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지난 5일과 6일 이틀간에 걸쳐 부산 현지 민심을 돌아본 결과 시민들이 겪는 자괴감과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감은 의외로 크고 뜨거웠다. 반면 전통적 지지 정당이었던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애증이 교차하는 직격탄이 쏟아졌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기자가 만난 시민들이 대부분 50대 이상의 연령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새로운 인물을 뽑아야 한다” “이제 당만 보고 찍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산에서 20년째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최아무개씨(61)는 ‘안 시장 자살 이후 지역 내 여론이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대뜸 “시장 자살한 것 하고 총선하고 무슨 상관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한나라당에서는 자꾸 이 정권이 안 시장을 죽인 것으로 몰아가는데 실제 이곳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국제시장의 상인 조아무개씨(57)는 “최근 들어 부산 여론이 바뀌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 결과 밝혀지고 있는 대선 비자금 비리 이후부터라는 것.
조씨는 “부산 아줌마들은 다들 정동영에게도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라”라고 전했다. ‘정 의장은 호남 출신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에이 쓸데없는 소리. 가만히 보면 신문에서 지역감정을 더 부추긴다니까. 전라도에서 경상도 출신 대통령 뽑아주는 판국에 무슨….”이라며 일축했다.
전직 공무원 이아무개씨(60)는 “지금껏 부산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를 한 것은 한나라당이 예뻐서라기 보다 민주당이 미워서였다. 민주당은 절대 안된다는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민주당하고 다르다는 정서가 부산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민주당이 밉고 한나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에게 우리당이 그 대안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택시기사 김성수씨(37)는 아예 노골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고 나섰다. 김씨는 “난 지금껏 선거 안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꼭 할란다. 열린우리당 찍기 위해서 선거에 참여할 것”이라고 서슴없이 밝혔다. 그는 “야당이 여당보다 더 부패한 정당이 한나라당이다. 아직도 나이드신 분들은 한나라당 정서를 갖고 있을지 몰라도 40대 이하 청장년층 사이에서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도가 생각보다 꽤 높게 나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 위쪽 사진은 한나라당 부산광역시지부 건물에 붙은 플래카드. 아래쪽은 열린우리당 부산 연제지구당에 붙은 플래카드. | ||
하지만 이 같은 거침없는 황색 바람에 대해 “그래도 역시 선거판 뚜껑을 열면 한나라당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정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자영업자 한아무개씨(55)는 “요즘 신문에 우리당 지지도가 조금 올라간다고 해도 결국 뚜껑을 열어보면 한나라당이 싹쓸이할 것”이라며 “몇십년 동안 형성된 정서가 하루 아침에 바뀌겠느냐”고 말했다.
택시기사 정명식씨(55)는 “우리당이 툭하면 한나라당을 향해 ‘차떼기 정당’이라고 욕하는데, 솔직히 다른 사람이 욕하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당이 그렇게 욕하는 것은 밉다. 자기들이 욕할 자격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정씨는 “처음엔 우리당이 뭔가 새로운 정치를 보여줄 것인가하는 기대도 했으나, 요즘 하는 것을 보면 역시 똑같은 구태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면서 “김혁규 지사를 봐도 안 시장의 구속도 정권에서 얼마든지 작심하고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수백억원씩 해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1억, 3억 먹었다고 구속시켜서 결국 자살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 잘한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국제시장에서 만난 60대 중반의 한 노신사는 “노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부산 사람들한테 전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쨌든 고향 사람 아닌가. 그런데 최근 하는 것을 보니까 실망감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나라 살림도 한 가정의 살림과 다를 바가 없는데, 집에서 부모가 싸우면 자식들이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듯이 국가 역시 정치인들이 허구헌날 서로 싸움질만 하면 국민들이 피곤해지기 마련”이라며 “대통령이 머리가 좋아서 사법고시는 붙었을지 몰라도 덕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제시장의 조씨는 “사실 우리당 입장에서는 부산에서 한 3석만 건져도 성공한 것 아니냐. 그것만 해도 엄청난 변화”라면서 “한나라당이 기존의 국회의원들 싹 물갈이하고 새롭고 참신한 인물들을 내세운다면 예전처럼 싹쓸이는 못해도 여전히 대다수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