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강사 로즈 리는 강의를 위한 삶을 강조하며 사랑 대신 강의를 택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그에게는 과연 어떤 매력과 비결이 숨어 있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강의에 열광하고 목을 매는 것일까. 노량진 학원가의 한복판에서 그녀를 만났다.
“식사요? 제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먹게 되면 다행이고요. 방학 땐 보약 들고 다니면서 체력을 관리하는 것이 최대 숙제예요.”
오전 강의가 막 끝난 시간에 가진 인터뷰. 다소 지쳐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그녀는 밝고 상냥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장장 1시간30분가량 마치 강의를 하듯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강사 지망생에서 현재 ‘원더우먼’으로 재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쉴새없이 털어놓았다.
그는 딸만 다섯 있는 가정에서 넷째로 태어났다. 딸이 많은 집이라 성장기의 집안 분위기는 대단히 자율적(?)이었고 학교생활은 모범적인 편(?)이었다. 언어학습기라 할 수 있는 유·소년기에 10여 년을 캐나다에서 생활한 것이 영어강사로 성공하는 데 보이지 않는 큰힘이 됐다.
처음 강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학비 때문이었다. “대학 때 불어를 전공했어요. 언어 공부를 계속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 영어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등록금이 문제였어요. 대학원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학원 강의를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그때가 대학 4년째인 1995년이었어요.”
그러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엔 단과 학원에 여자강사가 거의 없었다. 그 때문에 그녀가 맨 처음 단과 강의를 한다고 했을 때 모든 강사들이 한목소리로 ‘안된다’고 한사코 말렸다. 선배 강사들이 내세운 첫 번째 이유는 ‘여자라서 안된다’였다. 쉼없이 강행군하는 강의를 버텨내기엔 여자의 몸으로선 체력적으로 어렵다는 것. 종합반과 달리 다달이 들락날락하는 학생들이 많아 스트레스도 견디기 힘든 것이고 또한 초보강사가 단과반에 맞는 자기교재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
둘째는 목소리였다. 지금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장점이 돼버렸지만 당시 그들이 보기엔 박력이 없는 이런 목소리로는 혼자서 자기영역을 구축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셋째는 ‘키가 작아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뒤에 있는 학생들이 강사를 못본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건 강단을 높임으로써 금방 보완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당시에는 그녀를 보는 시선이 전부 ‘안 된다’였다. ‘어렵겠다’가 아니라 ‘안된다’는 단정적인 선배강사들의 이런 평가는 그녀에게 오기를 불러일으켰다. ‘안될 건 뭐야. 내가 한번 해보지 뭐.’ 이렇게 맘 먹고 일단 시작을 하자 그 후는 탄탄대로였고 수강생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나 그녀가 짧은 시간에 성공을 달리는 것처럼 보이자 곧 주변의 시샘어린 견제구가 날아왔다. 그녀는 상명여대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아닌 대학을 나온 데다 전공도 영어가 아니었다. 이런 약점 아닌 약점을 알고 있는 다른 강사들의 깎아내리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전공도 아니면서 영어 강의를 한다’는 등등의 악플 때문에 속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가 숱한 역경을 딛고 오늘날 ‘스타강사’로 성장한 원동력은 어쩌면 이런 오기와 근성일 것이다. 좋은 강의는 그러한 오기와 근성이 키운 부산물일 뿐이었다. 이는 그녀의 하루 일정에서도 잘 나타난다.
“스물세 살 때부터 기상시간은 6시였어요. 오전에 8시 반부터 수업이 있으니까 조금 일찍 가서 대기하고 오전수업은 2시 반에 끝나요. 오후 수업은 6시부터인데 중간에 비는 시간엔 교재 정리를 해요. 연구실 직원들이랑 회의하고 스튜디오로 옮겨가서 촬영을 하죠. 오후 수업은 10시쯤 끝나요. 그러나 바로 퇴근하지는 못합니다. 연구실에 다시 가서 하루 수업을 리뷰하는 거죠. 질문게시판 확인하고 학생들이 피드백한 것 살피고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하면 12시 정도 되죠. 그때야 귀가 합니다. 취침시간요?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잠자리에 들죠.”
