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 전 의원이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소유하고 있는 토지 전경.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저를 짓기 위해 매입한 토지와는 직선거리로 불과 50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2011년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이 정국을 강타했다. 이 전 대통령 장남 시형 씨와 청와대 경호처가 부지를 공동 매입하는 과정에서 배임과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 논란이 일었고 결국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이로 인해 김인종 전 대통령 경호실장과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물러났고 이 전 대통령은 내곡동에 사저를 지으려던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후 2012년 10월 검찰 수사가 부실하다는 지적 속에 ‘이광범 내곡동 사저 특검’이 출범했고 시형 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까지 받았다. 특검 조사 후 시형 씨는 불기소 처분을 받긴 했지만 부동산 매입 자금 출처 등 여러 의문점은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사저 부지와 관련된 의혹이 쏟아질 당시 이 전 대통령 친형 이상득 전 의원도 내곡동에 부동산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주목받았다. 2011년 국회의원 재산공개 자료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현금과 부동산 등 80억 원가량의 재산을 신고했다. 이 중 토지가 11억 원을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엔 서울 강남구 내곡동 62번지 일대 땅도 포함돼 있었다.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다 이 전 대통령 사저 부지 매입으로 인해 덩달아 이 전 의원 땅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이다.
이 전 의원 땅은 여섯 필지에 걸쳐 면적 1458㎡(약 440평)이었고, 이를 모두 합친 시세는 2억 원대 초반(2011년 기준)을 오르내렸다. 이 땅은 이 전 대통령이 사저 부지를 위해 매입한 토지와는 직선거리로 불과 50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 전 대통령이 사저 건축 장소로 내곡동을 삼은 것에 대해 석연치 않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이유다.
몇몇 야당 의원들은 “이 전 대통령 사저가 들어서면 인근 부동산 땅값도 올라갈 것이고 대통령 형님인 이상득 전 의원도 혜택을 볼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당시 기자와 현장에서 만났던 한 부동산업자 역시 “이 전 대통령 사저가 세워질 것이고 향후 그린벨트가 풀려 개발이 대대적으로 추진될 것이란 소문에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는 것은 맞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전 의원은 이러한 의혹 제기를 강하게 일축했다. 평소 민감한 사안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것으로 유명했던 이 전 의원은 자신의 땅 문제가 불거지자 이례적으로 공개적인 해명에 나섰다. 이 전 의원은 “그런 것 가지고 얘기하지 마라”면서 “그 땅은 30년도 더 전에 구입한 것이고 그린벨트로 묶여있다. 대통령 사저가 온다고 개발 이익이 생기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 전 의원은 “언론이 그런 의혹을 덮어놓고 쓰니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아시겠지만 500m 줄을 쫙 그어 무슨 이익이 되는 것처럼 쓰니 해명을 할 수도 없다”며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2011년 이 전 대통령 장남 시형 씨와 청와대 경호처가 부지를 공동 매입하는 과정에서 배임과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일요신문 DB
이처럼 정치권에서 한때 ‘뜨거운 감자’였던 이 전 의원의 내곡동 땅 일부가 최근 팔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의원이 갖고 있던 62-××(83㎡)의 소유권이 지난 8월 홍 아무개 씨로 변경된 것이다. 이 전 의원이 해당 부지를 1979년에 매입한 것을 감안하면 무려 35년 만에 주인이 바뀐 셈이다. <일요신문>은 이 전 의원 소유의 땅을 매입하게 된 경위 등을 확인하기 위해 홍 씨 거주지를 방문하는 등 접촉을 시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이 전 의원 측근 역시 “(이 전 의원의) 개인적인 일이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땅을 사고파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전 의원 땅이 팔린 과정이 사뭇 흥미롭다. 중간에 대부업체 T 사가 등장하는 까닭에서다. 과거 정권의 실세 중 실세로 불렸던 정치인의 부동산 거래에 대부업체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눈길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대기업 계열인 T 사는 지난 2011년 세워진 대부업체로 업계에서 그다지 알려져 있는 곳은 아니다. 대부업체의 한 임원은 “T 사는 모기업 지원 아래 비교적 일찍 성장하긴 했지만 지금은 모기업 사정이 악화되면서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2012년 11월 T 사는 이 전 의원이 갖고 있는 부동산 일부에 대해 소유권 말소를 청구하는 재판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재판부는 T 사에게 해당 토지에 대한 채권자로서의 대위권 지위를 확인해줬다.
대위권이란 채무자가 정상적으로 채무를 변제하지 않을 때 채권자가 행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즉, 부동산 등의 재산을 가진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채권자가 채무자 대신 그 부동산을 처분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는 얘기다. 이 전 의원과 T 사 간에 어떤 채무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어찌됐건 이로 인해 이 전 의원은 자신의 토지 소유권을 T 사 측에 내주게 됐다.
땅에 대한 권리를 획득한 T 사는 2013년 10월 법원에 강제경매개시 결정을 받아냈다. 앞서의 대부업체 임원은 “대부업체는 보통 땅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별로 없다. 현금화를 우선시한다. T 사도 아마 땅을 팔기 위해 경매를 신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T 사 관계자도 “그 땅 소유주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절차가 진행됐다면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통상적인 과정을 밟은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결국 T 사는 경매 절차를 거쳐 지난 8월 홍 아무개 씨에게 땅을 팔았다. 홍 씨에게 팔린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여전히 이 전 의원 소유다.
이에 대해 이 전 의원 측은 “해당 번지수 토지는 이 전 의원이 1979년 매입을 위해 가등기한 적은 있으나 실제 등기를 이전하지 않아 소유한 바는 없다. 따라서 토지와 관련된 부분은 이 전 의원과 관련이 없다. 다만, 국회의원 재산공개 목록에 포함된 것은 실무자 착오였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