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는 화려한 의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1988년 <문스트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당시의 모습.
1946년에 태어났으니 어느덧 7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콘서트 투어에서 격정의 무대를 선보이는 셰어는 수십 년 동안 게이 커뮤니티의 숭배를 받았다. 정작 그녀는 레즈비언이 아니었고, 두 번의 결혼을 통해 두 아이를 낳았으며, 강한 외모와는 달리 의외로 여린 면을 지닌 여성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살았던 삶의 궤적 때문이었다. 과장된 여장을 하고 여성처럼 행동하는 유희를 즐기는, 대부분이 게이로 이뤄진 이른바 ‘드랙 퀸’(drag queen)들에게 셰어는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기도 했는데, 이것은 단지 그녀의 화려한 의상과 진한 화장과 독특한 외모 때문은 아니었다.
저널리스트인 토머스 로저스는 이렇게 말한다. 토머스 로저스는 “드랙 퀸들이 주디 갈런드, 돌리 파튼, 셰어 같은 스타들을 종종 모방하는 건, 그들이 모욕적이며 힘든 세월을 견딘 후에 성공을 거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스토리’는 많은 게이들이 세상을 살면서 겪어야 하는 고난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소니 보노와 결혼하며 가수로서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에 발을 디뎠고, 스타로서 흥망성쇠를 겪으며 배우에 도전했고 적지 않은 나이에 댄스 뮤직에 도전했던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오마주인 셈이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의미하는 LGBT와 관련된 전통 있는 저널인 <디 애드버킷>에 필리핀계 배우이며 게이인 알렉 마파는 “셰어는 지난 40년 동안 꿋꿋하게 타협하지 않은 자유로움과 대담함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동성애자하면 모두 염원하고 열망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홀로, 우리 모두가 염원하고 열망하는, 사과하지 않는 자유와 두려움 없음을 구현했다”고 표현했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에서 셰어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셰어가 이러한 위치에 오를 수 있기까진 크게 두 가지 ‘사건’이 작용했다. 첫 번째는 영화 한 편이다. 1983년 그녀가 출연한 <실크우드>는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실화 영화로, 원전에서 일하는 카렌 실크우드(메릴 스트립)라는 여성이 핵의 위험성을 알리려다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셰어는 실크우드의 동료이자 레즈비언인 ‘돌리’ 역을 맡았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동성애자 역을 맡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셰어가 출연한 영화 <버레스크>(위)와 시트콤 <월 앤 그레이스>.
하지만 이후 그녀는 딸의 성 정체성을 곧 받아들였고, 단순한 아이콘이 아니라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LGBT는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받고 있으며, 그것은 불공정한 일”이라며 액티비스트로서 현실에 뛰어들게 된다. 1997년엔 레즈비언과 게이의 부모와 가족과 친구들이 결성한 단체의 기조 연설자로 나섰다. 2009년 6월 11일, 채스터티 보노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뀐 트랜스젠더가 되었고, 2010년엔 법적으로 남자임을 인정받게 되는데, 이후 셰어는 LGBT 커뮤니티에 대해 더욱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이미지로서의 아이콘에서 현실의 투사로. 셰어는 어느새 섹슈얼리티 운동의 핵심적 인물이 되었는데, 1999년 11월 <디 애드버킷>은 게이 커뮤니티의 아이콘으로서 ‘가장 멋진 여성 25인’을 선정했는데, 셰어는 그들 중 중심적 인물이었다(오프라 윈프리, 마돈나, 힐러리 클린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티나 터너, 조디 포스터, 수전 서랜든 등도 25인 안에 있었다).
2007년엔 영국의 ‘디지털 스파이’라는 사이트에서 ‘게이 아이콘 10인’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케이트 부시, 브리트니 스피어스, 더스티 스프링필드, 엘튼 존, 마돈나, 카일리 미노그 등과 함께 셰어의 이름을 올렸다. 1980년대부터 시작해 30년 가까이 그 위상을 지키는 셰어를 증명하는 리스트였다. 이러한 지속성과 그 파워는 그녀에게 진정성을 더하는 부분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