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근태 전 원내대표 일행의 일본 가정집 방문 기념사진. 뒷줄 왼쪽부터 이인영 유인태 김근태 이목희 당선자. | ||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원내대표와 함께 12일부터 4박5일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유인태 당선자는 방일 일정 중 일행들과의 술자리에서 ‘농반진반’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원래 해외 외교라는 게 여행도 좀 하고 쉬고 그러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유 당선자의 생각이지만 이미 잡혀있던 일정만으로도 김 전 대표일행에게 그럴 만한 ‘여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일 일정에 동행했던 대표실 관계자는 “이번 일본 방문은 완전히 강행군이었다. 우리끼리는 ‘도쿄대전’을 치르고 왔다고 위로를 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번 방일에는 김근태 대표 외에도 이목희, 이인영, 유인태 당선자와 17대 총선 비례대표 36번을 받았던 고현호씨, 원내대표실 관계자 2명이 함께했다. 중앙당 관계자나 기자단은 없었다.
4박5일의 기간 중 김 전 대표 일행이 소화한 일정은 공식적인 행사 10여 건, 비공식 인터뷰를 포함해서 ‘급조’된 일정까지 합하면 30여 건이 넘었다. 일정의 대부분은 일본 정부, 언론, 재계측 관계자들과의 토론으로 채워졌다. 김 대표 일행이 만난 일본측 실력자에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 모리 전 총리,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하토야마 민주당 전 대표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만남은 애초 20분으로 잡혀 있었으나 예정보다 10여분이 더 늘었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이 자리에서는 주로 한일 교과서 문제와 한일간 FTA 체결 문제가 거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 중 한 사람은 “김 전 대표가 아주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총리에 대한 예우는 분명히 갖추고 있었지만 아주 직설적이고 강력하게 우리측의 입장을 밝혔다. 나도 놀랄 정도였다”고 전했다.
일본 민주당 관계자들과의 만남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는 후문. 민주당측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면담 자리에서 하토야마 전 민주당 대표는 “우리가 수십년 동안 못했던 정치개혁을 한국은 해냈다. 너무 부럽다. 그 경험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실 관계자는 “일본을 방문해 보니 일본 정부측 관계자들은 한·일 FTA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며 “그러나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한·일간 FTA에 대해 김 대표는 분명한 반대입장을 보였고 대신 한·중·일 3각 FTA는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우리측의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김 대표 일행은 방일 3일째였던 14일 오전 12시께 숙소였던 동경 뉴오타니 호텔에서 ‘우연히’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마침 일본을 방문중이던 김 전 대통령 일행 중 한 사람이 김 전 대표에게 김 전 대통령의 방일을 알려줬고 김 전 대표가 숙소로 찾아가는 방식으로 만남이 이뤄졌다고 함께한 관계자는 전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1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와세다 대학 강연을 위해 일본을 방문해 김 전 대표가 묵고 있던 호텔에 투숙중이었다.
김 전 대표와 김 전 대통령이 10여분간의 만남에서 나눈 구체적인 얘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건강을 묻고 방일에 대한 간단한 인사가 오고 갔을 것이다. 정치적인 얘기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김 전 대표는 이 외에도 방일 중 도쿄 외곽의 일본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을 방문,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한·일 관계에 대해서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김 전 대표 자신도 검소한 생활을 하는 정치인인데 일본 가정의 검소함에 무척 놀라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김 전 대표는 이번 방문을 통해 확실히 변화된 한국의 정치지형을 일본인들에게 설명하고 새로운 한·일간 관계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본측은 “한국의 정치지형 변화에 많은 우려와 관심을 함께 보여줬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
원내대표실 전 관계자에 따르면 방일 전 “It is impossible to speak Japanese”라는 말로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을 긴장시켰던 김 전 대표에 대해 일본의 정치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우리나라의 모 일간지에 잘못 보도된 김 전 대표의 말에 대해 해명하느라 매번 회의가 5~10분씩 길어졌었다”고 전했다.
“이제 한국에는 일본 정치인들과 밀실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모두 퇴장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전면에 등장한 만큼 일본측도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말한 김 전 대표의 말이 ‘우리는 이제 일본말로 외교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전달됨으로써 빚어진 문제였다. 이걸 해명하고 올바로 전달하느라 진땀을 뺐다.”
김 전 대표는 방일 중 일본 정부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한·일간 정치협력의 매개체가 되어 온 한일 의원연맹을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설명하면서 남북과 일본, 중국이 함께하는 국회 차원의 ‘4자 테이블’을 구성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시아 정치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기존의 한·일간의 의원교류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해결하는 것이 이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김 전 대표의 생각”이라고 관계자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