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우는 “이만수 감독님이 다른 팀에서도 열심히 잘하라고 덕담을 건네셨다”며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FA 얘기를 해보자. 일단 생애 첫 FA 계약을 치른 소감이 어떤가.
“FA를 앞두고 행복할 줄로만 알았다. 행복한 고민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행복하지 않더라.”
-어느 선수보다 말이 많았던 FA 계약이었다. 굳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미스터리’로 포장돼 돌아다닌 소문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참, 이게 그렇다. 선수 입장에선 한솥밥을 먹었던 팀을 상대로 이러쿵저렁쿵 말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계약 이후 배신감을 느낀 팬들의 비난도 받았고, 상처가 되는 오해도 받았다. 순간 진실을 말하고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일일이 대응을 하면 다시 얼굴보기가 어려울 듯했다. 그래서 입을 닫았다.”
-SK와의 협상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11월 16일 원소속팀과의 협상이 끝날 때까지 모두 5차례 만남을 가졌다. 9년 동안 SK 선수로 뛰면서 1번타자 ‘정근우’를 있게 해준 팀이기에 꼭 남고 싶었다. 원래는 지난 10월 정규리그 종료되자마자 바로 계약을 하자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구단에서 전화 한 통 없었다. 그러다 11월 11일 처음 만남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단에선 계속 나한테 액수를 말하라고 하고, 난 구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갖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말하고….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다가 처음으로 70억 원이란 숫자를 제시받은 게 16일, 마지막 협상하는 자리에서였다.”
-그런데 왜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았나.
“구단에선 내가 80억 원을 달라고 했다고 발표했는데, 그 액수가 나오게 된 과정도 재미있다. 그러나 지금은 자세한 내용을 밝히고 싶지 않다. 자꾸 SK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노출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 속으로 묻어두겠다. 만약 내가 80억 원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한화와 70억 원에 계약을 했겠나. 다섯 차례의 협상 과정에서 감정이 상했던 부분이 크다. 내가 여러 차례 SK의 진정성을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협상이 결렬된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아닌 진정성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날 원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태균이 한화에 입단한 정근우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구단 관계자분과 마지막 협상을 가지면서 서로 의견차이를 확인한 후에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면서 저녁 9시쯤 헤어졌다. 어차피 1주일 후면 다시 SK와 협상을 해야 하고, 원소속팀과의 협상 종료 마감 시한도 3시간 정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좀 더 고민하고 싶었다. 그런데 구단에선 나랑 헤어진 지 5분 만에 ‘정근우 협상 결렬, 선수는 80억 요구, 구단은 70억 제시’라는 발표를 해버렸다. 순간 ‘이게 뭐지?’ 싶었다. 마치 나랑 협상이 끝나길 바랐던 것처럼, 헤어진 지 5분 만에 발표를 하는 의도를 모르겠더라. 그건 마치 나가라고 등 떠민 것 같은 느낌을 줬다. 그래서 바로 구단 관계자 분께 전화를 드렸다. 집에 와서 보니 이런 기사가 떴는데, 아직 (협상 마감)시간도 남아있으니 기사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70억 원이란 얘기는 마지막에 처음 들었던 액수이고, 거기에 사인할지 여부를 놓고 고민 중인데 이렇게 기사를 내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얘기냐고도 물었다. 그리고 ‘내려주십시오’라고 다시 부탁했다. 하지만 내 전화를 받으신 분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시더라.”
-그때 나온 기사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은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서 기사를 보고, 또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아내와 많이 울었다. 팀의 진정성을 느끼고 싶었던 내 마음이 돈의 액수 갖고 장난치는 배은망덕한 놈으로 변모해 있었다. 돈? 중요하다. 하지만, 난 무조건 SK에 남고 싶었다. FA 앞두고 이런저런 소문이 있었지만, 난 다른 유니폼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FA 선수로서 존중을 받고 싶었던 내가 잘못된 행동인가.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싶었던 내가 그릇된 생각을 한 것인가. 결국엔 모든 게 틀어졌다.”
-그래서 한화와 계약을 하게 된 건가.
“16일 자정이 넘어가니까 바로 한화에서 전화를 해오더라. 집 앞이라고 했다. 내려가서 한화 관계자 분과 차분히 대화를 나누는데, 내가 그토록 느끼고 싶었던 진정성이 와 닿았다. 이 말이 팬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데 대해 이해를 구한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고 믿으면서…. 내가 머리를 쓰는 놈이었다면 발표 시점을 조절하거나 액수를 더 올려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내 상황에 충실했다. 한화가 보여준 진정성에 바로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었다.”
정근우는 이제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평가와 비난은 내년 시즌 야구를 통해 증명해 보이겠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