처음엔 너무나 힘들었지만 10년쯤 계속 달리고 나자 이젠 아예 생활화돼 견딜 만하다는 로즈 리. 지난해는 하루도 쉬지 못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365일이 수업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일만하고 사는 것일까. 그녀에게 휴식은 어떻게 하는 지 물어보았다. “계획된 휴식은 없어요. 짬이 나면 영화를 봐요. 말을 안해도 되잖아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몰입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조금 더 여유가 생길 땐 무조건 드라이브 나가요. 영화 보는 게 휴식이면 음악 들으면서 드라이브 하는 건 충전인 것 같아요.”
로즈 리가 오늘날 이처럼 학원가의 스타가 된 것은 단순히 강의의 힘만은 아니다. ‘사기충천 메시지’와 같은 그녀만의 독특한 이벤트가 한몫을 단단히 했다. 뮤직비디오와 광고를 패러디한 UCC 제작도 그 중의 하나. 수능생들이 공부를 시작한 지 100일이 됐을 때 날리는 ‘힘을 내자’는 동영상, 온라인 수강생들을 위해 매년 한두 번 하는 촛불수업도 빼놓을 수 없다.
인터넷 강의(인강)는 그녀의 수입중 7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다른 강사들에 비해 인강이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뭘까. 놀랍게도 대답은 현장강의(현강)하고 인강이 차이가 없다는 것. 그런데 그녀에게는 남이 안하는 작은 차이가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강이 인기 있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현강하고 인강에서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차이는 있어요. 현강 학생들은 현장에 자기가 귀한 시간을 내서 왔기 때문에 참여율이 아주 높죠. 그런데 인강 학생들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 보는 거니까 호흡이 잘 안맞을 수 있어요. 다른 강사들은 대부분 현강을 그대로 촬영해서 올리기 때문에 카메라를 안 봐요.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을 보고 강의를 하죠. 그럼 질문을 하더라도 강의실 학생들한테만 질문을 하게 되는 셈이죠. 그러면 이 동영상을 보는 인강 학생들은 소외감을 느껴요. 하지만 전 카메라를 보고 질문을 던져요. ‘지난 시간 우리 뭐했지?’ 그러면 인강 학생들도 저와 단둘이 수업하는 느낌을 갖게 되죠.”
현장강의에서도 그녀에게는 나름의 방법이 있었다. 50분 수업시간 중 판서하는 시간은 단 5분.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칠판에 적어놓은 핵심내용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데 쓴다. 설명하면서 지워나가고 지운 부분을 수강생들이 스스로 상기하게 하는 식으로 강의를 한다.
로즈 리의 강의는 단순히 내용만 보면 별 재미가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리는 데는 강의에 대해 수강생들이 집중하게 하는 그녀만의 포스가 있다.
“사실 저나 다른 강사들이 전하는 지식은 거의 똑같아요. 더구나 저는 수업시간에 농담을 안하죠. 단순히 강의만 이어지는 ‘공부’ ‘공부’뿐이죠. 그런데도 수강생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것은 목소리의 힘 조절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단점으로 지적됐던 허스키한 목소리에 오히려 중독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유명세를 타자 그녀를 모델로 스타강사가 되겠다고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찾아오고 최근엔 수업까지 듣는 사람들도 있다. 로즈 리는 그들에게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말을 한다. 얻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그만큼 많은 것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을 많이 죽일수록 성공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 강의가 삶의 전부가 돼도 좋다는 각오를 한 사람만이 도전할 수 있는 분야라고 강조한다. 사랑 우정 여가, 심지어는 친인척까지 과감하게 다 버리고 강의에 의한, 강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인터뷰 말미에 던진 로즈 리의 한마디는 이 같은 성공관이 짙게 묻어 있었다. “한해를 새로 맞을 때마다 나는 ‘올해야말로 나의 전성기다. 올해는 내게 주어진 마지막 해다’라고 생각하며 각오를 다진다.”
김동욱 인턴기자 sigfri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