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취 못느끼면 몸 망가졌단 신호일수도
“나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술에 취한 적이 없다.”
술자리에 가면 간혹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혹시 허세는 아닐까.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영국의 세라 자비스 의학박사는 “술에 잘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있다”고 말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숙취를 덜 느낀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일요신문 DB
자비스 박사는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람들이 알코올의 장기적 영향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지금 괜찮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무사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라는 것이다. 자비스 박사는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술에 잘 취하지 않거나 혹은 상대적으로 술이 늦게 취할 경우 몸에 해롭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는 것이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람들일수록 사실은 더욱 위험하다. 왜냐하면 술에 잘 취하지 않는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과음을 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술에 잘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코올로 인해 몸이 망가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 자비스 박사는 “몸에서 알코올을 많이 분해할수록 술로 인한 단기적인 증상에 대한 내성은 증가한다. 하지만 신체의 장기적 손상은 평생 동안 얼마만큼의 알코올을 분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충고했다.
한편 숙취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런던 킹스칼리지 병원의 두통센터 소장인 앤드류 도슨 박사는 “가령 두통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메스꺼움과 같은 다른 증상을 더 많이 호소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또한 유전적 요인에 따라 숙취를 더 많이 느끼는 인종이 있다. 자비스 박사는 “동아시아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체내에 아세트알데히드 탈수소효소(ALDH: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가 매우 적다. 때문에 더 빨리 취하고, 숙취에 더 잘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실제 술을 잘 마시냐 못 마시냐의 차이는 선천적으로 ALDH 효소가 얼마나 많이 있냐 없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나이가 많을수록 숙취에 강하다
흔히들 젊은 사람일수록 음주 후 나타나는 숙취 증상들에 잘 대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실은 그 반대일 수 있다.
덴마크의 연구진들이 5만 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오히려 나이 든 사람들일수록 과음 후에 숙취를 덜 호소했다. 가령 18~29세 여성들의 21%가 숙취와 함께 메스꺼움을 호소했던 반면, 60세 이상 여성들의 경우 3%만이 같은 증상을 나타냈다. 또한 젊은 남성들의 62%가 과음 후에 탈진 증상을 나타냈지만, 60세 이상 남성들의 경우에는 14%만이 같은 증상을 호소했다.
그것도 아니면 이른바 ‘자연 도태’가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숙취를 잘 견디는 사람들만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음주를 즐기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의학 전문가들은 나이든 사람들이 숙취를 더 잘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비스 박사는 “나이가 들수록 숙취를 더 느낄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체내 아세트알데히드 탈수소효소의 생성이 감소하는 것이 바로 한 예다”라고 말했다.
# 여성이 술에 더 잘 취하는 이유
자비스 박사는 “보통 체격이 좋은 여성들은 깡마른 남성들보다 본인이 술을 더 잘 마신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착각이라는 것이다.
자비스 박사는 “설령 어떤 여자의 체격이 남자와 같다고 하더라도 여자의 몸에는 체지방은 더 많은 반면, 체수분은 더 적다. 때문에 술에 더 잘 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알코올은 체수분을 통해서 신체에 퍼지기 때문에 체수분이 적을수록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고, 이로 인해 술에 더 잘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숙취를 더 잘 느끼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2006년 미주리-컬럼비아 대학이 1200명 이상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같은 양의 술을 마셨을 때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 술을 더 빨리 취할 뿐만 아니라 숙취 증상도 더 심했던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 탄산이 장에 도달하는 이산화탄소 속도 증가시켜
거품이 있는 술이나 어두운 색의 술을 마실수록 숙취가 심하다.
