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말부터 차례로 물러난 김동광 삼성 감독(왼쪽)과 이충희 동부 감독. 사진제공=KBL
서울 삼성은 창단 첫 꼴찌 수모를 겪었던 전 시즌의 실패를 극복하고 2012-2013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삼성을 떠났던 2004년 이후 8년 만에 돌아와 성적을 끌어올린 노장(老將) 김동광 감독을 향해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지만 그 박수는 보통의 의미와는 달랐다. ‘져주기’ 경쟁이 치열했던 분위기에서 삼성이 반사 이익을 얻은 것 아니냐는 인식 때문이었다.
삼성을 향한 박수는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의 유혹을 뿌리치고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싸웠다”며 그들이 보여준 프로의 품격을 칭찬하는 의미가 더 강했다.
김동광 감독의 리더십은 플레이오프 복귀를 통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정상적인 순위 경쟁이 펼쳐지지 않은 상황에서 얻은 결과라 리더십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공존했다.
프로농구 초창기의 스타 사령탑으로 군림했던 김동광 감독은 2007년 안양 KT&G(KGC인삼공사의 전신) 사령탑을 떠난 뒤 한동안 현장과 멀어져 있었다. 5년 만에 다시 지휘봉을 잡은 김동광 감독은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지도 방식을 고수했다.
실수를 하는 선수에게 벤치행이라는 ‘벌칙’을 내려 반성과 각성의 계기를 주는 경기 운영 방식은 농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수의 정의는 감독마다 다르다. 농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삼성은 실수에 관대한 편이 아니었다. 코트와 벤치를 들락날락 하다보면 자신의 리듬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감을 찾기도 전에 벤치로 물러날 때가 적잖았다.
김동광 감독은 경기 당일 오전에 강도 높은 훈련을 하기로 유명했다. 선수들이 수백 개의 슛을 던져야 할 때도 있었다. 경기 전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었지만 반대로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오히려 컨디션 유지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삼성은 타 구단들에 비해 웨이트 트레이닝의 비중이 높지 않았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장기 레이스를 치르는 리그에서 중요한 훈련 과정 중 하나로 여겨진다. 모든 것이 과거에는 통했다. 지금은 다르다.
물론, 모든 것은 결과론이다. 결과가 좋지 않다보니 아쉬움 섞인 지적이 쏟아진다. 만약 시즌 초반 외국인선수의 부상이 없었다면, 주축 선수들이 계속 건강을 유지했다면 김동광 감독의 지도력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삼성의 올 시즌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특히 최근 들어 큰 점수 차의 패배가 반복되다보니 김동광 감독은 모든 것을 책임지기로 했다. 카리스마를 지닌 노장, 열악한 환경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만큼은 틀림없다.
김동광 감독(위)과 이충희 감독이 각각 삼성, 동부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모습.
김동광 감독이 물러난 다음 날인 1월 28일 원주에서 동부와 KGC인삼공사의 경기가 열렸다. 동부 구단의 홈페이지에서는 오래전부터 이충희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릴레이처럼 이어졌다. 이충희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경기장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내용은 살벌했다. “지친 팬들이 먼저 사퇴를 해야 하나요?”라는 문구도 있었다.
이충희 감독의 올해 설날은 쓸쓸했다. 그는 설 연휴였던 지난 1일 자진 사퇴했다. 시즌 도중 이미 한 차례 12연패를 당했고 사퇴를 결심하기 전에는 13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원주 프랜차이즈 역사상 가장 긴 연패의 늪에 빠져 있었다.
동부 구단은 이충희 감독 체제로 이번 시즌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악화되는 여론과 최다 연패 신기록의 불명예 그리고 결정적으로 김동광 감독의 사퇴가 뇌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충희 감독이 먼저 결단을 내렸다.
이충희 감독은 설명이 필요 없는 남자농구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지도자로서 걸어온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97-1998시즌 창단한 창원 LG의 초대 사령탑을 맡아 팀을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으며 “스타 출신은 스타 감독이 될 수 없다”는 편견을 무너뜨리는 듯 보였지만 2007년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에서 부임 7개월 만에 경질되면서 아픔을 겪었다. 작년 동부 사령탑을 맡아 자존심 회복을 노렸지만 한 시즌을 채우지 못했다.
시즌 전 동부의 해외 전지훈련 분위기를 전해 들었다. 하루는 고참 선수들이 고된 훈련을 하는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저녁 식사 시간에 가볍게 반주를 곁들여도 되는지 이충희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은 흔쾌히 수락했다. 힘든 훈련을 소화한 다음 날 오전 훈련 일정의 조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때도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해는 없어야 한다. 선수들의 요구가 결코 무리하다거나 무례한 것은 아니었다. 이를 수락한 감독의 의도 역시 곡해될 여지는 많지 않다. 오히려 소통의 좋은 예로 여겨질 수도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충희 감독은 선수단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 중 작전타임의 분위기도 산만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보니 전지훈련 당시의 분위기가 단호함이 부족했던 사령탑의 모습으로 비치면서 회자되는 것이다.
현역 시절에는 누구보다 강한 승부사였지만 사령탑으로서는 그렇지 않았다. 코트에서 당황한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 그대로 잡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명확한 작전 지시 혹은 작전타임을 요청하는 타이밍 등 운영 측면에서의 아쉬움을 지적할 때가 많았다. 이충희 감독은 “팬과 구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 성적 부진의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쓸쓸하게 코트를 떠났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