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M은 정규 앨범 4집을 발표하며 그룹 멤버 준케이가 작사, 작곡한 ‘미친 거 아니야’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웠지만 음원차트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 사진출처=JYP 엔터테인먼트
이런 우려는 현실화됐다. 많은 아이돌 그룹이 음원 공개와 동시에 주요 음원차트 정상을 밟는 것과 달리 15일 공개된 ‘미친 거 아니야’는 17일 오전 기준으로 멜론, 엠넷, 소리바다 등에서 10위권에 턱걸이하고 있다. 2PM의 팬덤이 전성기만 못하다고 하더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다. 신인인 박보람이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데뷔곡 ‘예뻐졌다’가 장기간 차트 상위권에 머물렀던 것을 감안하면 결국 ‘노래가 좋아야 산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한다.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10대와 20대 초반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한류 열풍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역량보다는 연예기획사의 철저한 기획과 마케팅을 통해 ‘만들어진’ 그룹이라는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때문에 인지도를 쌓은 아이돌은 이런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실력파’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실력파가 되기 위해 프로듀싱에 도전한다.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앨범에 삽입하고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예전부터 시도되던 아이돌의 프로듀서화는 빅뱅 이후 활발해졌다. 빅뱅의 리더 지드래곤이 직접 만든 노래들이 잇따라 큰 성공을 거두면서 빅뱅은 ‘실력파’로 차별화됐다. 이후 여러 아이돌 그룹들이 프로듀싱 역량을 갖춘 멤버들을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비스트의 용준형, 씨엔블루의 정용화, 블락비의 지코 등 소속 그룹의 타이틀곡을 자작곡으로 장식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즘 아이돌이 속한 연예기획사에서 보내는 보도 자료를 보면 “멤버 OOO이 작사, 작업에 참여했다”는 자화자찬식 문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대부분은 수록곡 중 하나에 참여한 데 그치고 있지만 타이틀곡을 공동 작곡했다고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홍보를 통해 실력파로 인정받는 그룹은 극히 드물다.
한 가요 매니저는 “요즘은 연습생 시절부터 작사, 작곡을 가르치기도 하고 실용음악학원 등에 다니며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데뷔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전문적인 작곡가들에게 비하면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대다수다”며 “그럼에도 그들에게 굳이 ‘실력파’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지나친 홍보”라고 꼬집었다.
최근 가요계에는 흐름을 대변하는 작곡가들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용감한형제와 신사동호랭이에 이어 요즘은 이단옆차기가 대세다. 웬만큼 이름값 있는 아이돌 그룹들은 대부분 이들의 노래를 들고 복귀한다. 같은 작곡가에게서 나온 노래인 만큼 차별화 없이 가요계가 획일화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대중은 결국 그들의 노래를 선택한다. 각 그룹의 색을 정확히 읽고 적합한 노래를 주기 때문이다.
이 매니저는 “용감한형제는 단순히 자신이 만든 곡만 주는 것이 아니라, 해당 노래에 어울리는 안무와 의상 콘셉트까지 함께 고민해 의견을 전달한다. 그만큼 작곡, 작사가는 전체적인 시장 흐름을 읽는 거시적인 시각과 각 그룹의 특성을 잡아내는 미시적인 시각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아직 이런 눈을 갖추지 못한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빅뱅의 지드래곤은 직접 만든 노래들을 잇따라 성공시켰다. 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작곡보다 더 큰 문제는 작사다. 작곡은 기본적인 소양 없이는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지만 작사는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아이돌 그룹의 앨범에는 멤버들이 작사에 참여한 노래가 부록처럼 포함되곤 한다.
물론 작사는 작곡보다 수월하다. 하지만 저작권법으로 따질 때 작사자와 작곡자는 해당 노래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받는다. 1000만 원의 저작권료가 발생하면 그 중 절반이 작사가에게 간다. 그만큼 작사가는 창작자로서 대단한 의무와 권리를 갖는다.
작사와 작곡의 우선순위와 가치의 크기를 따질 순 없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곡을 만든 후 가사를 입힌다. 작곡가가 특정 주제를 갖고 곡을 완성하면 그 주제에 맞춘 가사를 쓰는 식이다. 때문에 제대로 된 가사를 쓰기 위해서는 곡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한 작곡가는 “가사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음표와 곡의 분위기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악기가 쓰이는지도 알고 가사를 써야 하는데 그렇게 가사를 쓰는 아이돌이 얼마나 될까. 단순히 저작권료를 받고, 홍보를 위해 작사를 맡기는 것은 가요 시장을 해하는 일이다”고 토로했다.
이는 요즘 가요계가 ‘가사 실종의 시대’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1세대 아이돌로 평가받는 서태지의 노래는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 외에도 심도 깊은 사회적 메시지가 담겼다. ‘컴백 홈’을 들은 가출 청소년들이 잇따라 집으로 돌아갔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요즘 아이돌의 노래를 들으면 도무지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다. 한껏 멋을 부려 빠르게 읊조리는 것이 랩이고, 가사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비단 아이돌만의 문제는 아니다. 요즘 ‘작곡가’는 많지만 ‘작사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작곡가들이 대부분 작사를 겸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작사가의 전문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예전 노래들이 좋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예전 노래풍의 신곡이 나오면 ‘올드하다’는 지적이 나올 것이다. 결국 예전 노래가 좋은 것은 익숙한 멜로디에 공감 가는 가사가 덧입혀졌기 때문이다. 가사가 들리니 따라 부를 수도 있어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이라며 “아이돌 일변도도 흐르며 그들이 인스턴트식으로 작곡, 작사하는 곡은 생명력이 짧고 전 연령층에 소구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