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라면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은 이미 50%를 넘어설 상황이다. 그런데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30~35%선에 멈춰있다. 물론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지지율에선 이회창, 정몽준, 노무현 순으로 이 후보가 1위다. 그러나 양자 대결이 되면 1위가 바뀌는 것으로 나온다. 한국의 선거풍토로 보면 선거 흐름은 둘로 갈린다. 후보가 몇 사람이 되건 선거 흐름은 A 아니면 B라는 둘 중의 하나로 대세가 갈린다. 정치상황으로 봐도 노무현·정몽준 둘 중 한 명은 선거전 중에라도 도중하차가 내다보인다. 그러니 이회창 후보의 선두는 불안한 선두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은 젊은층과 충청도의 부진 때문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분석이다. 그래서 젊은층을 겨냥해 이 후보를 홍보하는 인터넷 ‘e-회창TV’도 열고 지방 방문 때는 젊은이와의 대화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는다. 충청권 공략을 위해 충청도당이라는 자민련에 대한 특별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그게 효과 있는 대책이 될까.현재 이회창 후보를 위협하고 있는 예비후보는 정몽준 의원이다, 정 의원은 단기필마의 무소속이다. 정치 실적은 없고 다른 특별한 경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원내 지지기반도 제로 상태다. 재벌 2세도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니다. 정당을 만든다지만 정치자원은 민주당뿐이다.
그가 어떤 정당을 만들어 내건 결국 민주당을 중심세력으로 하는 ‘재건 민주당’내지 ‘변형 민주당’이다. 어느 것도 이 후보에 비하면 열세라야 할 조건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그의 지지도가 높다. 왜인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새로움’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기성정치에 식상한 유권자들의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끊임없이 대안을 찾고 있고 정몽준이 그 대안으로 비치고 있다는 풀이다.
이 현상은 이회창 후보가 국민의 정치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왜 이회창 후보는 정치적 기대의 바깥에 있는 것일까. 9월8일 국회에선 한나라당 대표 연설이 있었다. 당연히 이회창 후보가 대표연설에 나설 것으로 봤다. 그런데 서청원 대표가 연설에 나섰다. 이 후보측 설명은 당 대표와 후보의 분리에 따른 것이라는 것. 이 설명을 믿을 수 있을까.
▲ 지난 9일 서울시선대위 발족식에 참석한 한나라 당 이회창 후보와 서청원 대표(오른쪽). | ||
국회의 당 대표 연설이라는 건 정당법상 등록된 당 대표를 말하지 않는다. 정당이 그 시점에 적절한 대표를 정해 대표연설에 내세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 그 정당을 대표하는 건 당 총재나 대표최고위원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다. 종래 관례도 대통령 후보가 대표연설을 했다. 국회에서 하는 마지막 고별연설이었다. YS가 만들어 놓은 관례고 전통이다. 그런데 이회창 후보는 이 전례를 따르지 않았다. 그는 고별연설을 피하기 위해 대표연설을 피했다. 이게 세상의 일반적 해석이다. 이 해석이 틀릴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눈은 이 후보측 설명을 믿지 않는다.
이회창 후보는 이제 국회의원으로서의 그의 역할은 끝났다. 대통령에 당선하면 대통령으로서 행하는 정치가 그의 마지막 정치다. 낙선한다면 그날로 그의 정치는 끝난다. 그런데 왜 고별연설을 안했을까. “병풍이니 총풍이니 해서 5년 내내 바람의 정치를 한 DJ정권이다. 또 무슨 채비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법률상의 면책특권을 누리는 의원직은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것말고는 고별연설을 피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대체 지금 이 시점에서도 면책특권을 생각하는 후보, 바로 이 점이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라면 틀린 해석일까.
흔히 이회창 후보의 정치를 ‘머리의 정치’라고 말한다. 정치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계산된 행동이다. 예를 들어 자민련과 김종필 총재에 대한 자세도 그런 본보기의 하나다. 자민련과 합동하면 충청권 표밭에 다가가는데는 아주 유리하고 편하다. 그렇지만 JP의 이미지 때문에 합동하면 이회창 이미지에 좋지 않은 게 플러스된다해서 꺼린다. 그래서 다가가려다가 멈칫거리고 멈칫거리다가 결국 물러서고 만다. 이런 스타일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정치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선 계산을 뛰어넘는 뭔가가 있어야 하고 있게 마련이다. 이회창 후보에겐들 그런 게 없을 리 없다. 그런데 그게 안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슴이 없는 정치라고 말한다. 최근 일련의 회견에서 이 후보는 깨끗한 정부, 검찰 중립, 퍼주기는 안한다, 제왕적 대통령은 절대 안한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하나같이 김대중 정권의 실패한 대목을 모두 고쳐놓겠다는 약속이다. 역시 모범답안이다.
그렇지만 이회창 후보의 정치는 한국풍 입시의 모범답안 수준이다. 예를 들자. 제왕적 대통령은 고쳐놓겠다면서 내놓은 게 총리의 권한 강화다. 역대 대통령 중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말을 안한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을 빼놓고는 없다. 그런데 어느 대통령도 제왕적 권력을 견제하는 총리를 가져본 일도 없고 용납도 안했다.총리가 헌법상의 권한을 누리면 제왕적 대통령을 막을 수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에 의해 임면(任免)되는 총리, 결코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는 헌법의 문제고 정치문화의 문제다. 헌법을 고치지 않는다면 정치문화를 고쳐나가야 한다. 이회창 후보가 제왕적 대통령을 고쳐놓겠다면 정치문화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그게 새로움을 바라는 국민적 여망에 다가가는 길이다.
당면한 정치과제의 하나는 ‘3김시대라는 병목’을 넘어서는 일이다. 현재의 유력한 후보 중 이 과제풀이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후보는 단연 이회창 후보다.그런데도 이 후보는 3김정치의 폐단의 하나인 ‘군림하는 리더십’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져 있다. 이 점이 그가 3김시대 청산의 적임자의 모습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35%의 벽을 넘어서는 길은 ‘가슴의 정치’‘민주적 리더십’ 이 두 가지에서 그 회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홍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