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개각설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청와대발 여의도발 하마평이 돌고 있다. 사진은 12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사진제공=청와대
여의도에서 회자하는 개각 대상에는 미래창조과학부, 기획재정부, 법무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농림수산식품부, 안전행정부 등이 있다.
일단 미래부는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에 밑그림도 그리지 못한다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두고선 청사진도, 정책도, 비전도 없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이에 대해선 여야가 따로 없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해임은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 수사와 관련한 야당의 끈질긴 요구 중 하나다. 안행부는 유정복 장관의 경기지사 후보 차출설이 나오면서 개각 대상에 포함된 듯하다. 해수부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들 부처 국무위원 하마평에 모두 현역 국회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친박계 자가발전설’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고 있다. 미래부는 과학자 출신의 A 의원 이름이 거론된다. 기재부 장관에는 대표적 친박계로 요즘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여당 경제통 B 의원의 이름이 나왔다. 철도노조 파업 사태와 관련해 최근 개각 대상으로 거론되는 국토부 역시 국회 국토위에 오래 몸담은 현역 C 의원 이름이 회자되고, 해수부에는 부산시장 출마설이 나오는 D 의원, 농림부는 농업 관련 공기업 사장 출신의 E 의원이 세평을 타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 동향을 파악하는 기관 인사가 이렇게 말했다.
“개각을 한다 하더라도 박 대통령이 현역 정치인보다는 관료를 선호할 것이란 건 상식 중 상식이다. 국회의원을 겸하며 장관직을 수행하는 정치인 출신은 박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공유하지 않는다. 진영 전 장관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진영 학습효과’가 있는데 박 대통령이 정치인을 다시 중용하겠나. 현역 출신 장관은 자기 정치를 하려 하지 박 대통령 도우려 하지 않는다. 몇몇 의원들 이름은 자기 커리어를 관리하고자 스스로 여기저기 흘리고 다녔기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초 개각설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단서는 연초에 있을 정부부처 업무보고 시기가 미뤄졌다는 데 있다. 매년 1월 중순쯤 하던 부처 업무보고가 2014년에는 2월로 연기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새로운 장관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고, 일부 정치인이 이를 빌미로 자가발전했으며, 실제 박 대통령 주변부에서도 쇄신 차원의 개각 필요성을 산발적으로 제기했다는 것이다.
연구원 출신 국무위원들이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해 조직 장악력에 문제가 생겼다느니, 일부는 누가 투병 중이라느니 하는 식의 이야기까지 덧붙으면서 개각설이 아주 구체적으로 회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당 전체 기조를 보면 연초 개각설, 중·대폭 개각설에 대해 뜨뜻미지근하다. 오히려 외면하는 분위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정치권 동향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보통 개각 때가 되면 서로 줄 대고 줄 서려는 여당 인사들로 시끌벅적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언론에서 더 난리고 정치권은 차분하다. 현역 중에는 이번 정부에서 장관은 ‘별 재미없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각종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말하고 지시하고 장관이나 수석은 모두 받아쓰고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사실은 그 반대여야 한다. 수석이나 장관은 보고하고 알리고 요청하고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쓰고 받아들이는 모습이어야 하는 것이다. 소신껏 일을 하거나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니 잘만 하면 2, 3년 할 수 있는 장관 자리라도 가시방석에선 싫다는 소리다. 개각 인선에 구인난이 예고되는 것도 이런 연유가 있다.”
다른 정치권 인사는 이런 말도 했다.
“사실상 첫 개각이어서 보은인사의 성격이 녹아들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대선에서 함께 뛴 사람 중에 고를 것인데 전혀 하마평이 없다. 지난번 감사원장, 검찰총장 인선에서 보듯 고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벙어리 장님 귀머거리 행세하며 시키는 일만 하는 그런 장관직은 매력이 없지 않은가. 전쟁터에서 이등병에게 소위 계급장을 달아주며 ‘소모 소위’를 만들었다. 원래 집권 후반기 인기가 떨어질 때 소위 ‘소모 장관’이 싫어 고사하는 경우는 많았어도 힘이 막강한 임기 첫해에 이런 분위기는 정말 이례적이라 볼 수 있다.”
자가발전을 하는 정치인 외에 꽤 실속 있는 정치인은 손사래부터 친다고 한다. 청와대가 지난 11월부터 장관 평가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은 여의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데도 여의도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도 인선을 두고 골치 아픈 분위기를 띠고 있다고 전해진다. 일단 현역 국회의원은 다루기가 힘들어 박 대통령이 원치 않고(진영 학습효과), 관료 출신을 뽑아 쓰자니 국회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현 부총리를 두고 집권 여당에서부터 ‘밋밋하다, 내용이 없다’며 퇴진 운운한 바 있다. 여당이 장관 방패막이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친박계 의원실 한 관계자는 “사실 박 대통령으로선 개각을 하고 싶어도 ‘청문회 트라우마’ 때문에 고민이 클 수도 있다. 정부 출범 당시 청문회에 발목 잡혀 인사를 못한다는 비판이 얼마나 많았느냐”며 “청문회 상처가 차기 지방선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차기 개각은 아주 공들여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성과가 없다는 공무원들의 기가 크게 꺾여 있는 만큼 조직 내 자체 승진으로 힘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여권을 바라보는 야권은 개각이 늦어지길 바라는 눈치다. 개각이 늦을수록 지방선거에서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박 대통령의 ‘수첩’ 속에서 어떤 인사가 튀어나올지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