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주 기업은행장이 계열사 CEO 선임을 놓고 당국과 마찰을 빚은 이후 공교롭게도 정부당국의 사정칼날이 잇달아 날아들고 있다. 지난 6월 28일 권 은행장(왼쪽)이 IBK기업은행 수지동천지점을 방문해 포스트차세대시스템 테스트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제공=IBK기업은행
금융권 일각에서는 권선주 기업은행장과 기업은행을 둘러싼 문제들의 발단이 결국 인사를 둘러싼 당국과의 기싸움에서 출발했으며, 현재의 상황을 ‘권 행장 길들이기’ 차원인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인 만큼 일정 부분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권 행장은 취임 직후 시도한 계열사 사장 선임에서 ‘마이 웨이’를 외치다 당국과 마찰을 빚은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은행은 부행장급과 계열사 사장들을 한꺼번에 발령 낸 뒤 이들의 빈자리에 본부장급부터 행원까지 순차적으로 승진시키는 ‘원샷 인사’를 전통으로 지켜오고 있다. 권 행장 역시 부임 후 전통에 따라 부행장과 IBK연금보험, IBK자산운용 등의 사장 후보들을 골라 청와대에 보고하며 교체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어찌된 일인지 일부 후보에 대한 정부 측의 검증작업이 예상보다 길어진 것. 특히 자회사 사장 추천권을 가진 권선주 행장이 추천한 인물들에 대한 인선이 줄줄이 보류되면서 잡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권 행장은 결국 부행장과 일부 계열사를 빼고 인사를 단행하는 고육지책을 써야했다. 기업은행의 전통인 ‘원샷 인사’가 무산되고 ‘투샷 인사’를 내는 일이 벌어진 것.
그마나 ‘투샷’으로도 인사가 끝나지 않았다. IBK연금보험 사장의 경우 권 행장이 추천한 조희철 기업은행 IB담당 부행장이 선임됐고, IBK투자증권도 신성호 전 우리선물 대표이사가 선임됐다. 하지만 IBK자산운용 사장 임명을 둘러싸고는 ‘정권 외압설’이 나돌면서 내홍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측은 “자회사 인사 관련 당국과 마찰은 없다”며 “법에서 정한 절차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인사검증이 늦어지고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IBK자산운용 대표는 지금까지 예외 없이 모두 기업은행 내부 출신이 발탁됐다. 당연히(?) 권 행장은 외부 출신 인사를 선임하는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부행장들을 계열사로 이동시켜 자리를 비워야 후배들을 그 자리에 승진시키는 순차 인사가 가능한데, 계열사 CEO 자리가 외부 인사들로 채워지면 인사적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비이락일까. 공교롭게도 권 행장의 ‘뚝심’으로 인사문제가 불거진 뒤 기업은행에는 정부당국의 사정칼날이 잇달아 날아들고 있다. 우선 감사원은 기업은행이 제대로 된 검토조차 없이 허위 수출채권을 매입하는 바람에 12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과 중소기업에 불공정거래 관행인 ‘꺾기’를 강요한 정황을 적발해 발표했다.
일본 도쿄지점의 부당대출 의혹도 권 행장에겐 골칫거리다. 일본 금융청은 국민은행 도쿄지점 부당대출 사건이 불거진 뒤 지난 5월부터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도쿄지점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해왔는데, 현지 언론은 최근 이들 은행에 대한 불법대출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기업은행은 우리나라 금융감독원이 도쿄지점 부당대출 의혹 등에 대해 자체 점검 지시를 내리자 130억 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비슷한 사건을 일으킨 국민은행에 ‘기관경고’ 조치가 내려진 점 등에 미뤄볼 때 가볍게 볼 수만은 없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결정타는 국세청으로부터 날아들었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국세청은 최근 기업은행에 대해 3개월 일정을 잡고 세무조사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은행에 대한 세무조사는 지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금융권은 이번 세무조사가 정기조사인지 특별조사인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업은행 측은 “특별세무조사가 아니라 4년마다 실시하는 정기조사”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2012년에는 고용창출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세무조사를 면제받았던 점 등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런 와중에 최근에는 노조(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위원장 홍완엽)가 복지 문제를 놓고 경영진을 향해 불만을 표하고 있어 권 행장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국내 은행권에서 여성 최초로 ‘최고경영자’에 오른 권선주 행장이 잇따르는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