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고문이 2008년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의혹 사건의 첫 공판이 열린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이던 2013년 4월 중순경 청와대로 파견 나와 있던 사정기관의 한 직원은 엘앤비인베스트먼트가 빌딩을 건축하는 과정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봤다. 이 고문 재산에 대한 정확한 현황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이뿐 아니라 사정기관의 또 다른 직원 역시 그동안 이 고문을 둘러싸고 은밀히 돌았던 내용들을 모아 ‘얘기가 되는’ 것들만 따로 정리해 보고서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은 이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정당국 고위 인사의 설명이다.
“이학수 고문 얘기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확인하라는 지시가 내려갔다. 그런데 공식적인 절차를 거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박 대통령의 한 최측근이 개인적인 라인을 가동해 진행했던 것이다. 여기에 개입했던 청와대와 사정기관 직원들이 그에게만 보고를 했다. 해당 직원들의 직속상사도 몰랐을 것이다. 청와대 민정 쪽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포착했지만 묵인했다고 들었다. 어떤 이유로 이 고문을 파헤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고문뿐 아니라 다른 대기업 유력 임원들도 그 대상자였다.”
권력기관 소속 직원들이 특정 재계 인사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은 차후에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이러한 일이 비선에서 이뤄졌다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이를 통해 생성된 정보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까닭에서다.
여권의 한 실세가 재산을 비롯한 이학수 고문 관련 파일들을 수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속칭 이학수 빌딩(오른쪽에서 두 번째). 박은숙 기자
이는 지난 정권을 곤혹스럽게 했던 민간인 불법 사찰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성골로 꼽히는 ‘영포라인’ 몇몇 실세들은 사적인 이득을 취하거나 정적을 압박하기 위해 공권력을 활용했다.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종교계 인사, 언론인, 민간인 등을 무차별적으로 사찰한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이 과정에서 정식 보고체계는 무시됐다. 또 견제장치가 없다 보니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했다. 그 후 민간인 사찰 관련자들 대부분이 사법처리를 받았다.
그렇다면 최고 실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 여권 인사는 왜 이 고문을 샅샅이 들여다봤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일요신문>은 당시 작업에 관여했던 직원들과 여러 차례 만나려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접촉한 사정당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직원들이야 시키는 대로 했던 것 아니겠느냐. 그러한 지시를 내린 몸통만이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이 고문은 삼성의 은밀한 속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이 고문 개인이 아닌 재계 1위 삼성을 겨냥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정부 출범 직후 재계에 대한 고삐를 죄던 여권 핵심부가 대기업 군기를 잡기 위한 차원에서 핵심 임원들 자료를 모으려 했을 것이란 얘기다.
정치권 일각에선 파워게임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친박계의 한 중진 의원은 “지금 이 시점에 왜 그러한 의혹이 불거졌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부터 여권의 권력 다툼이 표출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면서 “특정 그룹이 정권 출범 후 이 고문 등과 각별한 관계에 있는 또 다른 여권 실세들을 압박하기 위해 은밀하게 비리 파일을 모으려 했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그것을 인지한 쪽에서 그 내용을 흘림으로써 반격에 나서는 듯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여권 실세가 벌인 뒷조사 작업’ 관련 보도문]
일요신문은 2014년 4월 6일자(제1142호) 2면 및 인터넷 일요신문 2014년 3월 31일자 정치면 “여권 실세가 벌인 ‘뒷조사’ 작업” 제하의 기사에서 ‘지난해 4월경 여권의 한 실세가 주도하는 비선라인이 청와대에 파견 나와 있던 사정기관 공직자를 동원해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이 소유한 빌딩의 건축 과정에 대해 조사하는 등 유력 대기업 임원 등을 뒷조사하였고, 청와대 민정 쪽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포착됐으나 묵인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 나와 있던 직원이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 등 대기업 임원을 뒷조사하거나, 대통령 비서실이 그러한 사정을 알고도 아무런 제지 없이 묵인한 사실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일요신문은 2014년 4월 6일자(제1142호) 2면 “여권 실세가 벌인 ‘뒷조사’ 작업” 제하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당사자의 입장을 충실히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사화 해 관계자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향후 유사한 보도를 하게 될 경우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하도록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겠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