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강력한 공공기관 개혁 의지를 나타내며 또 다른 갈등이 폭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요신문 DB
한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신 갑오경장론’을 제기한 직후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의 발언을 곱씹어보면 절대로 허투루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느릿느릿 발언을 이어갔지만, 말 속에는 ‘칼’이 들어 있었다는 얘기였다. 당시 박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되짚어 보면 이 관계자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언제 도발할지 모르는 북한과 철도파업 문제,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정치권의 갈등으로 국민들이 여러 가지로 걱정스러울 것”이라고 운을 뗀 뒤 “불편하고 힘들지만 이 시기를 잘 참고 넘기면 오히려 경제·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 기반을 다지게 될 것이다.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새해가 갑오년인데 120년 전 갑오년에는 갑오경장이 있었다”면서 “120년 전의 경장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꼭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성공하는 경장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철도파업을 북한 문제와 글로벌 경제 위기, 정치권 갈등 등과 같은 수준에 놓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지만 ‘미래를 위해 새 역사를 쓰겠다’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의미심장하다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분석이다.
이들의 설명처럼 공공기관 개혁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이미 여러 차례 공식 발언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가장 가깝게는 지난 11월 25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공공기관에 대한 방만한 운영,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이건 뿌리 뽑는다’는 아주 강력한 의지를 갖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뿌리 뽑는다’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11월 18일 국회에서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할 때에도 박 대통령은 “공공부문부터 솔선해 개혁에 나서겠다”며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예산 낭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부 3.0’ 정책 역시 공공기관 개혁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지난 4월 29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 3.0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정보를 공개해 필요 없는 에너지 소모를 없애는 것”이라며 “공공기관 부채 중 무엇이 늘었는가에 대해 전부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공공기관 개혁을 중시하는 데에는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부실이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인 데다 도덕적 해이 역시 심각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493조 원에 달하는 공공기관 부채, 그럼에도 방만 경영이 계속되고 있는 현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특히 새 정부 들어 연달아 터졌던 원자력발전소 비리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국민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공공기관들이 경영 부실뿐 아니라 도덕 불감증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철도민영화 저지 민주노총 결의대회 평화대행진’이 12월 23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 사옥 앞에서 열렸다. 구윤성 기자
실제로 윤상직 장관은 지난 12월 23일 41개 산하 공공기관장을 긴급 소집, 간담회를 갖고 “정부에 제출한 부채 감축, 방만 경영 개선 계획을 평가한 결과 기관장들의 위기의식과 실천의지를 느낄 수 없다”고 강하게 질타하면서 “사실상 임기 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버티겠다는 게 눈에 보인다. (개선안을 못 만들면) 일찌감치 사표를 제출하라”고까지 말했다. 현오석 부총리도 “공기업의 파티는 끝났다”고 선언하고 “위기 극복을 위해 핵심 우량 자산부터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공공기관 개혁 드라이브가 친박계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떨어뜨리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강력한 개혁을 밀어붙이려면 노조와의 일전도 불사할 수 있는 기관장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있는 인사가 투입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 야권 인사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차기 포스코 회장으로 거론됐던 것은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한 셈”이라며 “공공기관 개혁을 외치며 낙하산을 떨어뜨리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정치적인 논리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며 원칙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신 갑오경장론’ 드라이브는 2014년 벽두부터 우리 사회에 또다른 갈등 폭발을 예고하고 있다. ‘철도 파업 사태는 시작에 불과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