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본색2>에서 장국영이 공중전화부스에서 최후를 맞는 장면은 그 당시 수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던 명장면이다.
그의 죽음에 대해선 시간이 흐른 후에 몇몇 증언들이 이어졌다. 처음엔 다양한 루머가 있었다. 장국영의 동성 연인이자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인 당학덕이 저지른 짓이라는 타살설이 있었다. 유작인 <이도공간>(2003)의 캐릭터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자살에 이르렀다는 분석도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앓아 온 우울증도 죽음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홍콩 연예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던 삼합회가 죽음의 배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억측마저 돌았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을 때, 드디어 장국영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친구이자 디자이너였던 모화빙이 인터뷰를 통해 그날의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2011년의 한 인터뷰에서 모화빙은 2003년 4월 1일에 만났던 장국영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전 10시, 장국영은 모화빙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을 함께하자고 했다. 그들은 코즈웨이 베이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오후 1시에 만났다. 모화빙이 전하는 그날의 장국영은 매우 불안한 모습이었다. 수면 부족과 정신적 문제로 초췌해 보였고, 수전증 증세마저 있었다. 그는 악령을 쫓기 위한 의식을 위해, 풍수지리에 의거해 스촨 지역에 가고 싶다는 말도 했고, 모화빙은 차라리 함께 미국에 가서 제대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 보자고 권유했다.
그날 모화빙은 장국영과 세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에 의하면 장국영은 영화 연출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고. 당시 장국영은 193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을 준비중이었다. 모화빙을 만난 것도 그 이유였는데, 자신의 집 인테리어를 해주었던 디자이너 모화빙과 기획중인 영화의 미술과 소품 등을 상의했다. 그런데 모화빙에 의하면, 식사 중에 장국영은 갑자기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죽고 싶을 땐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지.” 이것이 모화빙과 장국영이 나눈 마지막 말이었다.
2013년엔 장국영의 누나인 장녹평이 동생의 죽음에 대해 인터뷰를 했는데, 그녀는 장국영이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말했다. 장국영은 종종 누나의 집에서 왕진 온 의사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곤 했는데, 소견서에 의하면 스트레스로 인해 뇌 속 화학 물질이 불균형 상태를 이루었고 점점 깊은 우울증 상태로 빠지게 했다는 것이다.
장국영의 장례식.
하지만 절친과 혈육의 이러한 증언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24층 높이에서 추락한 장국영의 사체가 너무나 멀쩡했다는 것이다. 그가 타살된 상태에서 5~6층 높이에서 누군가에게 밀려 떨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건 그런 이유다. 그리고 24층 높이에서 떨어졌다면 지면과 충돌할 때 큰 소리가 나기 마련이지만 당시 그 누구도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고, 호텔 앞을 지나던 행인에 의해 그의 시체가 발견되었던 것도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는데, 당시 장국영의 사체는 분명히 형체를 알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졌다는 것.
소지품도 수상했다. 여러 개의 열쇠, 9000홍콩달러가 든 지갑. 두 개의 휴대전화, 사스를 막기 위한 마스크 그리고 유언장이 발견되었는데 법의학자나 정신과의사에 의하면 투신자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 소지품 없이 뛰어내리며, 유언장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유언장이 피로 얼룩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빠르게 자살로 단정한 홍콩 경찰과, 부검을 원하지 않았던 가족들의 행동에도 이상한 구석이 있으며, 죽기 전에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사실도 의혹을 더하는 요소다. 물론 이해할 수 있는 구석도 있다. 그는 의학적으로 정신 이상 상태였으며, 사실 이전에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우발적으로 몇 줄의 유서를 갈기고 소지품을 그대로 지닌 채 떨어졌을 수도 있었으며, 자살 시도 이후 보험을 들었을 수도 있었다는 견해다.
당시 정황에도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그 시기 장국영은 대규모 자선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었고, 금마장 시상식 후보에도 올라 있었으며 사스에 걸리지 않으려고 항상 마스크를 착용했다. 4월 1일 당일엔 모화빙과 식사를 마친 후 호텔로 와 운동을 하고 오렌지 주스를 마신 후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그에겐 두 건의 약속이 있었는데, 장학우를 만날 예정이었고, 과거 매니저이자 절친한 관계인 진숙분과 콘서트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몇 줄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 전문가에 의하면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몇 장에 걸친 유서를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의혹들만을 남긴 채, 그는 이미 저 세상으로 갔다. 그와 <아비정전> <해피 투게더> 등에서 함께 작업했던 왕가위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장국영은 종종 전설이 되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그가 전설이 될지는 몰랐다.” 이젠 전설이 된 배우 장국영. 다시 한 번 그의 명복을 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