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로 불리던 이정현 전 대통령 비서실 홍보수석이 호남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금의환향하자 그의 쓰임새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당선 축하인사를 받고 있는 이정현 의원. 연합뉴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그를 두고 지명직 최고위원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다. 김무성 대표가 최고위원 두 명을 지명할 수 있는데 그를 호남 몫으로 두면 어떠냐는 얘기다. 대탕평 인사를 말했던 김 대표가 약속을 지키는 것이 되고, 그의 대권행에서도 호남 민심을 얻을 수 있다. 친박계에서도 이 의원이 지도부에 입성하면 서청원 최고위원과 듀엣으로 김 대표를 견제할 수 있어 환영할 카드가 된다. 김 대표로서도 친박에 ‘어디 해볼 테면 해봐’란 식으로 당당하게 맞섬으로써 통 큰 인물 이미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 당내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이제 서청원 최고위원은 친박들이 옛정으로 봐주는 사람이지 실상은 뒷방 늙은이다. 지도부에 친박의 누군가가 절실한 것이다. 김무성 대표도 선수이기 때문에 이번 재보선 민심을 거스르진 않을 것이고…. 엇박자로 가지 않겠다면 이정현 의원을 최고위원이나 사무총장으로 발탁해 청와대와 소통, 교감, 대화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대통령은 누군가를 될 수 있게 할 수는 없어도 되지 못하게는 할 수 있는 자리여서 각을 세우는 것보다는 안기는 게 낫다. 또 박 대통령은 현재권력이고 김 대표는 미래권력이다. 이 의원도 언제까지 박 대통령에 계속 올인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김 대표가 ‘이정현 사무총장’을 두고 사무1부총장에 측근을 기용하면서 포장도 잘하고 실속도 차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 의원도 당내에서 ‘청와대 파출소장’ 역할을 하면 당·청 관계가 매끄러울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쓰임이 커지는 것이다.
정치권과 청와대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좀 다르다. 박 대통령이 그를 곧바로 내각에 기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돈다. 신설 가능한 특임(정무) 장관 카드로 말이다. 청와대 쪽에 밝은 정치권 인사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이정현 의원의 강점은 도덕성 구설이 한 번도 없었다는 데 있다. 게다가 현역 의원은 인사청문회 무사통과다. 청문회 트라우마를 비켜갈 수 있는 카드가 이정현인데, 거기에다가 박 대통령이 호남 사람을 장관에 앉히면 호남권 민심이 얼마나 좋은 방향으로 소란스러워지겠는가. 국민대통합 퍼즐 맞추기에 적합한, 가장 충성도 높은 호남맨이 이정현이다. 이 의원도 호남 인재 지킴이, 호남 예산 지킴이 공약으로 선거를 치렀는데 장관이 되면 돈을 그냥 막 갖다 줄 수도 있다.”
특임 장관 카드는 이 의원이 여러 언론에 당선 소감을 말하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표현에서 유추되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야당과의 소통 창구 역할을 잘 수행하겠다. 야당과의 소통이 참 필요하다”는 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특임 장관은 소리 소문 없이 일을 하는 자리여서 일을 잘해도 못 해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의원이 가장 잘하는 것이 귓속말 아니냐. 새벽에 일어나 모든 신문과 방송을 살핀 뒤 깨알같이 메모해 박 대통령에게 ‘오늘의 이슈는 이것입니다’라고 귓속말을 해온 사람이 그다. 특임 장관은 큰일을 하려면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여서 박 대통령으로서도 꼭 필요한 분야다. 야당과의 관계만 개선되면 잃어버린 1년 반도 되찾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 의원은 지금 당내 누구보다 대중성을 확보한 상태다. 1995년부터 20년 가까이 씨를 뿌린 노력이 며칠 전 결실을 맺었다. 그의 말대로 “서부권은 이낙연 전남지사, 박지원 국회의원이 있다면 동부권은 저 이정현이 확실하게 챙기겠습니다”를 현실화한다면 새누리당 인기를 한껏 올릴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친박계에선 이 의원을 중심으로 똘똘 뭉칠 가능성이 커졌다. 윤상현 전 사무총장,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조원진 의원 등이 같은 재선급이지만 이 의원이 가장 나이가 많다. 이 의원이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자주 교감한 이들이어서 그의 국회 입성은 천군만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청와대에서 정무 기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아예 당내에 들어와서 캠프를 차린 것과 같다”고 이 의원을 빗댔다. ‘이정현 그룹’이 생길 가능성도 내다보는 이들이 많다.
다만 이 의원은 말을 하다가 스스로 흥분하는 스타일이어서 구설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실컷 점수를 쌓아놓고도 몇 마디 말 때문에 한꺼번에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여러 곳에서 제기한다. 지나치게 충성심 강한 ‘박근혜맨’이어서 박 대통령의 운명과 그의 운명이 같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박근혜를 빼면 그에게 남는 이미지는 뭐냐는 것이다.
어찌 됐든 여권으로서는 요즘 ‘모든 길은 이정현으로 통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이 깊어질 때 새누리당의 호남 공략 미션은 이 의원에게 주어질 것이고, 김무성 대표의 당 장악 가속화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이도 그다. 정부에 최경환, 당내 이정현 친박 투톱 체제를 김 대표가 어떻게 요리할지도 주목되고 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