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적으로 무일푼인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의 자녀들이 현 시세로 4백50억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한 것으로 드러나 재산환수 문제가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에 따라 오너이자 그룹총수였던 나승렬 전 회장은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진했으며, 그 뒤 계열사 불법 지원 등의 혐의로 수차례 법정에 서기도 했다.
그동안 예금보험공사 등 정부는 나 전 회장의 경영 책임을 물어 개인재산 환수 등의 조치에 나서긴 했지만, 나 전 회장은 ‘무일푼’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나 전 회장의 20대 자녀들이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나 전 회장에 대한 재산환수 문제는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재벌개혁 차원에서 과거 공적자금 집행 등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설 예정이어서 이번 사건이 부실 기업주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일요신문> 단독 취재 결과 나 전 회장의 장녀인 윤주씨(29)와 장남 영돈씨(27)는 서울과 경기도 분당 일대의 부동산을 대규모로 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두 사람이 보유한 부동산은 현시세로 모두 4백50여억원에 달할 것이란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추산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슨 돈으로 이 땅을 매입했을까.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불과한 이들이 특별히 재력을 갖출 만한 경력이 없음에도 이처럼 막대한 부동산을 보유할 수 있게 된 배경이 의문의 핵심이다.
나승렬 전 회장의 장녀인 윤주씨(29)는 거평그룹 계열사 전무를 지낸 변강섭씨(58)와 공동으로 서울 구로동 611번지 일대 땅을 소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땅은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소요되는 교통요충지에 있으며, 인근에 대형 기계·공구상가들이 들어 서 있는 노른자다.
부동산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이 땅은 대지 규모가 2천4백31평(8천21㎡). 이 땅은 윤주씨가 90% 지분을 갖고 있으며, 나머지 10%는 변씨 소유로 등록돼 있다. 윤주씨가 실소유자인 셈. 윤주씨는 이 땅을 지난 2001년 6월에 매입한 것으로 등본에 나타나 있다(2001년 현재 개별공시지가는 평당 6백60만원). 윤주씨는 E대를 졸업한 후 지난해 2월 중매 결혼했으며,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인근 부동산업자에 따르면 윤주씨가 보유한 땅의 거래가는 평당 7백만원 정도. 따라서 윤주씨 등이 소유한 땅값은 어림잡아도 1백7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윤주씨가 90% 지분을 갖고 있으므로 평가액은 1백53억원에 이른다.
현재 이 땅에는 지하 4층, 지상 12층 규모(연면적 1만5천4백15평)의 복합빌딩 ‘테크프렉스’가 세워지고 있다. 내년(2004년) 준공 목표로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이 복합빌딩은 현재 오피스텔과 상가 등으로 분양하고 있다.
이 빌딩은 YD건설이 시행사로 돼 있고, 성원산업개발이 하청을 받아 공사를 맡고 있다. 특히 시행사인 YD건설의 대표가 이 땅의 소유주인 윤주씨와 변씨라는 점.
변씨는 지난 1998년 5월 거평그룹이 부도난 후 퇴사했다가 윤주씨와 함께 YD건설을 설립했다. 그렇다면 윤주씨가 이 땅을 매입할 수 있었던 자금의 출처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나 전 회장이 은닉한 재산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나 전 회장을 잘 아는 관계자는 “20대에 불과한 어린 딸(윤주씨)이 무슨 돈으로 1백억원이 넘는 땅을 사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나 회장 돈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인근 상인들에 따르면 윤주씨가 이 땅을 매입한 후 한동안 나 전 회장이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는 것. 구로상가에 입주한 한 상인은 “나 전 회장과 큰딸이 주변 상가 상인들과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고 말했다.
