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였다. 그는 내게 와서 자기는 입이 굳어서 말을 잘 못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었다. 사실 그런 면이 있었다. 나는 계속 장영목을 관찰해 왔었다. 그는 음모적인 복잡한 인간형이 아니었다. 오히려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는 단세포적인 성품이었다. 말도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뱉어내는 성격이었다. 수사기관의 혐의를 품은 눈으로 그를 보면 더러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검사가 지금 증인 장영목을 수사 중이죠?”
내가 증인석에서 기도를 마친 장영목에게 물었다.
“예, 검사님은 제가 배후에서 살인을 교사한 사람과 뭔가 꾸미는 걸로 생각하고 제 집과 교회를 압수수색하고 은행 계좌도 추적하셨습니다. 또 저를 검사실로 불러 구속시킬 것 같이 저와 동생에게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장영목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유치장에서 동생 장영두가 ‘덮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죠?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설명해 주시죠.”
내가 그에게 유치장의 접견일지를 보여주면서 물었다. 접견일지는 담당 경찰관이 그와 장영두 사이의 대화를 적은 문서였다.
“동생 영두가 유치장에서 저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동생 집에 있는 외상 장부를 가지고 가서 배를 납품한 박 사장이라는 사람에게서 돈을 받으라고 시켰습니다. 동생 영두는 배를 그 박 사장에게 1만 2000상자나 팔았으니까 그 돈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동생이 감옥에 들어가 있으니까 박 사장이 동생 영두가 넘긴 배값을 주지 않는 겁니다. 그 돈을 받아야 변호사도 선임하고 옥바라지도 할 텐데 말이죠. 배값 받을 박 사장에 대해 검사님은 살인의 배후에 동생뿐 아니라 그 박 사장이란 인물이 들어있는 걸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살인을 교사한 사람이 박 사장에게 돈을 주고 박 사장이 동생한테 자금을 건네면 동생이 랭가를 시켜 하 영감님을 죽인다고 추리하신 거 같아요. 박 사장한테서 배값을 받으라는 동생의 말을 검사님은 형인 내가 중간연락책이 되어 살인을 청부한 죽은 영감님의 아들한테서 범죄의 대가로 돈을 받으라는 걸로 혐의를 두셨죠. 검사님은 박 사장과 저를 철저히 조사하셨죠.”
평소와는 다르게 그의 말은 조리가 있었다. 그가 입이 마른지 잠시 쉬었다가 얘기를 계속했다.
“제가 동생의 외상장부를 가지고 유치장에 갈 때 이 사건에 관련된 인터넷 기사를 프린트해서 장부 사이에 끼워서 함께 가지고 갔죠. 장부 사이에 낀 그 기사를 유치장 칸막이 유리에 펼쳐서 보여줬어요. 그랬더니 동생이 그걸 보고 고개를 돌리면서 덮으라고 한 겁니다. 보기 싫다는 거죠. 담당경찰관이 그런 내용은 생략하고 ‘덮어’라는 한마디만 접견일지에 쓰니까 검사님이 그걸 보고 의심한 겁니다.”
장영목은 앞에 있는 탁자에 놓인 증인선서서가 든 판을 들고 일어나 창문에 들이대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의 말은 진실 같았다. 정말 교활한 사람들이라면 경찰관이 입회해 있는데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해도 다른 신호나 암호로 의사를 전달하는 게 보통이었다.
“평소 동생의 성품은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내 동생 영두는 절대로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못하는 타입이죠.”
그가 자신 있는 어조로 대답했다.
잠시 후 법원 담 근처에 있는 나의 법률사무소에서 장영두의 부모와 형 장영목 그리고 마을 목사님이 함께 앉아 얘기를 나눴다. 장영목이 말했다.
“내 동생이지만 정말 병신 같은 새끼라는 욕이 나와요. 마음을 활짝 열고 한 번 살려달라든지 그런 얘기를 왜 못하는지 몰라요. 지난번에 가버린 여자한테도 똑같은 태도였죠. 동생 영두가 자기 깐에는 진심이었겠죠. 그런데 상대방 여자는 항상 동생 말이 농담 같고 흐리멍덩하니까 도대체 남자의 본심을 모르겠다면서 가버린 거예요.”
형인 장영목의 말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울분에 차 있었다. 정말 장영목의 말대로 특이한 인간형이었다. 교도소에 접견을 갈 때마다 나는 그의 모호한 태도가 이상했다. 검사는 그를 무기징역에 처해 달라고 항소했다. 그는 일생을 박탈당할 위험 앞에 있었다. 그래도 그는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항상 빙글빙글 웃는 태도였다.
“영두 성격에 대해 한 말씀 더 드릴까요?”