2001년 서레이대학의 연구진들이 피실험자들에게 거품이 나는 발포성 샴페인을 두 잔씩 마시도록 했다. 그리고 5분 후에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했더니 평균 0.54㎎라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기포가 없는 샴페인 두 잔을 마신 후에 측정한 혈중 알코올 농도는 평균 0.39㎎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전문의들은 거품 속의 이산화탄소가 장에 도달하는 알코올의 속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의 영양학 부교수인 엠마 더비셔 박사는 “이런 원리는 다른 모든 탄산이 들어있는 음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라고 말했다. 가령 맥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싸구려 술이 더 취하는 까닭은
어떤 특정한 술을 마시면 숙취가 더 심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숙취의 주된 원인은 탈수다. 그리고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불순물과 방부제 때문이기도 하다.
더비셔 박사는 “어떤 술에는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칸자너’라고 불리는 화학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바로 이로 인해 술마다 독특한 향과 색이 나는 것”이라면서 “술의 색상이 어두울수록 대체로 칸자너의 함량이 높다.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칸자너는 두통과 숙취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레드 와인이나 브랜디를 마시면 진을 마실 때보다 머리가 더 지끈거리게 된다는 것. 실제 미국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같다고 했을 때 보드카보다 위스키가 더 심한 숙취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싸구려 술이 비싼 와인보다 더 숙취가 심할까? 이에 대해 더비셔 박사는 “싸구려 브랜디일수록 칸자너 함량이 높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아마도 증류 과정에서 칸자너가 걸러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 ‘폭탄주는 위험하다’는 속설
폭탄주를 마시면 더 빨리 취한다는 속설은 사실일까. 술을 섞어 마시면 숙취가 더 심하다는 믿음에 대해 자비스 박사는 “이런 생각에는 여러 가지 술을 마실수록 섭취하는 불순물의 종류가 많아지고, 또 칸자너 함량도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가지 술만 계속 마신다고 해서 다음 날 아침 두통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시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다시 말해 마신 술의 양에 따라 숙취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마신 술에 불순물이 얼마나 많이 함유되어 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술을 섞어 마셨다고 해서 반드시 숙취가 더 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술을 마시기 전 기름진 음식을 먹는다
‘빈속에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은 매우 일리가 있는 충고다. 왜냐하면 음식을 먹을 경우 알코올이 몸에 흡수되는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IBS 네트워크의 의학 고문이자 위장병학자인 닉 리드 박사는 “술을 마시기 전에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 일단 지방이 십이지장에 도달하면 음식물의 위내용배출시간이 느려지고, 따라서 마신 술이 위에서 빨리 배출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에서 어떤 나라에서는 술을 마시기 전에 올리브 오일을 마시기도 하며, 또 어떤 나라에서는 으깬 감자를 먹기도 한다. 술을 마시기 전에 버터 두 숟가락을 먹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바로 버터의 지방 성분이다.
# 맥주가 와인보다 덜 취한다
서구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와인을 마시기 전에 맥주를 마시면 덜 취한다. 하지만 반대로 맥주를 마시기 전에 와인을 마시면 금방 취한다.’
이를 증명할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이론들이 있다. 더비셔 박사는 “한 가지 가능성이라고 하면 맥주는 와인보다 수분 함량이 높다. 때문에 맥주를 마시면 자연히 체내에 수분을 더 많이 섭취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으레 사람들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술자리 초반에 마구 달리게 된다. 때문에 맥주를 마시면 와인을 마실 때보다 수분 섭취가 조금 원활해지는 것이다. 더비셔 박사는 “하지만 맥주를 먼저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어떤 술이든지 마시기 전에 꼭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 해장술 대신 진통제를 먹는다
보드카와 토마토주스를 섞어 만드는 ‘블러디 메리’ 칵테일은 흔히 해장술로 불린다. 블러디 메리를 마시면 두통이 가신다고 말한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숙취 증상의 시작을 늦출 뿐 실제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비스 박사는 “술을 많이 마실수록 숙취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알코올에는 진정 효과가 있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해장술보다는 진통제가 오히려 도움이 된다. 단, 약물을 복용할 때에는 주의사항을 잘 숙지해야 한다. 자비스 박사는 “이부프로펜과 같은 소염제는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파라세타몰보다 두통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술로 인해 이미 위염이 발생했다면 이런 약물들이 오히려 소화불량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