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엔지니어링. 연합뉴스
지난 1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발표 이후 증권가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다. 단기적으로 시너지가 별로 없다는 내용부터, 재무구조가 더 악화됐다는 지적, 그리고 삼성중공업 주주에 상대적으로 피해라는 해석까지 비판적인 의견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합병의 수수께끼는 후계구도로 풀어내면 쉽게 풀린다.
가장 먼저 왜 삼성엔지니어링은 순자산가치가 9596억 원에 불과한데 이 회사 주주들에게는 2조 5451억 원의 가치에 해당하는 합병법인의 신주를 발행하느냐다. 심지어 삼성중공업은 이번 합병으로 부채비율이 225.6%에서 270%까지 치솟게 된다. 결국 돈 쓰고 빚만 떠안는 셈이다.
삼성중공업의 삼성그룹 지분율은 24.31%, 삼성엔지니어링의 삼성그룹 지분율은 22%다. 삼성엔지니어링의 기업가치가 낮게 평가되면 합병법인의 삼성 지분율이 낮아진다. 아울러 큰손인 국민연금은 삼성중공업 지분 5.9%,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6.1%를 가졌다. 삼성그룹과 마찬가지로 국민연금의 입장에서도 삼성엔지니어링 기업가치가 깐깐하게 평가되면 합병법인 지분율이 떨어질 수 있다. 만약 국민연금이 합병조건에 반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상황이 곤란해진다. 결국 삼성 내부 지분율과 국민연금의 지분율을 유지하기 위해 삼성엔지니어링을 후하게 평가한 셈이다.
다음으로는 왜 삼성엔지니어링의 짝이 시장에서 예상했던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아닌 삼성중공업이냐는 점이다. 삼성중공업은 삼성전자(17.61%)를 비롯해 삼성 내부 지분율이 24.31%에 달한다. 반면 삼성물산의 삼성 내부지분은 13.92%에 불과하다.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해봐야 내부지분율은 20%를 넘기 어렵다. 그렇다고 내부 지분율을 끌어올리기도 어렵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들고 있다. 따라서 그룹 내에서 가장 자금력이 강력한 삼성전자를 동원해 지배력을 높일 수가 없다. 상호출자 제한 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삼성물산의 건설부문만 따로 떼어내 삼성엔지니어링과 합치기도 어렵다. 삼성물산에서 건설부문을 떼어내면 총자산에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지분가치가 절반을 넘는다. 이 경우 자칫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될 수 있다.
반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을 합치면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한 삼성 내부 지분율이 30%(자사주 포함)에 달한다. 금산분리를 위해 삼성전자가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의 합병법인 지분을 매입하는 데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삼성전자를 정점으로 아래에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중공업 합병법인이 나란히 배열되는 셈이다. 삼성 측은 당분간 지주사 전환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지만, 이들 계열사에 대한 삼성전자의 지배력이 높아 유사시 언제든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이뤄질 수도 있다.
건설부문은 어떻게 될까.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조합은 조선과 플랜트가 결합한 현대중공업 모델이다. 반면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조합은 건설과 플랜트가 결합한 현대건설이나 GS건설의 조합이다. 조선과 플랜트, 건설을 모두 하나의 법인으로 합친 모델은 아직 국내 대기업에는 없다. 삼성중공업 건설부문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결국 삼성물산은 대우건설처럼 건설에 특화된 사업모델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삼성의 다음 행보는 계열사들이 보유한 지분의 재편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우선 금산분리다. 삼성생명이 가진 제조업 계열사 지분을 삼성전자에 넘기고, 삼성전자가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을 삼성생명에 넘기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다음은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이다. 최근 주가하락에도 불구하고 각각 13조 원, 7조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다행히 삼성생명은 이건희 회장과 제일모직 등 내부지분율이 높다. 삼성전자 지배부문을 인적분할로 떼어내 제일모직과 합병하더라도 지배력이 약화될 가능성은 적다. 덩치가 커진 제일모직을 삼성물산과 합병하면 삼성전자를 직접 지배할 수 있다.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은 이렇게 커진 제일모직이 세 남매로 분리될 때에야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