장영목이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그의 특이한 태도를 또 다른 방면에서도 감지하고 있었다. 살인범에게 변호사는 재판하는 기간 동안은 지옥에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거미줄 같은 끈이기도 했다. 그래서 범죄자들은 변호사를 하나님 모시 듯했다. 장영두는 변호사인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자긴 변호사 쓰지 않겠다고 투덜댔었다. 몇 번 만날 때도 그의 말투가 반말 비슷했다. 자기의 얘기도 남 말하듯 하는 농담 투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은 정색을 하고 그에게 따졌다. 근 15년이나 나이가 더 많은 변호사한테 왜 반말 비슷한 투로 농담하는 모습을 보이냐고 했다. 그는 깜짝 놀라면서 자기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자기의 모습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장영두에게 사귀던 여자가 면회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내가 이 꼴인데 와서 뭐하겠어요’라고 하면서 그는 풀이 죽어 있었다. 혼자 생각하는 표정이 되더니 이윽고 눈가에 물기가 스몄었다. 그의 형 장영목은 그 여자가 장영두에게서 진심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가버렸다고 얘기했었다. 장영두의 마음과 행동은 다른 것 같았다. 그가 후회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5년 가량을 그 여자와 사귀었어요. 제가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결혼하려고 마음먹었었는데 그때만 되면 이상하게 그 여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하고 또 다른 일이 생겼어요. 이제야 결혼하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런 사건이 터졌고요.”
사무실에 와 있는 장영두의 부모 역시 독특했다. 아들을 살려달라고 울부짖기보다는 안절부절못하면서 근처만 맴돌고 있었다. 장영목이 유일한 그 집의 입인 셈이었다.
“변호사님 정말 안타까운 게 있습니다.”
그가 뭔가 떠올린 표정으로 말했다.
“뭡니까?”
“일심 법원에서 선고가 나니까 랭가가 갑자기 손을 들면서 그동안 자기가 거짓말을 한 게 있다고 다시 말하겠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들은 재판장이 묵살해 버렸어요. 그 말만 다시 나오면 이 사건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재판에서 말할 기회는 정해져 있었다. 이미 떠난 버스였다. 랭가의 마음이 침묵하기로 바뀐 것 같았다. 장영두의 가족이 돌아갔다. 쓸쓸한 뒷모습이었다. 다음으로 내가 할 일은 죽은 영감의 큰아들인 하봉식에게 물을 신문 준비였다. 그가 안 나온다고 버텨도 준비는 치열하게 해 놔야 했다. 그가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려면 나올 것이다.
랭가는 살인을 청부한 아들은 빚이 있고 장영두와 친구라고 진술했다. 청부사건이라면 살인교사범인의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었다. 동생 하교식은 빚이 없었다. 형인 하봉식은 빚이 많았다. 장영두는 큰아들 하봉식을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안다는 얘기였다. 공판정에서 검사는 둘째아들을 보고 그는 범인이 아니라고까지 말로 확인해 주었다.
동생 하교식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죽은 아버지는 집에 절대 현금을 가지고 있는 분이 아니라고 했다. 또 등기권리증 같은 땅문서도 철저히 보관하고 처리하는 분이라 아버지가 장영두의 강도짓 때문에 죽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어느 면으로 보면 이 사건은 하수인인 장영두보다 죽은 영감의 큰아들 하봉식을 겨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조서에서 발견했었다. 살인교사 의심을 받는 하봉식은 처음 경찰서에 가서 장영두가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지목했다. 그가 아버지의 살인을 장영두에게 부탁했다면 경찰에 가서 굳이 그렇게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영화나 소설 같은 데서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 위해 그런 플롯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건 겁을 먹은 인간이 하는 일이었다. 장영두가 죽은 영감의 큰아들 하봉식을 위해서 평생 무기징역을 산다는 것은 맞지가 않았다.
검사는 장영두를 압박해서 입을 열기 위해 무기징역을 주장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장영두가 내게 한 말은 정말 불 게 없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아무 사람 이름이나 대서 욕보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자유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홀몸인 장영두는 인생과 거액을 바꿀 이유가 없었다. 나는 수많은 변명과 거짓말을 예상하고 제시할 자료들과 질문사항을 조금씩 만들어 나갔다. 마지막 변론문도 준비했다.
겨울을 담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11월 14일이었다. 법원에서 연락이 왔다. 장영두의 재판을 일찍 당겨서 하자는 것이었다. 다른 재판이 다 끝나고 장영두 사건만 남아서 판사들이 기다린다는 것이다. 법정으로 올라갔다. 벽시계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휴정을 한 법정에 서기와 주임이 앉아 있었다. 들어올 때 공판검사가 찬바람 부는 법원 계단에서 목을 움츠리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봤었다.
“큰아들 하봉식 소환하셨어요?”
내가 법정의 사무관에게 물었다.
“예, 제가 소환장을 보내도 받지 않기에 직접 전화도 걸었어요. 작은 아들은 협조적인데 큰아들은 그 반대예요.”
사무관이 대답했다. 나는 변호사석에 앉아 큰아들에게 질문할 사항을 다시 점검했다. 또 그에게 증거로 제시할 자료들도 다시 챙겼다. 큰아들은 이미 죽은 영감의 생전에 스스로 상속을 포기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익을 볼 게 없었다. 죽은 영감의 재산은 큰아들만 제외된 다른 가족들 앞으로 상속됐다. 장학재단도 물거품이 되었다. 뭔가 앞뒤가 전혀 맞지 않고 뒤죽박죽이었다.
이윽고 재판장이 배석판사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제 법정은 큰아들 하봉식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법정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