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선거시장도 가라앉은 분위기다. 사진은 한 예비후보자가 명함을 돌리는 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박은숙 기자
세월호 참사로 인해 모든 정치 일정이 중단된 가운데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단연 여론조사업체들이다. 새누리당이 당 차원에서의 여론조사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여야를 불문하고 당과 후보자 모두 참사 이후 조사 의뢰를 취소하거나 무기한 연기 중이다. 심지어 각 여론조사업체에서 실시하는 정례 여론조사 역시 대부분 중단됐다.
대형 여론조사기관 중 하나인 한국갤럽의 장덕현 부장은 “세월호 여파로 이번주(4월 4주차) 정례 여론조사가 중단됐다”며 “현재로선 사고 여파와 크게 상관없는 마케팅 조사가 일부 진행될 뿐이다. 아무래도 여론조사가 국민을 상대로 협조를 얻어 진행하는 것인데 국정과 정당 지지 등을 물으면 당연히 안 좋게 생각할 수 있어 무척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역시 정례조사를 중단했다는 한길리서치의 홍형식 소장도 “그나마 대형 여론조사기관의 경우 마케팅 조사는 진행하겠지만, 우리 같은 중소규모 여론조사기관의 경우 정례조사는 물론 이미 계약된 정치 조사들이 전부 중단된 상황”이라며 “일 자체를 못해 차질이 심하다. 한마디로 물량은 있어도 가동하지 못하는 공장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무리를 해서 여론조사를 진행해도 문제다. 전화를 돌려도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응답자의 협조가 쉽사리 이뤄지기 힘들다. 업계 내부에선 이미 조사 응답률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는 곧 비용문제를 야기한다. 시간이 촉박한 현재로선 마감기일 내에 할당량을 채워야 하기에 더 많은 전화발신과 전화 상담원이 투입돼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으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더 답답한 점은 선거는 코앞인데 언제 정치 일정이 정상적으로 가동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리얼미터의 권순정 실장은 “후보 경선 과정에서 여론조사가 포함된다. 그 데드라인(마감시한)을 4월 30일로 보고 있다. 만약 그 시점을 넘으면 혼잡해질 수밖에 없다”며 “새누리당도 그렇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쪽은 아예 경선 자체가 시작되지도 않았다. 조사 일정과 환경 자체가 나빠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홍보 및 컨설팅 업계도 상황이 나쁘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후보 공천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난 새누리당 후보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업체들은 사정이 낫다. 이러한 업체들 대부분 이미 예비후보 차원에서 고객들을 확보한 후 공천을 기다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선거운동만 재개된다면 이미 확보한 고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기초선거 무공천 선언을 번복한 새정치연합 후보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업체들이다. 이들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무공천 철회로 어렵사리 영업을 시작한 시점에 선거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야권 후보를 주요 고객으로 삼는 한 컨설팅업체 고위 관계자는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다”라고 한숨을 내쉬며 “이번주가 지나야 알겠지만, 영업 자체가 딜레이되고 있다. 지금은 완전히 올스톱 상황이다. 지금처럼 시장이 침체되면 될수록 우리와 도전자 모두 답답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관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요신문>이 지난 1145호를 통해 조명한 ‘선거 로고송 업계’도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메이저급인 인우프로덕션의 송관우 실장은 “업계 전반적인 분위기가 조용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로고송을 만들겠느냐”고 반문하며 “여야 모두 공천을 미뤘기 때문에 일단 5월은 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다른 선거에 비교해 많이 늦춰지고 있다. 정치 일정이 재개되더라도 이번 선거는 아무래도 엄숙한 분위기에서 치르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이보다도 규모가 작은 엑스티브엔터테인먼트의 이상훈 실장도 “관망 중이다. 각 당 차원에서 내부 단속이 심하다. 평소 오던 연락이 5분의 1로 떨어졌다”면서 “이번 선거를 위해 투자도 많이 하고 인력도 보충했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5월 이후에라도 고객이 몰리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전혀 확정된 것이 없다”라고 답했다.
꽁꽁 얼어붙은 선거시장은 언제나 풀릴 수 있을까. 이에 종사하는 업자들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겠지만, 그렇다고 세월호 참사로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하소연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 내부의 반응이다.
일단 금주 내 여야 모두 선거운동을 조심스럽게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몇몇 예비후보들은 지역공약을 발표하며 기지개를 펴고 있다. 하지만 선거운동이 재개된다하더라도 지난 선거들처럼 떠들썩한 분위기는 재연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주부터 정례조사를 재개한다는 홍형식 소장은 “희생자 가족들만 생각하면 애석하다. 하지만 지자치단체장을 잘못 뽑으면 그 또한 큰 화를 부를 수 있는 만큼 선거도 중요하다”며 “5월 초 정치 일정이 재개된다하더라도 늦었다. 부디 일정이 재개돼 제대로 된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내놨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김태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