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풍남문 전경. | ||
전북 전주덕진 지역구에서 15대와 16대 총선에서 내리 전국최다득표를 기록한 바 있는 정동영 의원이 지난 1월11일 열린우리당(우리당) 전당대회를 통해 당의장에 당선됐다.
총선을 불과 1백여 일 앞두고 호남 출신 정 의원이 우리당 당의장에 당선됨으로써 4월 총선에서 호남, 특히 전북지역 민심의 향배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부산 출신 노무현 대통령에 호남 출신 여당 당의장이 배출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4월 총선 호남 민심의 향배가 주목되고 있는 것.
이에 <일요신문>은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설 연휴 동안 정동영 의장을 배출한 전북지역에 나타난 ‘설’ 민심을 살펴봤다.
민주당 분당이 예고되던 지난해 9월 추석 민심과 설 민심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했다. 추석에는 민주당 분당 사태가 예고되던 시점이었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불거진 인사 소외 문제와 연이어 터져 나온 새만금, 방폐장 문제 등으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배반감이 전북지역을 휘감고 있었는데 반해, 설을 전후한 전북지역 민심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선택’을 앞두고 한층 차분해져 있었다.
오히려 당의장 당선으로 한층 성장해 있는 정동영 의장에 대한 기대감과 4월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우리당이 어떤 결과를 거둘지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전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정아무개씨(35)는 “아직 어느 당을 지지할지는 결정하지 않았다”면서도 “젊고 개혁적인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정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정동영 의원이 우리당 의장에 당선된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보탰다.
역시 교사인 김아무개씨(58)는 “민주당이 깨지지만 않았어도 더 좋았을 걸…”이라며 민주당 분당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했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는 더 젊고 더 개혁적인 사람들이 많은 당을 찍어줘야지”라며 우리당에 대한 지지의사를 피력했다.
회사원 홍아무개씨(34)도 “(민주당이 분당된) 처음보다는 (우리당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정동영 의원이 당의장에 당선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동영 의장의 당선이 확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설을 맞아서인지 전북지역 민심은 정동영 의장과 총선을 연계시켜 해석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정 의장의 거취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주부 소아무개씨(56)는 “정동영 의원이 서울에서 출마한다던데 사실이냐”며 “하기야 이제 당대표(의장)도 되고 했으니, 큰물에서 놀아야지”라며 정 의장의 서울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전북지역 언론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아무개 기자도 “(정동영 의장이) 종로로 지역구를 옮길 거란 얘기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부터 줄곧 있어왔던 얘기”라며 “당의장에 당선된 이후에는 사실상 (지역구 이전이) 확정된 것처럼 얘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 의장이 호남이라는 지역에 발목 잡혀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역구를 옮길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총선을 80여 일 앞두고 있는 전북지역 설 민심은 이처럼 ‘정동영’을 매개로 형성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전통적으로 꾸준한 지지를 받아왔던 민주당에 대한 민심이탈 현상이 눈에 띄게 늘었다.
자영업자 김아무개씨(43)는 “민주당은 이제 희망이 없어 보인다”며 “누구를 보고 찍어주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총선이 단편적으로 보면 국회의원을 뽑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차기 지도자를 키워낼 정당을 선택하는 것 아니냐”며 “지금 민주당에 남아 있는 호남 출신 정치인 가운데 차기 지도자감이 있기나 한가”라며 실망감을 표시했다.
반면 우리당에 대해서는 “정동영 의장이, 실질적으로 여당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당 의장에 당선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너무 일찍 차기 지도자감으로 부상해서 불안감이 없진 않지만, 그나마 희망을 가져볼 수 있는 인물 아니냐”고 말했다.
공무원 이아무개씨(30)는 “그동안의 지역 정서로 보면 민주당을 찍어줘야 할 것도 같은데, 딱히 (유권자들의) 마음이 안 움직이는 것 같다”며 “누구를 보고, 무슨 마음으로 찍어야 할지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과 우리당이 다시 합치든지 해야지, 괜히 나눠져서 고민거리만 안겨준 꼴”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의장이 부상한 이후, 우리당에 대한 지지층이 점점 늘고 있는데 반해 민주당에 대한 지지층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탈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민심의 큰 흐름 속에서도 민주당에 애정어린 비판을 가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방아무개씨(35)는 “정동영 효과가 전북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전북 민심이 민주당을 떠난 것은 아니다”며 “민주당 자체에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남아있고 민주당 스스로 변화와 개혁을 이뤄내면 성원해줄 지지층은 여전히 두터운 편”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에 대한 싸늘한 민심은 추석 때보다 더 악화돼 있었다. 지난해부터 온갖 매스컴을 장식했던 ‘대선자금 차떼기’가 한몫하고 있었다.
주부 소아무개씨(56)는 “(한나라당이 집권했으면) 어쩔 뻔했느냐”며 “해도 해도 너무 했다”며 혀를 찼다. 회사원 홍아무개씨(34)도 “수백억씩을 그렇게 눈 하나 깜빡 안하고 받을 수 있는 강심장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한나라당은 (지지를 받으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보다는 ‘차떼기’로 대표되는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수수가 더 큰 문제로 전북지역 민심에 각인되어 있는 셈이다.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도 만만치 않게 퍼져 있었다.
회사원 최 아무개씨(34)는 “정치인들은 다 도둑놈들 아니냐”며 “수백억을 먹었건, 수십억을 먹었건 다 마찬가지”라며 “나는 투표를 보이콧해서 의사표시를 하겠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아무개씨(27) 역시 “김대중 대통령은 잘할 줄 알았는데,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더니만, 노무현 대통령도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며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았았는데 감옥에 간 측근들이 벌써 몇 명이냐”며 “정치권은 어쩔 수 없는 집단인 모양”이라며 불신감을 피력했다.
‘정동영 효과’와 ‘정치불신’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민심이 4월 총선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