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악재로 바람 잘 날 없는 GS칼텍스가 신용등급마저 하향되더니 결국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도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지난 3일 GS칼텍스는 3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오는 5월 8일 만기도래하는 무보증사채 차환자금으로 2000억 원, 원유도입 결제대금으로 1000억 원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GS칼텍스는 원하던 3000억 원을 마련했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GS칼텍스의 이미지 추락을 지켜보는 허창수 회장의 마음이 남다를 듯하다. GS칼텍스의 그룹 내 비중이 압도적일 뿐 아니라 친동생 허진수 부회장(오른쪽 작은 사진)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신문DB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전액 모집하는 데 실패해 모자란 금액을 하나대투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이번 회사채 발행의 대표주관사들을 비롯해 인수단으로 참여한 증권사들이 맡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사들로부터 ‘AA+’라는 신용평가등급을 받았음에도 3000억 원어치를 ‘완판’하지 못했다는 점은 GS칼텍스의 현재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대변한다.
GS칼텍스의 회사채 발행 흥행 여부는 진작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악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발행하는 회사채가 과연 매력적일지 의문이었던 것. 결국 지난 3월 27일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한 수요예측에서 50억 원이 미달, 2950억 원이 들어오는 데 그쳤다. 일부에서는 현재 상황을 고려해 선방했다는 평가도 있으나 같은 시기에 수요예측을 진행한 GS이앤알과 삼성에버랜드, 현대하이스코 등이 흥행에 대성공을 거둔 것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다.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국제신용평가사들이 GS칼텍스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치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지난 2월 7일 무디스는 GS칼텍스의 신용등급을 ‘Baa2’에서 투자적격등급 중 가장 낮은 ‘Baa3’로 낮췄다. S&P 역시 3월 24일 ‘BBB’에서 ‘BBB-’로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등급 하향 이유에 대해 “핵심인 정유사업부문과 파라자일렌(PX) 영업의 구조적인 약화 가능성 때문”이라며 “GS칼텍스가 중국과 인도, 중동의 생산 능력이 확대돼 앞으로 12~18개월간 어려운 경영환경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P는 GS칼텍스의 영업 현금흐름과 자본투자 감소의 위험성을 알리며 무디스와 마찬가지로 정유사업은 수익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고 파라자일렌 사업 수익성 역시 악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3000억 원 중 50억 원이 미달됐을 뿐이니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모자란 50억 원을 별 어려움 없이 채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주인공이 GS칼텍스라면 얘기가 다르다. GS칼텍스는 GS그룹에서도 최고 계열사다. (주)GS 관계자는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이 70조 원이었는데 GS칼텍스가 48조 원이었다”며 “그룹 전체 매출에서 60~70%의 비중을 차지할 만큼 GS칼텍스의 그룹 내 위상은 높다”고 설명했다. 또 GS칼텍스는 지주회사인 (주)GS의 자회사여서 GS칼텍스의 실적에 따라 (주)GS의 실적이 좌우된다. GS 관계자가 “지난해 (주)GS의 실적 악화는 GS칼텍스의 실적 저조가 결정적”이었다고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GS칼텍스 홈페이지(왼쪽)와 서울 논현동의 GS타워.
비슷한 시기 회사채를 발행한 다른 기업의 예를 보더라도 GS칼텍스의 처지와는 사뭇 비교된다. 같은 시기 1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계획한 GS이앤알은 수요예측에서 4200억 원이 몰려 크게 흥행했다. 그 결과 GS이앤알은 당초 계획보다 2배인 2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키로 했다. 삼성에버랜드도 기관투자자금이 대거 몰렸다. 국내 신용등급이 GS칼텍스보다 낮은 ‘A+’의 현대하이스코 역시 1600억 원 모집에 2배인 3200억 원이 몰렸다. 이 같은 점을 보면 유일하게 미달된 GS칼텍스의 체면이 말이 아닌 셈이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신용등급 하락과 네거티브(부정적)한 전망도 이유겠지만 회사채 발행에서 중요한 것은 금리와 시기”라면서 “발행사(GS칼텍스)와 주관사가 제시한 금리가 투자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GS칼텍스가 금리를 높여 발행했다면 흥행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는 곧 GS칼텍스가 금리 면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GS칼텍스는 연 3.675%로 계획했던 금리를 회사채 발행 직전 3.698%로 0.023%포인트 높였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지난 3월) 27일 수요예측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권시장 다른 관계자는 “신용등급 하락, 부정적 전망에 따라 앞으로 금리에서 더 손해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GS칼텍스 대표이사는 허창수 그룹 회장의 친동생인 허진수 부회장이다. 그룹 회장과 그룹의 최고 계열사 대표이사가 친형제다. 공교롭게도 계열분리해 나온 사돈기업 LG그룹과 닮아 있다. LG그룹 역시 최고 계열사인 LG전자 대표이사를 구본무 그룹 회장의 친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이 맡고 있다.
지난해 초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뒤를 이어 GS칼텍스 대표이사를 맡은 허진수 부회장은 취임 이후 줄곧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취임 첫해 실적이 변변치 않은 데다 올해에는 사건·사고가 잇따르며 이미지마저 추락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형 허창수 회장의 마음도 편치 않을 듯하다.
굳이 친형제임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GS칼텍스의 그룹 내 비중이 압도적이고 지주회사의 자회사이니만큼 GS칼텍스의 희비는 허창수 회장의 그것과 직결된다. 그러나 무디스와 S&P 등에 따르면 향후 전망이 밝지 않아 문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