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실수로 뒤바뀐 삶을 산 트럭 운전사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사진출처=마이니치신문
비극의 시작은 1953년 3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쿄 스미다구에 있는 한 산부인과에서 두 명의 남자아이가 비슷한 시각 태어난다. 두 갓난아이는 병원의 실수로 뒤바뀌고, 각각 서로 다른 부모에게 넘겨졌다. 그리고 이후 그들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먼저 가난한 가정의 홀어머니 밑으로 보내진 A의 삶은 험난했다. 전자제품 하나 없는 단칸방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렵게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삼형제 중 막내였던 그는 가난으로 인해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공장에서 돈을 벌었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가며 겨우 야간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트럭운전사로 생계를 유지 중이다. 60세이지만 아직 결혼도 하지 못했다.
한편 운명이 뒤바뀐 또 다른 남자 B는 자산가 부부의 장남으로 자랐다. 정원과 연못이 있는 대저택에서 가정교사 지도까지 받으며, 대학에 진학하는 일류코스를 밟았다. 현재는 부동산업계 사장이며 물려받은 유산으로 인해 상당한 재력도 갖췄다. 남동생 3명 역시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일류기업에 취직한 전형적인 부유층 가족이었다.
궁핍한 삶을 살아오던 A가 자신의 뒤바뀐 운명을 알게 된 것은 2011년 친동생들, 즉 B의 남동생 3명이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오면서였다. 큰형 B가 자신들과 닮지 않은 것에 의구심을 품은 3형제는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고, 놀랍게도 친가족이 아님이 밝혀졌던 것. 이후 3형제는 병원기록을 샅샅이 뒤져 친형 A를 찾아냈다.
처음에는 기가 막혀 ‘그럴 리가 없다’며 사실을 부정했던 A였지만, 2012년 1월 DNA 감식결과 A와 3형제는 친형제임이 확인됐다. 60년 전 병원의 실수로 생판 남인 가족과 반평생 넘게 살아왔다니, 그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동생들이 돌아가신 친부모님의 사진을 보여주며 추억담을 들려주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실수를 저지른 병원 측에 분노가 치밀었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확실히 그때 바뀌지만 않았더라면 A는 더 부유한 인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해서 더 행복했을지는 미지수다. 원래 3형제가 친형을 찾게 된 배경 뒤에는 유산 상속을 둘러싼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B와 3형제의 아버지가 2007년 사망한 뒤 이듬해 3형제는 ‘아버지와 B가 부자관계가 아님을 인정해 달라’고 법원에 호소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B와 3형제가 어쩌다 법정에서 다투게 됐을까.
자신이 키운 아이가 친자가 아닌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내용의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현실에서 이와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자신들과 외모, 성격이 전혀 닮지 않은 큰형 B의 정체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 B에 대해 “출산 때 준비한 배내옷과 실제 입혀있던 신생아옷이 달랐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형이 이렇게 차가운 것은 ‘핏줄’이 다르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을 했다. 유산 분배를 계기로 동생들이 형에게 품었던 의심이 폭발한 상태였다.
DNA 감정을 의뢰하자 짐작대로 ‘생물학상 부자관계일 가능성은 거의 0%’인 것으로 판명됐다. 그 후 치열한 법정공방이 펼쳐졌다. 1심에서는 동생들이 승소해 ‘B와 아버지는 혈연관계가 없는 것’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고등법원 항소심에서는 B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살았다는 점을 중시해 “부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패소한 동생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진짜 ‘형’을 찾기 위해 병원기록 분만대장을 샅샅이 뒤지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2011년 가을, A를 찾아냈다. 그리고 올해 6월에는 A가 호적을 옮기고 성도 원래대로 되돌렸다.
병원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A와 3형제는 “60년 전 병원의 실수로 인해 잃은 이익이 대졸자와 중졸자의 평균 임금의 차액에 해당하는 4600만 엔(약 4억 7000만 원)이므로 이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A가 만일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어도 대학졸업의 학력을 얻을 수 있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며 A에 대한 위자료를 3200만 엔(약 3억 3000만 원)으로 산출했다. 또 동생 3명에게는 우리 돈으로 약 6200만 원의 손해배상이 정해졌다.
한편 승소 판결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A는 “친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라 그 어느 것도 보상되지 않는다. 부모님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눈물을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60년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운명의 장난. 남자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행복했을까. 아니면 이제라도 진짜 가족을 만난 것에 감사해야 할까.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다른 핏줄 장남 ‘20억’ 토해낼까
60년 전 신생아가 뒤바뀐 사건은 이제 향후 유산 상속이 어떻게 이뤄질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A의 친부모는 이미 고인이 됐고, 유산 상속 절차도 끝난 상태. 부동산, 유가증권 등 약 20억 원에 이르는 유산 대부분은 B가 상속받았다.
몇 년 전 ‘B와 아버지의 부자관계를 확인’하는 소송에서는 동생들이 패소했지만, 진짜 ‘핏줄’이 나타났기 때문에 소송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장남 B에게 상속한다”는 아버지 유언이 무효가 된 것.
어머니 소유였던 토지에 대해서는 어머니 명의로의 복귀를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만약 대법원에서 3형제가 승소하면 A를 포함해 유산 상속을 다시 할 수 있게 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