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들은 “존 랜디스 감독이 위험한 상황을 인식한 채 촬영을 강행한 게 아니기 때문에 과실 치사의 죄가 없다”고 결론냈다. 결국 피고인 5명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일단 존 랜디스 감독은 빠져나가기 바빴다. 카메라의 위치, 배우의 동선, 헬기의 움직임 등에 대한 최종 승인자는 감독이 아니냐는 검사의 추궁에, 존 랜디스는 이렇게 말했다. “연기를 위한 거라고 설득해도 배우들에게 쓰레기더미를 만지라고 하면, 그들은 당연히 싫어한다.” 감독이 아무리 지시했다고 해도, 위험한 상황이라면 배우나 스태프들이 자발적으로 그 상황을 피한다는 얘기였다.
프로듀서인 조지 폴시는 “사실 나는 현장에서, 배우들이 나오는 장면과 헬기가 등장하는 장면을 나눠서 찍기를 원했다”며 뒤늦은 변명을 했다. 그러면서 특수효과와 헬기 조종의 전문가들이 실수했기에 사고가 일어났다고 책임 전가를 시도했다. 피고인들 사이에 패가 갈렸다. 감독과 제작자가 한패가 되었고, 기술 스태프들이 한패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존 랜디스 감독과 그의 변호사인 할랜드 브라운이었다.
<환상특급> 촬영 중 숨진 빅 모로와 두 아역.
1984년 11월엔 프로듀서인 조지 폴시와 제작 관리자 댄 앨링햄에 대한 재판이 다시 열렸다. 그런데 게리 케슬먼 검사는 법정을 떠나야 했다. 그가 소유하고 있던 댄스 홀 여종업원들이 음란 행위로 체포되었는데, 그런 구설수 속에선 제대로 검사의 직무를 수행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리 퍼윈 다고스티노 여검사가 왔다. 12명의 배심원단이 구성되었고, 재판이 계속 이어졌다. 그녀는 배심원들 앞에서 사고 당시의 참상을 담은 영상을 틀었다.
빅 모로가 두 아이들을 양쪽 팔 사이에 끼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바람과 물과 아이들의 무게로 빅 모로는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이들이 물에 잠기자 그들을 추스르기 위해 모로는 손을 뻗쳤고, 이 순간 헬기의 회전 날개가 물을 타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거대한 물기둥이 솟으며 카메라를 덮쳤고, 이후 헬기의 동체가 보였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고, 사람들이 사고가 난 지점으로 달려갔다. 20분 정도 분량의 영상이 끝난 후 다고스티노는 말했다. “여러분이 보는 건 환영이 아닙니다. 실제로 불이 붙은 것이고, 헬리콥터는 장난감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짜 죽음입니다.”
총 71명의 증인이 소환된 지리한 재판은 1987년에 끝났다. 결과는 의외였다. 배심원들은 존 랜디스 감독은 위험한 상황을 인식한 채 촬영을 강행하지 않았기에 과실 치사의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판결이 난 다음 주 월요일 아침 뉴스쇼에 출연한 존 랜디스는 자신이 “부정직한 검사에 의해 기소당한 희생자”라고 항변했다. 한편 다고스티노 검사는 CNN 인터뷰에서 “이 세상엔 더 높은 차원의 정의가 있다. 존 랜디스의 영화적 야심에 의해 세 명이 죽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존 랜디스가 셀러브리티이기에 배심원들이 관용을 베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존 랜디스는 살인범이며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는 편지가 미국 전역에서 다고스티노 검사에게 날아들었다.
랜디스는 재판에서 무죄로 판명되었지만, 친구이자 <환상특급>의 공동 제작자였고 공동 연출가였던 스티븐 스필버그와의 우정은 끝났다. 스필버그는 “그 어떤 영화도 목숨과 바꿀 순 없다”며 “그 비극적 사고는 나를 좀 더 어른스럽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랜디스는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등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1990년대부터 슬럼프에 들어가 지금은 연출자로서 거의 재기 불능 상태가 되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