▲장남 영돈씨의 서울 옛 병무청 부지와 경기도 분당 땅
나 전 회장의 장남 영돈씨(27)는 서울 후암동 옛 병무청 부지와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대규모 땅을 소유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돈씨 소유의 서울 후암동 101번지62호는 옛 병무청 부지. 이 땅을 영돈씨는 나 전 회장의 비서인 황중환씨(37)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
지난해 7월 매입한 것으로 등기부등본에 나타난 이 땅은 현재 영돈씨가 90%의 지분을 갖고 있다. 나머지는 황씨 소유로 돼 있다.
영돈씨는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획득, 현재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한 벤처기업에서 병역특례자로 근무하고 있다.
영돈씨 등이 매입한 땅에는 내년(2004년) 4월 입주 예정으로 55평 이상의 고급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아파트 공사를 맡고 있는 시행사인 만강건설의 정체. 나 전 회장의 한 측근은 “후암동 땅을 소유하고 있는 영돈씨와 황중환씨가 만강건설의 공동 대표”라고 폭로했다.
후암동 땅과 함께 영돈씨는 경기도 분당구 금곡동에도 대량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부동산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금곡동 165번지(4백71평, 1천5백53㎡)와 금곡동 170번지(6백97평, 2천2백99㎡) 땅은 영돈씨 외 2명이 공동 명의로 소유하고 있다. 이 땅의 공동 소유자는 영돈씨와 나 전 회장의 비서 황중환씨, 나 전 회장의 이종조카(누나의 아들) 이영일씨(55) 등이다.
이들은 2001년 10월 이 땅을 매입했으며, 현재 지분의 80%를 영돈씨가 갖고 있고 나머지 20%를 황씨와 이씨가 각각 10%씩 나눠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영돈씨 땅은 165번지의 경우 4백71평 가운데 약 3백79평이며, 170번지는 약 5백58평이다. 이를 합산하면 영돈씨 명의의 땅은 모두 9백37평 정도이다.
현재 이 땅에는 ‘천사의 도시Ⅱ’라는 오피스텔 신축공사가 진행중이다. 시행자는 만강산업개발. 그런데 이 만강산업개발의 대표자도 영돈씨를 비롯한 땅 소유자들과 동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토지공사 분당지사 관계자는 “금곡동 165번지는 평당 8백42만원, 170번지는 평당 7백만원에 각각 매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영돈씨 등은 165번지(4백71평)와 170번지(6백97평) 땅을 88억4천5백여만원에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영돈씨가 소유한 땅은 지하철 미금역과 바로 붙어 있어서 현 시세는 평당 1천5백만원 정도라는 것. 이렇게 따졌을 때 영돈씨의 땅값은 1백4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영돈씨가 보유한 부동산은 서울 후암동 땅과 경기도 분당 땅을 합쳐 금액으로 환산할 때 3백억원대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한편 이처럼 나 전 회장은 자녀들의 재산이 수백억원대 달하는 데도 법적으론 ‘무일푼’인 상태로 알려져 있다.
현재 나 전 회장이 살고 있는 서울 이촌동 아파트도 부인 박문자씨의 친구 소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 전 회장 측근은 “거평이 부도난 후 지금까지 관할 강남구청과 세무서에서 세금연체고지서를 보내오지만 납부하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나 회장은 ‘법적으로’ 단 한 푼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평그룹 주채권 은행인 조흥은행 관계자는 “현재 나 전 회장 자녀들 명의로 재산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며 경악했다. 채권단 역시 나 전 회장 일가족의 재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나 전 회장은 지난 98년 3월 한남투신을 인수한 뒤 거평 계열사에서 발행한 채권 등을 매입해주거나 계열사간 무담보 대출을 해준 혐의로 지난해 12월9일 구속됐다. 그런데 지난 2월3일 나 전 회장은 재판부의 구속집행 정지 결정을 받아 석방됐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는 “나씨가 지병 때문에 수족이 불편해 다른 수감자들의 수발에 의지한 채 수감생활을 하는 실정이었다”며 “3월23일까지 구속집행을 한시적으로 정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나 전 회장의 자녀들 재산이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는 앞으로 나 전 회장과 관련된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