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립암연구센터에 따르면 내년부터 일본 각 의료기관에 도입될 새로운 암 검사법은 안전성과 정확도가 매우 높다. 사진은 채혈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연합뉴스
지난 8월, 일본 국립암연구센터가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집는 암 진단법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했다. 한 번의 채혈로 13종류의 암을 조기 진단하는 검사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국립암연구센터를 필두로 일본의 첨단소재 기업, 대학 등이 협력해 기술개발에 착수했으며, 약 768억 원의 국비가 투입된 ‘대형 국가 프로젝트’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일본의 암 검진도 크게 바뀔 예정이다. 현재 후생노동성이 권장하고 있는 암 검진은 위암과 폐암이 X선 검사, 대장암은 변잠혈 검사, 유방암은 맘모그래피 등이다. 하지만 이들 검사는 각각 따로 암 검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더욱이 알려지지 않은 폐단도 많다고 한다.
의학박사인 오카다 마사히코는 이런 지적을 했다. “CT 촬영이나 X선 같은 검사는 방사선 피폭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한 연구에서는 흉부 X선 검사를 매년 받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고, 사망률 역시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미국에서는 맘모그래피의 검사 정확도가 낮아 10년간 2명 중 1명꼴로 암이 아닌 사람을 유방암이라고 오진했다는 보고도 나와 있다.”
암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 실시한 검사가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이로 인해 오진을 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하지만, 새로운 검사법은 이와 달리 안전성과 정확도가 매우 높다. 한 번의 채혈로 암을 진단하기 때문에 신체적 부담은 물론 피폭 걱정도 없다. 종래의 암 검진에서는 상상도 못할 간편한 방법으로 암의 조기발견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진단 대상 암은 일본인이 많이 걸리는 위암, 식도암, 유방암, 폐암, 대장암, 간암, 담도암, 췌장암, 전립선암, 난소암, 방광암, 육종, 뇌종양 13종이다. 2018년까지 건강검진에서 실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 중 유방암은 연구가 진전돼 내년부터 각 의료기관에서 새 검사법을 도입할 계획이다.
새 검사법은 혈액 채취에서 결과까지 1시간이 소요되며, 검사 비용은 2만 엔(약 19만 원)을 예상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 암센터에서 시행되는 일반적인 암 검진은 2일이 소요되고, 비용은 11만 9200엔이다. 채혈만 하므로 비용이 무려 6분의 1정도로 저렴해지는 것이다.
또한 검사의 정확성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연구개발의 책임을 맡은 국립암연구센터의 오치야 다카히로 박사는 “유방암의 경우 90% 조기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향후 연구가 진행되면 정확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MBC 관련 보도 화면 캡처.
이에 반해, 일본에서 개발 중인 암 진단법은 혈액 속에 포함돼 있는 ‘마이크로RNA’라는 물질을 분석하는 검사 기술이다. 암이 생길 경우 특정 마이크로RNA의 수치가 상승하거나 감소한다는 데서 착안했다. 특히 마이크로RNA는 암세포가 아주 작은 상태에서도 분비되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도 암을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전조증상이 없어 ‘침묵의 장기’라 불리는 췌장. 진행속도가 빨라 췌장암은 최악의 암으로 꼽힌다. 더욱이 증세가 나타나면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경우가 다반사다. 가장 희망적인 것은 조기발견을 통한 수술치료이나 잘 알려진 대로 췌장암은 조기발견이 어려운 대표적 질병이다.
여기에 마이크로RNA 검사법을 활용하면, 조기발견이 힘든 암들을 손쉽게 확인하고 국민 건강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이익을 보는 사람도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치료할 필요가 없는 암까지 발견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오카다 의학박사는 “암 중에는 언제까지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암, 천천히 수십 년에 걸쳐 성장하는 암, 치료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암 등 다양한 성질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이런 암까지 ‘양성 반응’이 나타나면 결국 쓸데없는 치료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암진단을 받는 환자수가 급증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지금껏 확인할 수 없는 수준의 암도 발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새 검사법은 암세포가 몇 개 수준의 조기발견도 가능하다. 만약 이 단계에서 발견할 경우 최첨단 화상 진단기술을 이용해도 ‘어디에 암이 있는지 모르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물론 치료를 할 수도 없을 것. 환자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관련해, 일본 국립암센터 관계자는 “기존의 암 검진에서 ‘정상’이었던 사람도 새 검진에서는 ‘암환자’가 될 수 있다. 분명 의료가 진보해 생기는 폐해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큰 이점이 있는 획기적인 검사임에는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마이크로RNA은 혈액뿐만 아니라 타액이나 소변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자택에서도 검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암의 조기발견에 머물지 않고, 최종적으로는 암 예방으로 연결시키는 게 목표다. 암세포 특유의 마이크로RNA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연구하면 암 예방약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