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오른쪽)과 중국의 멍타이링 6단이 대국하고 있다.
‘더블 일리미네이션’이란, 한 조에 A-B-C-D 네 선수가 있다고 했을 때, ① A-B와 C-D가 두든, A-C와 B-D가 두든 아무튼 1승자와 1패자가 나온다. → ② 승자는 승자와, 패자는 패자와 대국한다. 그러면 2승 1명, 1승1패 2명, 2패 1명이 나온다. 2승자는 16강에 올라가고 2패자는 탈락한다. → ③ 1승1패 두 사람이 다시 대국해 이기는 사람이 16강에 올라간다. 이래서 사흘이 걸린 것. 16강 진출자는 다음과 같다.
한국 : 7명. 박정환 김지석 이세돌 조한승 강동윤 9단, 김승재 6단(22), 강승민 3단(20). 성적이 계속 좋아지고 있다. 지난 6월 제19회 LG배 8강에 4명, 7월 제2회 백령배 8강에 5명이 올라가고, 주변에서 즉각 ‘국가대표-상비군’ 가동이 과연 효과가 있다고 반색했을 때만 해도 “중국에 계속 밀리다보니 그 정도로도 반가워 그런 거지, 아무려면 한두 달 사이에 그렇게 빨리 효과가 있겠느냐”면서 웃기도 했는데, 그게 연달아 세 번째니 이제는 정말 ‘국가대표-상비군’ 말고는 이유를 달리 찾을 데가 없다. 그때 국가대표-상비군 전력분석관 김성룡 9단이 말했던 것처럼 “태극마크의 힘이 그만큼 큰 것”인지.
랭킹 1~3위인 박정환 김지석 이세돌에 요즘 심기일전하고 있는 조한승 강동윤 김승재가 뒤를 받치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박정환과 김지석은 깊은 수읽기와 정확한 타격, 냉정한 형세판단으로 아름다운 바둑을 보여주었고, 관전자들은 그들의 내공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느꼈다.
와일드카드로 나온 이창호 9단은, 지금은 실세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전야제 자리에서 중국 기자들은 이창호 9단에게 질문을 집중했다. 중국에서는, 이창호 9단은 성적과 승부를 떠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이 9단은 1라운드에서 만난 중국의 강완 멍타이링(孟泰齡·27) 6단을 그물 같은 수읽기와 기동력이 눈부신 선제공격과 신축자재의 용병술로 완벽하게 제압했다. 관전자들은 이구동성 “명국이다. 전성 시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고 감탄을 거듭했다. 그렇다. 명국이었다.
그나저나 한국 선수단을 가장 놀라게 만든 사람은 강승민이었다. 첫 판을 잃긴 했지만, 패자부활전에서 세계 타이틀 홀더 퉈자시 9단(23)을 이렇게 시원하게 밀어붙일 줄이야. 국내에서는 또래들 사이에서 아직 쑥 튀어나오지는 못하고 있으나 “독창적인 바둑을 둔다”면서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중국 : 8명. 스웨(23) 저우루이양(23) 탕웨이싱(21) 루이나이웨이(51) 9단, 옌환(23) 랴오싱원(20) 5단, 롄샤오(20) 룽이(20) 4단. 루이는 여전히 대단하고, 옌환 이하 나이도 단도 비슷비슷한, 아주 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이가 많다고도 할 수 없는 젊은이들은 또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층이 두텁다는 얘기. 겁나는 게 이거다.
일본 : 3명이 출전했는데, 간판스타의 한 사람인 다카오 신지 9단(38)과 중견 고토 슌고 9단(48)은 탈락하고 막내 무라카와 다이스케 7단(24)이 외롭게나마 명맥을 이었다. 무라카와 7단이 요즘 국제무대에서는 자주 일본 대표 노릇을 하고 있다. 고토 9단은 젊어서 잠깐 힘을 낸 것 말고는 한동안 잘 안 보이다가 최근 갑자기 성적을 내고 있다는 소식이며, 낯이 익지는 않지만 사실은 예전에 한국에도 자주 왔던 친한파에 지한파로 알려져 있다.
이창호 9단은 1라운드를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2라운드에서 스웨, 3라운드에서는 박정환에게 져 16강에는 올라가지 못했다. 박정환 김지석 9단의 바둑도 멋졌다. 지난번에 김성룡 9단의 말을 전한 바 있거니와 “중국의 두꺼운 허리는 위협적이지만, 박정환 김지석 두 사람은 중국 정상급보다 최소 반걸음은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세돌까지 포함하면 세 사람. 이창호 9단이 혹시 원기를 조금 회복해 준다면 네 사람.
16강전은 10월 14~16일, 유성에 있는 삼성화재연수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대진표는 ‘박정환-옌환 김지석-루이나이웨이 이세돌-랴오싱원 조한승-저우루이양 강동윤-롄샤오 김승재-스웨 강승민-룽이 무라카와-탕웨이싱’이다.
이광구 객원기자
잡혀있던 흑돌의 반란 <1도>는 이창호 9단-멍타이링 6단의 바둑. 이 9단이 흑. 방금 말했던 것처럼 이 9단의 수읽기와 기동력과 공격에 검토실과 관전석은 감탄의 연속이었는데, 그 중 한 대목이다. 흑1로 치중해 백 대마의 생사를 묻는 이 9단. 백2, 4로 삶을 꾀하는 걸 보고는 잠깐 손길을 돌린다. <2도> 흑1로 민 것은 알겠는데, 3은 묘하고, 5, 7의 이단젖힘은 강렬하다. 그러자 <3도>와 같은 놀라운 상황이 나타났다. 잡혀 있던 흑돌이 거꾸로 백돌을 잡은 것. 그리고 흑A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 멍타이링 6단은 백1, 3으로 우변 대마를 살리고 이 9단은 흑2로 우하귀를 접수했다. 그리고 또 곧장 흑4로 여기를 움직인다. 이후 이 9단은 하변에서 좌하귀로 전투를 유도하면서 <1도>~<3도>와 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더 보여주었다. <2도> 백2-4 다음 <4도>처럼 흑1로 끊고 계속 잡으러 가면? 백2로 내려서고 4로 연결하며 대마는 완생한다. 흑3으로 먼저 백4의 자리를 찌르면? <5도> 백2로 넘어가도 흑3, 5에서 7로 먹여치고 A에 끊으면 백 전멸 아닌가? 아니다. 백은 2로 넘지 않고 <6도> 1로 잇는다. 흑2로 내려서면 백3으로 지켜 4와 5 를 맞본다. 이건 흑이 걸렸다. 흑이 백5 자리를 먼저 밀어 백B와 교환했다 해도 대동소이. 백3으로 4에 이으면 흑A로 끊겨 백이 수부족. <7도>처럼 흑1, 3으로 젖혀 잇고 5에 끊는 것은 백6으로 넘어가 역시 흑이 안 된다. 흑A로 끊어봤자 이번에는 흑이 수부족이다. <2도> 흑5, 7 때 <8도>처럼 백1로 끊으면? 흑2, 4로 돌려치는 패와 상변 흑6 같은 절대 팻감이 기다리고 있다. 백이 견디기 어려운 진행이다. 그냥 <9도> 백1로 잡으면? 그때는 흑2로 끊는다. 백3으로 내려서면 이제는 흑4로 먼저 찌르고 백5를 기다려 6, 8로 젖혀잇는다. 백9로 이으면 지금은 또 흑10으로 끊어 버린다. 백11로 끊어도 흑12로 이어 그만이다. 백은 자충이니까. 이게 바로 흑▲의 역할인 것. [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