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강호동, 유재석.
‘파일럿 전쟁’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는 유재석이다. 2010년 SBS <런닝맨> 진행을 맡은 이후 4년 만에 새로운 예능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팬들은 물론 방송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KBS 2TV가 4월 9일 파일럿으로 선보이는 <나는 남자다>가 유재석의 새로운 도전 무대다. 오직 남자들을 위해, 남자들이 꾸미는 집단 토크쇼라는 설정이다. TV를 보는 주요 시청 층이 중장년 여성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색적인 기획. 제작진은 대중의 호감도가 높은 유재석을 전면에 내세워 주요 타깃인 남성은 물론 여성까지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사실 유재석은 뜨거운 인기에 비해 ‘마당발 활동’은 자제해 왔다. 한번 진행을 맡은 프로그램을 적어도 5~6년 이상 꾸준히 이끌어가는 ‘뚝배기’ 형에 속한다. 방송가 곳곳의 러브콜도 잦지만 그만큼 신중하게 활동을 해왔다. 때문에 <나는 남자다>는 유재석이 선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재석과 더불어 10년 가까이 ‘투톱 시대’를 이끈 강호동 역시 이번 봄 개편에서 도전에 나선다. MBC가 신설하는 토크쇼 <별 바라기>를 통해서다. 세금 탈루 논란에 휩싸여 연예계에서 잠정 은퇴를 선언했던 2011년까지 강호동은 MBC에서 토크쇼 <무릎팍 도사>를 진행하며 난공불락의 전성기를 누려왔다. 당시 ‘토크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진행자’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그런 강호동이 고향과 같은 MBC로 돌아와 다시 토크쇼 장르에 도전하면서 그 성공 여부에 대한 시선이 모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동시에 새로운 예능을 찾아 도전에 나선 건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예능 환경’을 대변한다. 올해 봄 개편에 유난히 파일럿 프로그램에 많은 것도, 유재석과 강호동까지 움직이는 것도 모두 예능의 판도 변화 속에 더는 제자리에 머물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신동엽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한 제작 관계자는 “최근 관찰 예능이나 일반인이 참여하는 프로그램들이 늘면서 과거 유재석과 강호동이 형성한 막강한 시청률 파워가 주춤한 건 자명한 사실”이라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를 주지 않으면 유행 주기가 빠른 예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유재석, 강호동뿐 아니라 신동엽과 박명수, 김구라와 이휘재 등 스타들도 ‘작정하고’ 나서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봄 개편을 맞아 파일럿으로 편성된 신규 예능의 진행을 맡고 진검 승부를 시작한다. 시청자의 반응이 약할 경우 가차 없이 정규 편성에서 제외되는 파일럿의 특성상 긴장을 늦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방송가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신동엽의 새로운 선택은 KBS 2TV가 방송하는 <미스터 피터팬>이다. 중년의 스타들이 아지트로 통하는 장소에 모여 다양한 종류의 게임에 도전하는 내용. 한동안 스튜디오 예능에 집중했던 신동엽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야외 버라이어티란 점에서 시선을 끈다.
박명수는 음악 예능이다. 시청자가 자신의 사연을 가사로 쓰고 전문가들이 이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드는 <밀리언셀러> 진행을 맡았다. 개그맨이자 가수로도 활동하는 박명수는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에 상당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KBS2 <나는 남자다>의 진행을 맡은 임원희 유재석 노홍철(왼쪽부터).
이휘재와 김구라는 자신의 개성을 십분 살린 프로그램을 책임진다. 기획부터 진행에 이르기까지 직접 참여하며 역량을 펼치겠다는 각오다. 이휘재는 KBS 2TV가 방송하는 <두근두근 로맨스>를 택했다. 연애 관찰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이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이 30일 동안 연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 이휘재는 이들을 돕는 ‘연애 멘토’로 활동한다. 한때 미팅 프로그램 ‘멋진 만남’ 등을 진행하며 남녀 관계 특히 연애에 관한한 탁월한 감각을 인정받았던 이휘재가 오랜만에 ‘장기’를 살린 장르에 도전하는 셈이다.
김구라는 시청자들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기획으로 만들어진 토크쇼 <진격의 역지사지:대변인>의 진행을 맡고 파일럿 예능 경쟁에 뛰어든다. 제작진이 내건 이 프로그램의 구호는 ‘당신의 입이 되어 드립니다’이다. 제작진은 평소 거침없는 말투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적 발언으로 주목받아온 김구라의 개성을 그대로 살리겠다는 계획이다.
사실 방송사들이 예능 스타들을 총출동시켜 공격적인 기획에 나서는 건 “더는 밀릴 수 없다”는 자구책이기도 하다. 최근 2~3년 동안 지상파 예능의 경우 진부한 기획이 반복되면서 시청률에서도 상당한 침체기를 보냈다. 반면 tvN이 방송한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 시리즈는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으며 전체 방송 시장에서 예능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외주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케이블의 독주는 물론 자극적인 소재로 시청자의 관심을 유도하는 종편 예능과의 경쟁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이 주춤하고 있다”며 “일종의 위기 타개책으로 활동 가능한 예능 스타들을 대거 캐스팅해 승부수를 띄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