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갓 넘긴 어두운 시간이었지만, 당시 사고 현장엔 몇 명의 목격자가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프랑소와 레비. 그는 백미러로 현장을 보았다며 제법 상세하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미국 관광객이던 브라이언 앤더슨도 현장에 대해 증언했다. 레비의 주장을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옆에선 흰색 피아트가 속도를 내며 조금씩 1차선으로 붙고 있었고, 위협을 느낀 벤츠는 속도를 내며 빠져 나가려 했다.
이때 오토바이에 탄 한 사람이 플래시 같은 것으로 강한 섬광을 뒤쪽에 쏘았고, 순간적으로 눈이 부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벤츠의 운전사 헨리 폴이 갑작스레 핸들을 돌리면서 자동차는 기둥에 부딪힌 것. 사고가 일어났을 때 피아트는 이미 그곳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때 섬광을 터트렸던 사람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사고 차량 안을 관찰한 후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수신호를 했다. 가슴 높이에 팔로 X 모양을 만든 후, 서서히 팔을 내리며 야구 심판이 세이프 판정을 할 때처럼 양팔을 벌렸다. ‘임무 완수’를 의미하는 행동이었다.
다이애나비 사망 사고 현장. 다이애나비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경찰은 레비가 1989년에 사기죄로 잡혀 감옥에 있었다는 걸 알아냈고, 그의 증언도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많았다. 그토록 강렬한 불빛이라면 피아트 운전수도 시야 확보를 못 했을 거라는 게 레비가 한 증언의 신뢰성을 떨어트리는 가장 큰 사실이었다. 게다가 레비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내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고, 현장에서 섬광 같은 건 없었다고 말하는 증인들도 있었다. 피아트에 대해선 프랑스 경찰이 1년에 걸쳐 4000대의 자동차를 조사했지만 운전자의 정확한 신원 파악은 불가능했다.
이때 죽은 도디 파예드의 아버지인 모하메드 알-파예드는 그 소유자가 파파라치인 장-폴 제임스 앤던슨(Jean Paul James Andanson)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이애나가 죽기 한 달 전, 그녀는 생 트로페즈에 있는 알-파예드에 잠시 머물렀는데 이때 파파라치 사진을 찍은 사람이 바로 앤던슨이었고, 그때 그는 흰색 피아트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앤던슨은 당시 자신의 차가 32만 5000킬로미터를 달린 상태였기에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2000년 5월, 프랑스 남부의 어느 숲에서 검게 불 탄 BMW 한 대가 발견되었고, 그 안엔 죽은 앤던슨이 있었다. 몸에서 머리가 분리될 정도로 큰 사고였고, 왼쪽 관자놀이에 구멍이 있었다. 경찰은 자살로 판정 내렸고, 머리의 구멍은 강한 열기에 의해 발생한 거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자동차 열쇠는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유족들은 사망 당시 앤던슨은 새로운 포토 에이전시와 계약하면서 매우 의욕이 넘치는 상태였고, 그가 집에서 64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자살할 아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더욱 이상한 건, 앤던슨이 죽은 지 한 달 후에 그가 사용하던 스튜디오에 무단 침입이 있었다는 거다. 도난된 물건은 없었지만, 경찰은 침입자를 밝히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알-파예드는 정보 당국이 다이애나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앤던슨을 제거한 거라고, 또는 적어도 앤던슨이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한 거라고 주장했다.
다이애나와 도디가 살해당했다고 주장하는 도디 아버지 알-파예드.
의혹은 계속 이어졌다. 그날 차량이 출발한 리츠호텔에서 사고 시점까지는 10개 정도의 CCTV가 있었는데, 다이애나가 탄 벤츠를 찍은 CCTV는 단 하나도 없었다. 사고가 일어난 지하도에도 CCTV는 있었지만, 사고 광경을 담은 화면은 없었다. 프랑스 경찰은 파리 교통국이 운영하는 카메라는 오후 11시가 되면 야간 직원이 없는 이유로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지만, 매우 석연찮은 부분이었다. 안전벨트 부분도 수상했다. 다이애나는 자동차에 타면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매는 사람이었는데, 사고 당일엔 매지 않았다. 영국 경찰의 정밀 검사 결과, 자동차 안의 안전벨트 중 다이애나가 앉았던 뒤쪽 오른편 좌석의 벨트만 유독 고장 난 상태였다고 발표했다.
알-파예드는 다이애나의 시신이 검시가 끝난 후 신속하게 방부 처리되었다는 점도 문제 제기했다. 그럴 경우, 그 어떤 임신 테스트도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경찰은 더운 날씨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영국 특수부대인 SAS의 개입설도 떠돌았고, 12시 23분에 사고가 나 12시 26분에 첫 응급 콜이 있었는데 다이애나를 실은 앰뷸런스가 피티에-살페트리에 병원에 도착한 건 2시 6분이었다는 사실도 미스터리였다. 현장에서 응급 처리를 했다고는 하지만, 100분의 시간이 걸릴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살해당한 것일까, 아니면 경찰의 발표대로 음주 운전의 희생자인 걸까?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