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서 활동 중인 중견 개그맨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지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어느덧 한 달. 사고 직후 드라마를 비롯해 음악프로그램, 개그프로그램이 일제히 중단되고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 모두 재난방송체제에 돌입했다. 이후 드라마는 보름 만에 정상화됐다. 4주차에 접어들며 조심스럽게 음악프로그램도 재개됐다. 지상파 중 가장 먼저 음악프로그램을 재개한 MBC는 10일 방송된 <쇼 음악중심>을 발라드 가수 위주로 꾸몄다. 국민적 정서를 고려해 화려한 퍼포먼스가 가미된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대폭 줄였다.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종의 연착륙을 시도한 셈이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배로 장식된 서울광장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하지만 개그프로그램은 여전히 결방이다. 11일 새롭게 선보이는 MBC <코미디의 길>이 조심스럽게 방송을 시작했지만 전국시청률 2%대인 <코미디의 길>에 관심을 갖는 대중은 많지 않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은 방송 재개를 고민 중이고, <개그콘서트(개콘)>와 tvN <코미디 빅리그>는 아직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렇듯 결방이 장기화되면서 개그맨들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것을 뒤로하고 스스로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매주 수요일 공개 녹화가 진행되는 <개콘>은 14일 녹화도 취소됐다. 무려 4주째 결방됐으며 향후 일정도 불확실하다. 개그맨들의 웃음소리와 연습 소리가 끊이지 않던 여의도 KBS 연구동에는 긴 침묵이 흐르고 있다. 수요일 녹화가 끝나면 이튿날부터 곧바로 기획회의를 시작하지만 지금은 외부에서 삼삼오오 모이거나 각자 시간을 때우고 있다. 요즘 같은 분위기 속에서 개그맨들이 뭉쳐 다니는 모습조차 좋지 않게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개그맨들은 프리랜서인 동시에 방송사 직원에 가깝다. 대부분의 개그맨들의 가장 큰 수입원이 방송사에서 지급하는 출연료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표 개그프로그램인 <개콘> 출연진 중 상당수가 <개콘> 하나에 매진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당장 이번 달부터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방송일 기준으로 다음 달 말 출연료가 지급되기 때문에 <개콘> 출연진은 이번 달에 4월 6, 13일 2회 분량의 출연료만 받을 수 있다. 당장 이번 주부터 방송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다음 달도 2회 분량의 개런티만 챙길 수 있다.
<개콘>에 출연 중인 한 개그맨의 소속사 관계자는 “<개콘>의 일정이 빡빡하기 때문에 중견이 되기 전에는 다른 프로그램을 겸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이 프로그램에만 매달리는 개그맨들이 많다는 의미”라며 “평소에는 남에게 웃음을 안긴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개그맨들이 국가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토로했다.
개그맨들이 “막막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방송을 본업으로 삼는 개그맨들은 각종 기업 행사 및 이벤트 진행을 맡는 등 부업을 뛴다. 연차가 높지 않으면 회당 출연료가 낮은 반면 부업의 개런티는 인기와 능력 순이다. 때문에 몇몇 개그맨의 경우 부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의 크기가 본업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 발생 이후 행사가 뚝 끊겼다. 기업들은 외부의 눈치를 보며 자숙하고 있고, 그나마 진행되던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개그맨들에게 사회를 맡겼던 영화 제작발표회를 비롯해 연예계 관련 행사들도 축소하거나 아예 사라졌다. 사회자가 필요하더라도 개그맨보다는 진지한 진행에 익숙한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을 선호한다.
간혹 행사 섭외가 들어와도 고사하기 일쑤다. 생계가 걱정돼도 괜한 행사에 나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 아예 당분간 활동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개그맨의 소속사 대표는 “행사 섭외 문의가 대폭 줄었다. 이런 분위기를 알기 때문에 그나마 제안이 오는 행사의 출연료도 많지 않다. 개그맨뿐만 아니라 그들의 수입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연예기획사도 힘들긴 마찬가지다”고 토로했다.
각 방송사마다 개그맨들이 느끼는 고충은 상이하다. 예능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개콘>을 비롯해 인기가 높은 <코미디 빅리그>는 각 프로그램이 갖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몸을 사리는 상황이다.
개그맨들은 4년 전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한 달간 관련 프로그램이 결방돼 끙끙 속병을 앓았다. 웃음을 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죄 아닌 죄’ 때문에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개그맨들의 이중고는 겪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그맨은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을 앞에 두고 우리가 배부른 투정을 한다고 댓글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방송은 우리에게 생존의 문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하소연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고 답답해 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