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잭슨은 <더 벨벳 로프> 앨범 발표 이후 한때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평단의 격찬과 함께 팬들의 커다란 사랑을 받았던 이 앨범이 특별했던 건, 트렌드에 맞춰 히트할 만한 노래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어떤 콘셉트를 중심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더 벨벳 로프>는 대담했다. 가정폭력, 사디즘과 마조히즘, 성 정체성,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 등 대중음악에선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 테마들을 진지한 관점에서 담아낸 것.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폭력에 맞서 그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게이 커뮤니티에 큰 위안과 힘이 되었고 닐 맥코믹 같은 평론가는 “재닛 잭슨은 마치 게이 아이콘이 되기 위해 도전하는 듯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러 명곡이 있지만 몇 곡을 뽑아 본다면, ‘Together Again’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친구를 추모하는 노래로, 이 곡의 싱글 앨범은 현재까지 재닛 잭슨의 모든 싱글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기록했는데 그 수익 전부를 미국에이즈재단에 기부했다 ‘Rope Burn’은 SM(사도 마조히즘)에 대한 노래. ‘What about’은 남녀 관계에서 여성이 받는 폭력과 아픔을 드러냈다. ‘You’는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Free Xone’는 동성애에 대한 찬가처럼 여겨지지만, 가족과 이성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도 함께 표현한 노래였다. 로드 스튜어트의 노래를 레즈비언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리메이크 ‘Tonight’s the Night’도 인상적인 넘버였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진 않았지만 평단의 극찬을 받은 <더 벨벳 로프> 앨범 이후 그녀는 한때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나는 사람들이 나를 레즈비언으로 생각하거나 레즈비언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믿기 때문이다. 맞다. 나는 게이 클럽에 간 적이 있다. 하지만 다른 클럽에도 간다. 나는 좋은 음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고 말하기도.
특히 그녀는 “성 정체성이나 인종과 무관하게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녀가 결혼했거나 사귀었던 남성들을 살펴보면 어떤 진정성(!)이 느껴진다. 첫 남편인 제임스 드바지는 흑인 뮤지션. 두 번째 남편인 르네 엘리존도는 멕시코 출신의 뮤직비디오 감독이었고, 현재 남편인 위쌈 알 마나는 카타르 출신의 사업가다. 한때는 백인 배우인 매튜 매커너히와 연인 관계이기도. 그녀에게 인종은 피부색에 지나지 않는데, 이런 열린 마인드는 성 정체성을 대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 셈이다.
<더 벨벳 로프> 앨범으로 ‘미국 흑인 레즈비언 & 게이 리더십 포럼’은 재닛 잭슨에게 명예상을 안겼고, 게이와 레즈비언과 인권 단체는 연말 시상식에서 앞 다투어 그녀에게 트로피를 수여했다. 이후 재닛 잭슨은 더욱 열렬하게 LGBT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에겐 ‘사랑에 빠질 권리’가 있다”며 동성 결혼에 대한 강력한 지지 의사를 밝혔고, 2008년엔 E.O. 그린 스쿨 사건을 경험하며 공익광고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게이 청소년의 인권에 대해 발언했다. E.O. 그린 스쿨 사건은 15세의 게이 소년 로렌스 킹이 같은 학교 학생에 의해 사살당했던, 미국 사회의 호모포비아가 만들어낸 비극적인 일. 재닛 잭슨은 “우리 모두가 안전해질 때까지,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며 10대 LGBT 학생들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바로 ‘트레버 프로젝트’(The Trevor Project). LGBT 틴에이저들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단체로, 재닛 잭슨은 이곳의 적극적인 후원자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든 것을 내면화하던, 내성적으로 안으로 움츠러들던 아이였다. 그 시절 나는 무력했고 절망적이었다. 그때 난 몇 명의 신뢰할 수 있는 어른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내 고민과 걱정과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편안함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트레버 프로젝트가 원하는 것이다. 우린 24시간 핫라인을 열어놓고 있다. 24시간 내내 당신을 위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진실>(Truth)이라는 다큐멘터리의 후원자로 나서고 있는 재닛 잭슨. 전 세계에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들의 삶과 고민을 담은 이 영화에 그녀는 직접 인터뷰이로 출연하는데, ‘다름’에 대해 좀 더 관용적인 사회를 바라는 소망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운 좋게도 매우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나에겐 모든 사람이 중요하다.”
한편 다음 주엔, 재닛 잭슨 이야기가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2004년 슈퍼볼 퍼포먼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강렬한 게이 아이콘인 마돈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예정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