의 압력을 피해 지난해 4월14일 인도네시아로 도망간 뒤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을 경유해 4월20일 미국으로 향했다. 그는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뒤 ‘뒷문’을 통해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갔다. 6개월간의 체류허가도 받은 상태였다.
뉴욕 주재 경찰청 주재관이 그의 신병을 인도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지만 그는 비상문을 통해 입국 3시간 만에 사라져버렸다. 당시 미국측의 이러한 ‘배려’에 대해 여러 가지 의혹이 일었다.
미국 정보관계자 A씨는 이에 대해 “뉴욕의 모든 공항 터널 다리 등의 치안은 뉴욕경찰이 아니라 일종의 항만청(Port Authority Police)이 담당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했던 한 경찰관의 말에 따르면 당시 최 전 총경 입국장에는 연방경찰이 와서 지휘를 했고 정작 관할 당사자인 자신들은 담당을 하지 않아 상황을 잘 모른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FBI가 데려갔다는 말도 있었다”고 전했다.
왜 미국이 최 전 총경에 대해 이렇게 ‘배려’를 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최 전 총경의 ‘정보원’으로서의 가치 때문에 미국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최 전 총경이 경찰청 내에서 가장 고급정보를 다루는 특수수사과에서 장기간 재직하면서 미국 정보기관과 적잖은 ‘교류’를 했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전직 고위 경찰간부 B씨는 “최 전 총경이 미국 정보원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비약된 것이다. 특수수사과장 자리는 1~2년 정도 재직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미국 정보기관과 정보를 나눌 위치에 있지 않다. 그래도 특수수사과는 고급 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외국 정보기관과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서로 정보를 교류하다보면 친분이 생길 수도 있다. 최 전 총경이 미국에 입국할 때 정부 차원이 아니더라도 그를 아는 어느 정보기관의 수사팀 실무자들이 그의 입국에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다. 미국 정보기관의 속성상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고도 부서의 책임자 선에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최 전 총경의 체포 이후 그와 가족들이 보인 ‘예사롭지 않은’ 반응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그의 부인 정씨는 보석을 결정하는 재판(Bond Hearing)에서 구금이 확정되자 울음을 터뜨리며 한국 정부를 원망했다고 전해진다. 정씨가 재판이 끝난 뒤 “우리가 무슨 죄가 있느냐. 한국에 가서 모두 밝히겠다”고 말했다는 것.
정씨는 측근들에게 “남편이 죄도 없는데 미국에서 고생만 하다가 송환된다는 점에 몹시 분노한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정씨는 또 “남편이 자진귀국 의사를 굳히고 이미 주변 인사들과 충분한 상의를 했는데 귀국 전에 체포돼 안타깝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최 전 총경이 한국에 돌아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메가톤급 증언’을 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당시 최 전 총경은 눈물을 흘리면서 법정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혹시 누군가로부터 ‘배신’을 당해 흘린 회한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최 전 총경의 눈물을 흘리게 한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일까. 앞으로 최 전 총경의 ‘입’이 주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최 전 총경은 LA 연방검찰청에 범죄인 인도재판을 포기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당초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최 전 총경 송환 시기가 한 달 이내로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대해 LA 총영사관 강성공 주재관은 “범인 인도 재판을 본인이 포기할 경우 빨리 한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 재판을 포기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10개월간의 도피 생활에 지친 데다 건강도 악화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최 전 총경은 혈압이 높아 혈압약을 항시 복용할 정도로 건강이 안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부인의 건강도 악화돼 그의 귀국 결심을 재촉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