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새해인사차 연희동을 방문했다. 이때 전두환 씨는 “나이는 어쩔 도리가 없다”며 전에 없이 자신의 건강과 관련한 얘기를 했다고 한다. 국회사진기자단 | ||
바깥의 소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희동 대문은 굳게 잠긴 채 내부는 정적에 휩싸였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밝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전 씨는 당시 연희동 사저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20일 현재에도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고, 측근들도 미처 모르고 있거나 정확한 확인을 거부했다.
전 씨가 미국에 머문 지는 벌써 열흘이 다 되어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 달 정도 머물 예정이라는 말도 들려온다. 하지만 정작 미국 현지에서도 전 씨의 방문에 대해 명확히 아는 한인들은 드물다. 전 씨는 희수 생일잔치까지 생략한 채 왜 비밀리에 미국을 방문했으며, 현재까지 침묵 속의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전두환 씨의 미국 방문 소식을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미국 LA 현지 교포사회 매체인 ‘라디오코리아’였다. 라디오코리아는 미국 현지 시간으로 지난 16일 ‘전 씨가 부인 이순자 여사를 비롯, 사돈인 대한제분 이희상 회장 부부와 함께 지난 11일 LA를 방문했는데 전직 대통령의 방문 행사임에도 전혀 외부 행사나 동정 없이 의혹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신병 치료설과 비자금 은닉설 등 각종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 씨의 동정이 국내 언론에 마지막으로 소개된 것은 지난 5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연희동 방문 때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자리에서 전 씨는 전에 없이 건강 문제와 관련한 의미심장한 말을 많이 했다. 그는 이 전 시장에게 “주변 사람들이 한둘씩, 골프 치는 사람들도 이제 없어진다. 자꾸 세상 떠나고, 몸이 아프고…. 내가 이달 18일이 생일인데 희수다. 이제 늙는다. 음식도 많이 안 먹히고 술도 안 먹힌다. 나이는 어쩔 도리가 없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런 말을 하는 전 씨의 표정은 전에 없이 어둡고 쓸쓸해 보였다는 전언이다. 이 전 시장이 “요즘 장례식장 가면 90대가 많다. 아직 한창이시다”라고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썼다고 한다.
평소 건강에 강한 자신감을 피력하던 모습과 완연히 딴판이었다. 그로부터 6일 후 전 씨 일행은 조용히 미국을 향한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LA 현지에서 전 씨의 방미 소식을 처음 접한 라디오코리아의 주형석 기자는 18일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곳 현지에서도 처음엔 전 씨의 방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뒤늦게 한인사회 주변에서 ‘전 씨가 여기에 왔다더라’라는 소문이 나돌아 LA총영사관에 확인한 결과 지난 11일에 방문했다는 확인만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방문이기 때문에 공식 행사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개인적인 방문이라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고, 또한 전 씨의 개인 성향으로 볼 때 이번 방문은 너무 조용하다. 극히 이례적일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LA 현지에는 전 씨의 모교인 대구공고 LA동문회 등 지인과 친인척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대구공고 LA동문회의 한 관계자는 “전 씨 방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곳에 오면 우리에게 당연히 연락했을 텐데 이상하다. 본국에 있는 총동문회에 한번 알아봐야겠다”고 반문할 정도였다.
기자는 전 씨의 최측근인 민정기 전 비서관에게 ‘전 씨의 방미 사실을 알고 있느냐. 방미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했으나 그는 “이제 나는 공식적인 비서관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확인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즉답을 피했다. 그는 “18일 생일날에도 연희동을 방문하지 않았다”고만 밝혔다.
과거 5공의 일부 측근 인사들도 전 씨의 방미 사실을 아예 모르거나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기자는 LA 현지 한인사회 관계자들과 전화 접촉을 가졌다. 역시 대부분 방미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주변으로부터 전해들은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이 가운데 현지 언론사와 일부 한인사회 관계자를 통해 몇 가지 현지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전 씨는 한 달 정도 미국에 머무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는 현재 LA 인근인 샌디에이고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샌디에이고에는 전 씨의 막내 재만 씨 부부가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초에는 재만 씨의 장인인 대한제분 이 회장 부부가 전 씨 부부와 동행한 것으로 봐서 단순히 막내아들을 만나기 위한 가족 방문 성격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나왔으나, 체류 기간이 한 달 정도인 것으로 봐서 단순한 가족 방문 성격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다소 먼 동부 애틀랜타에 있는 차남 재용 씨 부부도 최근 샌디에이고에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때문에 교포사회 일각에서는 전 씨나 혹은 그 가족의 신병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교민사회의 한 관계자는 “이곳 샌디에이고에는 국립병원으로 유명한 해군병원과 암치료센터가 있고 비교적 보안이 잘 유지되고 있어 외국의 VIP들도 가끔 방문한다”면서 “안무혁 씨가 전 씨의 방미 직전에 이곳을 사전 답사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고국 뉴스를 보니까 전 씨가 새해 들어 부쩍 건강 문제를 언급했다던데 그 때문에 여기서는 전 씨의 와병설도 돌고 있다”고 전했다.
안 씨는 5공 정권에서 안기부장을 지낸 전 씨의 핵심 측근이다. 기자는 안 씨와의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발전연구원에 문의한 결과 현재 안 씨는 부재중이라고 했다. 한 관계자는 “해외 출국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고 다만 현재 자리에 안 계시기 때문에 당분간 통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일해공원 명칭변경 찬반 논란’과 ‘사면설’에 대한 논란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정작 당사자인 전 씨는 미국에서 의문의 행보를 보이고 있어 당분간 그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할 것 같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