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총기난사 희생자들의 분향소가설치된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군장병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군은 사고 발생 직후 이례적으로 숨진 장병 유가족들의 현장 방문을 허용하고, 생존 병사들이 언론과 유가족 앞에서 사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전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등 사태 진화를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군 당국이 발표한 최종 수사 결과 일부가 생존 부대원의 증언과 엇갈리고, 군 당국이 정확한 범행 동기는 물론, 상식선으로 납득하기 힘든 사고 정황에 관한 설명을 요청하는 언론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논란은 가중되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GP 근무 경험 장교들을 통해 이번 사건의 남겨진 의문점을 짚어봤다.
수류탄 투척 2~3분 뒤 난사?
군은 김 일병이 수류탄을 먼저 내무반에 투척한 뒤 소총을 난사했다고 발표했다. “폭발 소리가 들린 뒤 소총 소리가 났다”는 생존 부대원들의 진술에 근거한 결론이다. 반면 그간 유가족들은 “김 일병이 복도에서 먼저 총을 쏜 뒤 내무반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했었다. 과연 어느 쪽에 신빙성이 있을까.
GP근무 경험이 있는 전직 장교들은 김 일병이 소총 사격보다는 수류탄을 먼저 던졌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들은 “적이 출현했을 시 ‘크레모아’를 터뜨리고 적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한 뒤 소총으로 응사하는 즉각 조치 훈련에 익숙한 김 일병이 무의식적으로 수류탄을 먼저 던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수류탄 투척과 총기 난사의 시간차에 대해서는 군 당국과 생존 부대원들의 말이 엇갈리고 있다. 실제 지난 6월23일 군 당국의 최종 수사 발표 브리핑 자리에서 군 조사반과 생존 부대원들이 수류탄과 총격 시차에 대해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군 당국은 김 일병의 현장 검증 결과를 토대로, 김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진 지 2~3분 후 다시 소총을 난사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일부 생존 부대원들은 “수류탄이 터지고 난 후 수초 만에 총소리가 울렸다”며 수류탄 투척과 소총 사격이 곧바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시 김 일병의 정확한 행적을 파악하는 게 진상을 밝히는 첫걸음이란 점에서 풀어야 할 숙제다.
나머지 병사 2명의 행방은?
GP근무 경험이 있는 전직 장교들의 공통된 의문은 사고 당시 병사들의 정확한 소재다. 군 당국이 최종 수사 발표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함구했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단지 사망 병사들이 발견된 위치와 사고 당시 내무반에 17명이 취침중이었다는 수사 내용만 공개했을 뿐이다.
특히 군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병장 및 고참급 상병들의 위치가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적잖게 나오고 있다. 사고가 난 인근 중대에서 GP장교로 근무했던 A씨 역시 “보도 어디를 봐도 병장급 병사들이 모두 사고 당시 내무반에 있었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다”며 “경험상으로 본다면 최고참급 병사들이 아마 축구 경기를 본 후 내무반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했다.
사고 당시 경계 및 상황병을 제외한 인원수와 내무반 취침 인원수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 하나의 근거다. 사고가 일어난 수색중대 1소대 장병 수는 모두 30명. 이 가운데 체력단련장에서 총격을 받은 소초장 김종명 중위와 김 중위의 후임 소초장인 이인성 중위, 그리고 관측장교와 부소대장을 제외하면 병사만 26명. 이 중 사고 당시 경계 근무 4명, 상황 2명 등 총 6명이 근무 상태였으므로 최대 20명의 병사가 내무반에 있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군 당국이 내무반에 17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으므로, 결과적으로 3명이 내무반 외 다른 곳에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중 취사장에서 총격을 받은 조정웅 상병을 제외하면 나머지 두 명의 행방이 묘연한 셈이다. 이 두 명의 ‘동선’은 간부들의 사고 당시 행적과도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음주 가능성은?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군 수사본부나 생존 병사들도 이구동성으로 “음주는 없었다”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외부 물자 반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GP인 만큼 술이 반입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고 있다.
그러나 군 일부에서는 일부 장병들의 음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체력 단련장에서 간부와 일부 고참급 병사들이 술을 겸한 2차 회식을 갖지 않았느냐는 구체적인 의혹까지 돌고 있다. 경계 초소 지역 순찰을 해야 하는 부소대장이 사고 당시 취침 상태였다는 사실도 음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역시 GP근무 경력이 있는 전직 장교 B씨는 “전임 소초장이 제대하거나 타 부대로 전출을 가기 직전에는 특히 고참급 병사와 간부 간의 회식 자리가 자주 있었다”며 “더군다나 청소년 축구 경기까지 있었으니 술을 마셨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B씨는 “GP에는 술 반입이 원천적으로 금지된다”는 군 당국의 해명에 대해서는 “매일 부식이 GP 안으로 들어오는 요즘은 술 반입이 오히려 쉽다”며 “대개 GP소초장은 부식 차량을 검사하는 GP철책 통문 장교들과 잘 아는 사이기 때문에 술 반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투척·사격 자유자재로?
이번 사고를 접한 네티즌들이 던진 원초적인 질문은 “GP투입 경력으로 따지면 초보나 다름없는 김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한 뒤 체력 단련장, 취사장에서 소초장과 선임병을 사살하고 다시 내무반에서 돌아와 동료들을 향해 소총을 연발로 난사한다는 게 실제로 가능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특히 김 일병이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유유히 들고서 내무반으로 향했다는 군 수사 발표 내용에 대해서는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전직 GP소대장 출신 장교 C씨는 “이곳에 투입되는 병사들은 모두가 ‘GOP투입전교육’을 받는다. 정해진 교장에서 즉각 조치 사격 등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연발 및 자동으로 사격을 하거나 수류탄을 조작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범행 동기 없나
이번 참극에서 무엇보다도 명확히 규명돼야 할 부분은 바로 김 일병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르게 된 구체적인 동기다. 군 수사당국은 내성적인 성격의 김 일병이 부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상급자들의 심한 질책 등이 이어지자 불만을 품고 범행을 하게 된 것으로 밝혔다.
그러나 단순히 몇 차례의 심한 질책이나 부대 생활에 대한 회의 때문에 김 일병이 ‘계획적으로’ 소대원을 몰살하려 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 고교시절 김 일병은 평범하지만 착실한 학생이었고, 가정도 화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대학에 입학한 뒤엔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데 그의 입대가 학교 중퇴 이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또 다른 근원적 동기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