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돌그룹 엑소의 중국인 멤버 크리스는 중국에서 귀국하지 않은 채 “나를 부속품 취급했다”며 소속사인 SM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제공=SM
크리스 사태를 두고 많은 팬들과 연예 관계자들은 “또 SM이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초점을 달리 둘 필요가 있다. SM과 소송을 벌였던 기존 동방신기 사태와는 전혀 다른 사안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또 외국인 멤버냐?”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게 맞다고 입을 모은다.
크리스는 소장을 통해 “나를 부속품이나 통제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건강상태나 의사를 존중하지 않았다”며 “SM이 한국 및 중국 등의 모든 공연이나 행사, 출연에 대해 일방적으로 일정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껏 크리스를 엑소의 멤버로 육성해 온 SM으로서는 뒷목을 잡을 만한 이야기다. 현재는 정상급 아이돌 그룹으로 발돋움했지만 연습생 중 하나였던 그들을 지금의 위치에 올리기 위해 각 멤버 당 족히 수억 원은 투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정서로는 납득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데뷔 후 연습생들은 장기간 합숙 생활을 한다. 이 기간 동안 사생활은 통제받을 수밖에 없다. 몸매 유지를 위해 식단도 조절해야 하고, 이성교제는 꿈도 꾸기 힘들다. 외국인의 정서로는 분명 이해하기 힘든 대목일 것이다.
몇 해 전부터 ‘한국형 아이돌’은 아시아를 넘어 미주 유럽 남미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엄청난 트레이닝과 스스로의 노력이 낳은 결과물이다. 아이돌은 자생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과 계획에 의해 길러진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에 대해 아이돌 그룹을 보유한 가요기획사 대표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연습량은 상상 이상이다. 잠을 쪼개가며 연습한다. 실수에 대비하기 위해 잠자던 멤버들을 깨워 특정 음악에 맞춰 군무를 추게 한다는 트레이닝도 실제로 진행된다”며 “이는 지극히 한국적인 트레이닝 방식이다. 합숙의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은 외국인 멤버들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멤버들이 상식 밖의 주장을 하며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한경은 현재 중국에서 가수와 배우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 <조폭마누라>와 <박수건달>로 유명한 조진규 감독이 연출하는 중국 영화 <하유교목 아망천당>의 주인공으로 배우 주원과 나란히 발탁됐다. 크리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분쟁으로 인해 한국 내 활동은 어려워졌지만 엑소의 멤버로서 이미 중국에선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독립=돈방석’을 의미한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크리스가 중국에서 개별 활동을 시작한다면 단기적으로 볼 때 SM에 소속됐을 때보다 많은 돈을 만질 수 있다. 연습생을 거쳐 SM과 계약한 크리스와 이미 톱스타로서 중국 업체와 계약하게 될 크리스의 수익 배분 비율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엑소의 멤버로 활동하면 12명이 수익을 나눠야 하지만 홀로 활동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그가 소장을 통해 “수익분배금 지급시 SM은 일방적으로 작성한 계산표만 제시하고 어떤 구체적인 설명이나 정산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고강도의 업무나 왕성한 활동에 비해 항상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 주장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같은 이유로 국내 가수가 문제를 제기한다면 소송 기간 내내 활동이 어려울 것이”이라며 “하지만 외국인 멤버들은 이런 시선과 우려로부터 자유롭다. 각 아이돌 그룹에 외국인 멤버가 늘어나는 추세로 보아 한경과 크리스 등과 유사한 사건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크리스 사태를 보면 한경 사태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한경이 2009년 돌연 중국으로 출국한 뒤 소송을 시작한 것처럼 크리스 역시 지난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컴백쇼’에 출연한 후 귀국하지 않고 소속사와 연락을 끊었다. 이후 한국 매체와 접촉을 끊고 중국 매체를 통해서만 각종 주장을 흘리는 모양새도 비슷하다. ‘자기 편’을 통해서만 이야기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매체 <시나위러>는 “예전 한경이 계약 해지 소송을 제기했을 때처럼 소속사가 개인 발전을 제약하고, 성격이 서로 맞지 않았다”며 직접적으로 두 사태를 연결시켰다. 게다가 크리스의 국내 변호는 한경의 소송을 책임졌던 법무법인 한결이 맡았다.
외국인 멤버의 경우 한국 내 활동에는 제약이 있다. 단순히 국적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언어 소통이 자국어보다 불편할 수밖에 없고 결국 활동폭은 좁아진다. 국내파 멤버들이 각종 토크쇼 MC, 라디오 DJ 등을 꿰차는 것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자국 활동으로 눈을 돌리는 일이 발생한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활동하기로 결심한 만큼 어느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 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라면서도 “한경에 이어 크리스까지 ‘먹튀’하게 되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소속사가 피해입지 않도록 보다 확실한 안전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