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손길승 회장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시점은 9월 말. 이때부터 검찰 주변에서는 ‘SK가 거액의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즈음 <일요신문>에 의해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이 출국금지됐음이 밝혀진 뒤 상황은 급변했다. <일요신문> 보도 직후, 검찰은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등 두 사람에 대한 출국금지 사실을 공개한 데 이어, 열린우리당 이상수 의원까지 SK 비자금과 관련, 소환 조사할 것임을 밝혔다.
올 초 SK(주) 최태원 회장의 구속을 가져왔던 SK 분식회계 사건과 부당내부거래 사건이 비자금 사건과 대선자금 사건으로 형질변경되는 순간이었다. 더욱 극적인 상황은 그 다음이었다. 지난 10월10일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것. 내각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사표제출로 이어졌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의 사표를 반려하는 한편, 10월13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12월15일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묻자’고 제안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으로 정치권이 요동치는 사이, 검찰은 SK 비자금 수사는 ‘법대로’ 진행할 것임을 천명했다. 이어 지난 10월16일 안대희 중수부장은 ‘선거 때 돈 챙겨 해외 빌딩 산 사람이 있다’는 발언으로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안 부장의 발언이 나온 시점은 ‘최돈웅 의원이 SK로부터 1백억원의 대선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던 시점이었다. 결국 며칠 뒤인 지난 10월21일 최돈웅 의원은 ‘SK로부터 1백억원을 수수한 사실’을 시인했다. 이때부터 재신임 정국은 자연스럽게 비자금 정국으로 전환됐다.
아무튼 검찰은 지난 10월24일 최도술 전 비서관에 대한 중간수사를 발표했고, 10월25일부터 26일까지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를 비롯, 4당 대표와 연쇄회동을 가졌다. ‘연쇄회동’에서 ‘대선자금’과 ‘측근 비리’에 대한 ‘특검’을 주장하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결정하자’며 거절했다. 지난 10월27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SK 비자금 1백억원 유입과 관련, 사과회견을 가졌다. 그러나 한번 불거진 대선자금에 대한 의혹과 수사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노 대통령이 기자 간담회를 통해 ‘대선자금 전반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지난 11월2일 노 대통령이 ‘이렇게 된 마당에 기업도 협력해야 한다’며 ‘한번은 치르고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기업인들도 협력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것. 이 기자간담회를 기점으로 검찰의 수사범위는 SK를 넘어 대기업 전반으로 확대된다.
지난 11월13일 검찰은 강유식 LG 부회장 등 10여 명에 대해 출국금지한 사실을 공개하는 한편, 14일 김영일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소환 조사했다. 또한, 현대차 등 대기업 계좌추적에 돌입하는 등 본격적인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수사팀을 보강하는 한편,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등 핵심인사들에 대해 출금조치하는 등 수사 강도를 한층 높였다.
지난 11월18일에는 LG홈쇼핑을 전격 압수수색했고, 19일에는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을 소환조사하는 등 그룹 총수에 대한 직접 수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후 검찰의 거침없는 수사는 계속됐다. 11월24일 삼성전기 등 삼성그룹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고, 11월27일 현대캐피탈, 12월5일 롯데그룹 본사와 롯데건설 등 압수수색을 단행, 5대 대기업에 대해 모두 한 차례 이상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한 달여 고강도 수사를 계속해 온 검찰은 12월 들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12월8일 검찰이 서정우 변호사를 긴급체포하고,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한 이후 한나라당에 제공된 5백억원대 대기업 대선자금 규모와 전달 방법 등이 공개됐다.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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